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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만을 향하던 사회초년생의 결말

 나는 너무 잘하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몇 군데서 짧게 근무를 하다가 유명통신사의 고객센터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동기 중에는 경력자가 다수였고, 신입도 있었지만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대학만 졸업하면 뭐 해 나이도 많고 경력도 없는데?라는 시선을 느꼈다. 학력이나 전공은 전혀 상관이 없고 오직 결과와 일머리가 중요했다.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분위기에서 오기가 생겼다. ‘내가 너희들보다 못하겠냐.’라는 자존심이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당연히 내가 1등일 줄 알았던 것과 달리 고객센터의 시스템을 몸으로 익힌 경력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경쟁자를 얕보고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나의 자만이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도 자존심 상했지만 못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 이후부터는 드라마 속 열혈 신입사원과 비슷한 스토리다. 국어사전만큼 두꺼운 업무매뉴얼을 죽기 살기로 암기하고, 교육생 수업태도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강사에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동기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적당한 고민을 나누는 사이, Top은 아니었지만 학습평가 및 동료평가에서 중상위권으로 자리 잡으면서 정직원으로 전환됐다.   

   

 첫 부서는 신입팀이었다. 신입으로만 구성된 팀으로, 주로 주소변경, 부가서비스 삭제와 같은 단순문의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사내에서 신입팀은 업무난도가 낮아 편하다는 의미로 산후조리원쯤으로 인식됐다. 그만큼 쉬운 곳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아비규환이었다. 고객센터가 처음이었기에 사방에서 들리는 전화벨 소리, 상담하는 소리,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업무 전에는 가방 여닫는 작은 소리 조차 크게 느껴질 정도로 적막하다가 8시 59분에서 9시로 바뀌는 순간 세상이 개벽한 듯 소란해졌다. 그 상황이 어쩔 때는 막 잡은 고등어처럼 팔딱이는 생명감이 느껴지다가 어쩔 때는 내게 배정된 고객 전화를 받지 못할 정도로 중압감에 사로잡혔다. 사회가 평가의 연속인 것은 알았지만 회사는 일분일초가 그랬다. 그것이 짜릿하게 흥분되면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다. 잘하면 그 일분일초가 뿌듯했지만 못하면 매 순간 나를 탓해야 했다. 회사의 지침을 준수했는지, 고객께 친절했는지, 직무상식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등 여러 가지 평가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잘해야 했다.      

 

 고객들이 주는 정신공격에서 온전히 서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고객센터 상담사에 대한 직업인식이 달라지긴 했지만 내가 신입사원일 때만 해도 매우 하찮은 직업이었다. 살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각종 상스러운 말, 욕, 비아냥거림, 성희롱, 이유 없는 분노를 여과 없이 받아내야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는 "이 닭대가리 같은 년아. 너 거기 닭장이냐?!"라고 얘기했던 고객과의 상담이다. 회사 지침대로 답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고객 입장에서는 본인을 이해 못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더 심한 욕도 많이 들어봤지만 이 말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내 직업에 대한 남들의 평가, 나도 부끄러운 상담사라는 직업.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한참을 울었다. 나를 닭대가리로 부르는 고객에게 회사 평가 규정에 따라 ‘도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과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던 상황, 박차고 나갈 용기도 없던 내가 불쌍하고 답답해서였다. 울어도 울어도 마음을 긁어대던 뾰족한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몇 번 토닥이고 대충 어루만져서 뭉툭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신입팀이 있던 층의 화장실에는 나 같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울고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고객에게 웃으며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 내가 슬픈 건지, 괜찮은 건지, 웃어서 기분이 좋은 건지, 내 감정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2개월의 신입팀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하고 기존팀으로 배치됐지만 여전히 상담 스킬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터, 나는 다시 고군분투했다. 특히 내게 배정되는 전화실적이 저조해서 인센티브 경쟁에서 매번 밀렸다. 구성원의 실적은 곧  팀의 실적이 되기 때문에 부담감은 내림 막길에서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졌다. 내가 선택한 답은 휴일근무로 부족한 실적을 채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받아야 하는 고객전화가 100통, 내 실적이 80통이라면 나머지 20통을 휴일에 출근해서 소화하는 형식이었다. 회사에 보고되지 않은 자발적인 출근이라 수당은 받지 못했지만 저조했던 실적을 만회해 모든 지표에서 우수한 성과를 달성한 나는 최고 인센티브 등급을 받았고, 팀 실적에 피해를 주는 일도 없어서 한동안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출근했다.(회사에서 이런 사례를 파악해 제도적으로 차단함) 이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법을 알아가듯 나도 인센티브 받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이제 나의 목표는 최고등급이 아니라 그 등급에서도 1등이었다. 매달 우수실적자를 위한 포상식을 진행했는데 1등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인센티브 외 추가포상금이 있었고 소감발표를 하는 시간도 제공됐다. 참여한 모든 사람이 최고 등급임에도 다시 순위가 나뉘었다. 나는 매달 포상식에 참석했고 대부분 소감을 발표했다. 월별 실적이 쌓여 연말 인사고과에 반영됐기 때문에 매달 최상위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결과 나는 각종 포상식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인사고과에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다.      

 

 하루에 내게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을 실적관리 및 회사에 할애했다. 퇴근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상담했던 고객이 만족도 점수를 낮게 줄까 봐 불안해했다. 실적에 병적으로 집착하여 상담에 만족하셨는지, 필요하신 것은 언제든지 연락 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를 보냈다가 그 고객 와이프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이번달에 1등을 해서 행복했다가도 다음 달 1일이 되면 새로운 출발선에서 다시 불안해했다. 돈을 벌기 위해 실적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수구성원이라는 나를 메이킹하기 위해 고객에게 나를 굽히고 낮추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도 웃고, 좋아도 웃었다. 사소한 실수에도 죽을 만큼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여러 날을 나의 본질과 다른 모습으로 있다 보니 내 마음이 괜찮은 건지, 힘든 건지, 기쁜 건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동료들이 나에게 어떤 것을 요청했을 때 하이톤의 흔쾌한 답변이 나가지 않으면 ‘오늘 좀 힘들었나’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고객과 동료들에게는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간과 쓸개까지 내어주면서 집에 오면 가족들이 묻는 말에 무응답 혹은 지나치게 매몰찼다. 이미 발바닥 끝까지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이기 때문에 쓸 마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가족들이 서운한 얼굴을 해도 잘못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일 빨리 출근해서 불만이었던 고객에게 전화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집에서의 냉정한 모습이 나인지, 회사에서 적극적이고 착한 모습이 나인지, 고객과 상담할 때 친절한 모습이 나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맞는 건가 싶었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힘들어도 나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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