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림 치다.
한 연예인이 출산 후 복귀를 하면서 워킹맘의 고충에 대해 인터뷰한 기사가 있었다. 좋은 베이비시터를 만나운동도 시작하고 몸매관리도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의 사진은 근사한 집에서 본인을 위한건강쥬스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베스트 댓글에는,진짜 워킹맘은 우는 아이 떼어놓고 만원 지하철에서 땀흘리고 있는 나야. 라는 글이였는데 나 역시 공감하며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은 짠한 존재다. 눈치 보기 선수이고 아이에게는 한없이 죄인이 되는 존재다. 어떤 TV프로그램에서 알만한 배우에게 어렸을 때 속상했던 기억을 묻는 질문에 “비가 오면 엄마가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서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라고 답하는장면이 있었다. 그 이후 비가 오면 아이가 외로운 감정을 느낄까봐 심장이 아팠다.
휴가인 날 비가 오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학교 정문에서 내가 찢을 수 있는 최대치로 입꼬리를 찢고 환하게 웃으며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회사에서는 야근이 많은 부서로 보내질까 전전긍긍하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휴가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하나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책으로 배운 연애는 크게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인터넷으로 배운 육아는 막상실전으로 맞닥뜨렸을 때 멘붕이 왔다. 오랜 시간 다닌 직장임에도 엄마가 된 후에 만난 그곳은 이상하게 낯설고 서툴렀다.
아이가 생후 5개월 때 복직했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신다고 하여 아침에 맡겼다가 퇴근하면서 데리고 갈 수 있었다. 근처에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은 워킹맘에게 엄청나게 좋은 조건이었다. 복직 첫날 출근하는 길에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활동적인 엄마가 이제 아이 울음소리만 들리는 집에서 내가 했던 것처럼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하겠구나. 내 짐을 엄마에게 몽땅 내려놓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회사를 다니면서 6시 30분 전에 퇴근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직원들은 대부분 남아서 잔업을 하고 있는데 먼저 나가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고 눈치가 보였다. 하필 내 자리가 사무실 맨 끝이라 직원들 자리를 관통하면서 나가야 했다. 마음속으로 ‘인사하지마~ 인사하지마’를 외치면서 조용히 빠져나가려 해도 “000님 퇴근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가 시작되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직원들도 내가 퇴근하는 것을 다 알게 됐다. 한고비를 넘기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일년에 몇 번 뵐 수 없는 본부장님을 만나는 날은 “아. 아이가 아파서 일찍 가봐야 해서요.” 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거렸다.
엄마에게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자유를 주고 싶어서 집 근처 역에 도착하면 그 순간부터 뛰었다.
눈치 보는 퇴근을 하고 정신없이 뛰어서 집에 도착하면여지없이 지쳐있는 엄마의 얼굴을 마주했다.
항상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셨지만 엄마의 고단함에 행여 1g 이라도 얹기 싫어서 쫓기는 사람처럼 아이를 들처 업고 나왔다. 어느 날은 외출할 준비를 하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는지 현관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가버리시는 날도 있었다. 엄마의뒷모습에 나의 휴직 때 모습이 어렸다.
이럴땐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그나마 나을 텐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깨에 멘 가방과 아기띠가 너무 무거워서 한 발자국을 뗄 때 마다 내 몸이 밑바닥으로 꺼질 것 같았다. 나는 아기띠 아래로 달랑거리는 아이발을 만지작 거리며 눈물을 참을 뿐이었다.
복직 후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우습지만 점심시간에 내 몫으로 차려진 밥과 국 앞에 앉았을 때였다. 무려 5개월만에 보는 나를 위한 밥상. 식어 빠진 것이 아니라 김이 모락모락 나서 따뜻했다. 순간 육아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냅킨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숟가락과 젓가락을 드는데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어린아이와 함께 밥을 먹으며 내몫의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맥주 애호가들이 더운 여름날 시원한 얼음 맥주를 보기만 하고 한 모금 먹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감격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자리에 오면, 집에서 예전에 나처럼 식은 밥을 먹으며 말도 못하는 아이와 고분분투할 엄마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일에 집중하려 해봐도 현실과 미지의 경계에서 나는 버석거렸다. 회사는 그대로 였지만 휴직을 마치고 출근한 나는 스스로 낯선 존재로 느껴졌다.
칼퇴근이 일상이 되다 보니 출장이 필요한 중요한 회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프로젝트, 저녁 식사가 예정되어있는 비중 있는 자리는 피할 수밖에 없었고 횟수가 잦아질수록 자연스럽게 배제됐다. 퇴근 후에 발생한 이슈에 대해 다른 책임자가 처리하는 일도 발생했다. 비록 퇴근 후이긴 하나 내 소속의 일을 다른 책임자가 처리했다는 것은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했다.
‘출산 전과 동일하게 일할 수는 없잖아’ 하면서도 내 인생만 달라진 것 같다는 억울한 감정은 메마른 산에 불이 붙는 것처럼 가파르게 퍼져나갔다. 딱 정의할 순 없지만 예전과 다르게 조금씩 틀어져 가고 있었다.
가정과 일의 양립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 야근을 할 수도 없었고 칼퇴근은 필수요, 예정에 없던 휴가도 한달에 몇 번씩 필요했다. 아이를 봐주시는 엄마에게 심적, 물적 보상을 해야 했고 워킹맘이지만 아이를 잘 키워내야 했으며회사내에서 입지는 그대로이고 싶었다. 현실은 뒤죽박죽이었다. 승진하는 사람들을 겉으로는 응원했지만 속내는 질투로 괴로웠다. 나도 아이가 컸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만큼 했을 거란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은막의 스타였던 여배우가 화려했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주연에서 조연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아무리 몸부림쳐도 당연한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