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꼭 이래야만 했나
오늘은 초3 아이의 국어6단원 단원평가가 있는 날이다. 어제 선생님의 평가예고 알림장을 보고 함께 문제집을 풀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무더위에 녹아내린 몸을 씻고, 단백질과 무기질이 적당히 어우러진 저녁을 먹고 책상에 나란히 앉았다.
6단원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내용이 었다. 채점을 해보니 20문제 중에 7개가 맞았다. 달궈진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맥락없는 답안에 내 화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식인데..
문제, 원인과 결과에 따라 글을 쓰면 좋은 점이 무엇인지 쓰시오.
답변,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원인과 결과에 대해 알아보자.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답은 모른다쳐도 문제에 맞게 답안을 작성해야하는데 동문서답도 유분수다.
(아이는 종종 이렇게 문제를 틀려온다.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건지, 안한건지 모르겠지만 문제나 지문을 그대로 베끼는 성의없는 답변이 나는 너무 질색이다.) 문제를 하나하나 함께 풀때마다 내 감정도 춘향이 널뛰듯 했다. 모르는 낱말은 사전을 함께 찾아보며 뜻을 알려주는데 사전에 풀이되어 있는 단어를 몰라서 또 찾아봐야했다.
그래. 다 괜찮았다.
그러나 문제를 전혀 이해못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모습은 깨끗한 흰 티셔츠에 묻은 한점 고춧가루처럼 몹시도 거슬리고 보기 싫었다.
“아니 문제를 아예 이해를 못하고 있는데.. 여자친구들도 바보같은 건 싫어해. 이렇게 아는게 없어서 어째.“
내 입에서는 줄줄줄 독설이 나갔다. 수영복이 풀어진 것을 알면서 슬라이드가 이미 출발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처럼 어디선가에서 멈춰야 하는데 한번 나간 말들은 입으로 돌아올 생각를 안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내 감정을 추스리지 못해 독설을 내뱉는 순간부터 이건 아닌데 생각하고 있었고 또 엄청난 후회를 하리란걸.
아이는 “나는 특공무술도 폼새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는데 엄마는 잘 모르면서”. 동의해주지 않으리란 걸 아는 아이의 말은 점점 달팽이가 집으로 들어가듯 자취를 감췄다. 나는 또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바로 정정하면 아이의 상처와 나의 후회는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럼 알지. 엄청 잘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근데 이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무엇때문일까.
분명 잘못한 것을 아는데. 왜 정정을 하지 못하고 아이의 자존감을 뿅망치로 두더지 머리를 내리치는 것처럼 눌러놓는 건가. 그래도 아이는 스스로를 인정해주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나에게 반박을 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마지막 문제까지 풀고 아이를 눕히고(못나게도 평소처럼 안아주거나 잘자라고 뽀뽀도 해주지 못했다.
나는 왜 아이에게 자존심을 세우지? 이 감정이
자존심인가.) 한참을 속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반성과 후회와 회한의 감정을 느꼈다.
못났다. 아니 못난 정도가 아니라 아이의 자존감을 망치는 엄마다. 반성에 반성을 하고 후회를 했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를 했어. 다시한번 엄마가 그런 언사를 행한다면 혼내주라고말했다. 아이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내 몸보다 사랑하는 너를 앞으로 절대절대절대 상처주지 않을거라 약속했다.
아이는 등교하면서 닫히는 문틈새로 손가락 하트를
보여주며 웃는다. 아이에게 매일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는다.
자존심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후회를 하면서도 사과는 하지않은, 잘자라고 다정히 말해주지도 않은 내게 엄마라고 또 웃어주는 것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