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한 그릇

한 뚝배기 하실라예


전통 시장을 좋아한다.

거친 듯, 서툰 듯, 다정한 듯. 이 모든 것들이 혼합된

사장님들 말투부터 작은 단위로 살 수 있는 물건들,

진심으로 다 먹어치우고 싶은 먹거리까지

전통 시장이 주는 옛스런 정서가 나의 어떤 감성을

마구 뒤흔든다.


오늘 경안시장을 다녀왔다.

덥고 습하고 쿰쿰한 냄새까지 왜이리 맘에 드는지.

한참을 시장 끝에서 끝까지 왔다갔다 했다.

반찬가게, 떡가게, 족발가게, 과일가게, 생선가게,

정육가게, 출처를 알 수 없는 옷이 걸려있는 옷가게

반찬가게의 어리굴젓, 조개젓 앞에서 한참 머뭇거렸다.생선가게의 오징어 앞에서도 마찬가지.

떡가게 앞은 또 어떠한가.

모든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뗐다.

백화점의 식품코너와는 상대가 안되는 정감이 있다.

나는 이런 거친 듯 서툰 감성이 좋았다.

항상 이런 분위기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전통시장을 더 좋아하게 됐는지 모른다.


호호백발 할머니 두분이 하는 옥수수 가판 앞에서

옥수수를 한 묶음 산다. 옥수수 3개에 5000원.

담겨져 있는 옥수수 묶음을 들었더니 방금 찐거라며

바구니 안에 뜨거운 김이 폴폴 나는 옥수수를 담아주신다.

"이게 더 맛있어요?"

" 다 똑같지 뭘. 방금한거니까 이걸로 주는거지. 알록이도 하나 넣어줘?"

너무 더워서 찜통앞에(찜통이라고 해봤자 큰 냄비 크기이다.) 서 있는데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돈을 받아드는 할머니 뒤로 골목이 보이는데 추어탕

이라고 씌여진 푯말이 있었다.

"뒤에 추어탕집 아직도 있어요?" (그 골목은 사실 상점이 있을거라고 믿어지는 않는 모습이었기에 이렇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답변이 짧은 할머니 ㅎㅎ)

"맛있어요?"

"맛있지"

옥수수를 받아 들고 골목길로 성큼 성큼 걸어들어갔다


회사 재직시절 나는 국밥매니아 였다.

순대국밥, 추어탕, 뼈다귀해장국, 선지해장국 등등

땀 흘리며 호호 불어 먹는 국밥이 너무나 맛있었다.

거기에 머리까지 차가워지는 소주 3잔만 있으면

만수르도 부럽지 않는 밥상이었다.

이게 바로 한국인의 밥상 아니겠는가?!!


골목길로 들어갈 수록 잘못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선썩은내, 너무나 비좁은 골목, 이 동네 개 들은

모두 한번씩은 와서 오줌을 갈기고 갔을 법한 느낌의 골목이었다.


되돌아가야 하나 싶을때 간판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장님이 흘낏 쳐다만 본다.

그 골목에, 추어탕 가게 내부와는 어울리지 않게

나는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들어가서 신발을 벗으니 "혼자에여?"라고 물어보는

사장님. 나는 씩씩하게 그렇다고 얘기했다.


가게 안에는 중절모를 쓰신 할아버지 4분, 산을 타고 왔는지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 3분이 계셨고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추어탕 뚝배기 간걸로"


퇴사한 이후에 추어탕은 처음 먹어본다. 회사 지하에 기가막힌 추어탕집이 있었는데 정식을 시키면 함께

나오면 마늘 수육이 끝내줬었다.


물을 따라놓고 얌전히 기다린다.

20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작동은 되나 수명이 다한 듯한 에어컨은 소리만 요란했다.

허름한 이 곳, 연령대가 엄청 높은 이 곳.

그래 맛집이다! 제대로 찾아왔군.


기다림 끝에 나온 추어탕은 걸쭉하고 뜨겁고 간간했다.

함께 곁들여진 반찬들도(특히 마늘쫑!! 아~ 너무 좋아) 아주 맛있었다.

반찬까지 싹싹 다 먹고 아쉬운 마음에 일어나기 전에 남은 국물을 한 숟갈 더 떠먹었다.

예전 나의 술친구들과 함께 왔다면 아주 환장할 분위기와 맛이 었다.

추어탕 한그릇에 옛생각이 나는구나.


보고싶다.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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