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늦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또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는 방망이다.
(중략)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중략)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초중고 중 한번은 필독도서로 읽었었다.
그때는 필독 이라는 말이 왜그리 싫은지 “이건 필시 독이야” 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하면서 읽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필독도서들은 말그대로 반드시 읽어야 할 것들이었다.
류시화 시인의 시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기가 막힐텐데..
오랜만에 방망이 깍던 노인을 읽으며 나는 얼마만큼 깎여져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그냥 방망이 말고, 꼭 이 방망이처럼 ‘요렇게 알맞는 것’ 으로 변화해가고 있을까.
나는 항상 평범한 방망이 말고 방망이 깎던 노인의 방망이가 되고 싶었다.
얼마나 더 깎여야 할까.
깍이고 또 깍이면서 ‘참 좋아질’ 나를 기대했는데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노인도 방망이도 ‘나’라는 것.
내가 나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꼭 알맞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오늘도 나를 이리저리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