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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모국경 Dec 19. 2022

엄마경찰 3 (승진공부 중인 후배들에게)

 잘난 척

경찰 승진은 크게 4가지로 심사승진, 시험승진, 특별승진, 그리고 근속승진(자동승진)이 있다.

난 이 4가지 방법 중 시험으로 승진을 해왔다.

5번의 승진시험을 치렀고, 5번 모두 단박에 합격하는 운도 따랐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잘난 척이다.

하지만 어찌 운으로만 되었겠는가? 이수 삼수를 기본으로 하는 승진시험에서 그것도 5번이나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단박에 승진을 했다는 건 분명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잘난 척이다.

게다가 시험으로만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고 하면 승진에만 목매며 편한 부서에서 공부만 하고 일은 등한시 한 사람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하지만 난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그것도 잘한다.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잘난 척이다.

이런 류의 잘난 척은 난 열 개도 더 진술할 수가 있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잘 나서라기보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선 관대한 법이고, 지난 간 과거의 업적(?)에 대한 포장술 또한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발현되는 것이기에 이런 류의 잘난 척은 들어주는 사람이 없지 에피소드가 부족하진 않다.


  들어줄 만한 잘난 척

그럼, 들어줄 사람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련되어 있다 한들 욕 들어먹기 뻔한 잘난 척을 왜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그래도 들어줄 만한 잘난 척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매년 12월, 이맘때면 승진시험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다.

시간은 부족한데 12월 공간은 풍요롭기만 하다.

오늘처럼 함박눈이 가득 쏟아져내리고,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되고, 캐럴이 들려오고, 맛있는 음식에 가족들이 함께한다.

하지만 승진 시험을 앞둔 우리들은 크리스마스고 연말이고 그 풍요를 비켜나 가방 속에 마구 쑤셔 박은 책을 메고 도서관엘 가야 한다. 부족한 공부를 메우기엔 부족한 시간, 조급증만 더해져 책을 보는데 머리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마에서 튕겨져 나오는 느낌이다. 고개를 들어 도서관 벽과 마주하면 그 벽을 향해 책이 찢어지도록 난폭하게 집어던지고도 싶다.

또 공부는 어떠한가.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열 번도 더 본 것 같은데 연필로 볼펜으로 형광펜으로 줄 그어놓고 칠해놓지 않았다면 진실로 처음 보는 문장 같다.  내 자식만큼은 절대로 내 머리를 닮아 고생하지 않게 당장이라도 유전자 변형이라도 하고 싶어 진다.

그렇게 바보 같은 머리가 원인이 되어 시험날 외운 문장하나 회생시키지 못하고  시험에 떨어지는 결과로 인과관계 맺은 시나리오까지 머릿속에서 쓰고 나면 불안이 극에 달한다.  불면증은 기본 물론이요. 심지어 공황장애까지 경험한 동기도 있었다.



그러니 나만 바보 같다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나 역시 그랬다. 더하면 더 했지 나 역시 그랬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 포기가 목 구녕까지 차 올라오거든 오늘까지만 버티고 내일 포기해라. 그렇게 오늘까지만 버티고 포기는 내일 하는 것으로 보험으로 두길 바란다.


도서관에 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진통제로도 감당 안 되는 몸을 도서관에 데려다 놓고 원망인지 기도인지 모를 소리를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제발 몸이라도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제발 공부 좀 하자고 울부짖었다.

컨디션이 좋아야 공부도 잘된다는 전문가 견해 따위는 무시했다. 효율이고 비효율이고 내가 선택한 건 단순무식이었다.

먹고 소화시키는 시간조차 아까워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덕분에 체력은 떨어질 때로 떨어져 길에서 쓰러지기도 하고 뭘 조금 삼키기라도 하면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소화시키다만 물질들을 게웠다.  

눈 뜰 힘조차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도 경험한다. 눈은 보기 위해 뜰 힘이 필요하지만 귀는 듣기 위해 애써 힘쓸 일이 없다. 항상 열려있다. 눈이 안되면 귀로 들었다. 중얼중얼 공부해야 할 문장들을  미리 녹음해 두었다 듣곤 했다. 그렇게 버텼다. 공부한 게 아니라 그냥 버텼다. 책을 덮거나 가방 싸매고 집에 가지 않았다.

'왜냐고?'

노력이 나만의 노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아이들 때문에...  아이랑 놀아줄 시간에 도서관에 와 있는 독한 엄마가 이 따위 통증에 가방 싸매고 집에 가면, 엄마와 함께할 시간을 양보해  준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사람들에겐 좋은 가십거리가 된다. 엄마 욕심에 아이마저 희생시킨 공부를 하고선 아이 핑계를 댄다고.

공부하는데만 멘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조언인지 비난인지 모를 소리에도 멘탈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부모는 돈 많은 부모도 아니고, 지위 높은 부모도 아니며,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아이와 함께 많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주는 부모라고 도덕적 충고까지 서슴지 않고 해 준다.

그럴 때면 난, 충고에 더하여 이기적인 엄마되는 죄인의 무게까지 받는다.

    

과연, 과연 난, 나만을 위해서?

내 아이는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좋아한다. 그것도 한우로 좋아한다.

내 아이는 친구들 학원 갈 때 같이 가고 싶어 한다. 주짓수도 배우고 싶어 하고, 바둑도 배우고 싶어 하고, 영어 수학도 혼자서 하기보다 친구들과 같이 학원에 가서 배우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는, 부모로서 나의 작은 소망은, 자랑스럽지는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보통(?)의 부모는 되어주고 싶다.


'100명의 엄마가 있다면 100개의 모성이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어디 모성뿐이겠는가? 부성 역시 마찬가질 것이다.

사람은 저 마다 각자의 사정 즉 속사정이라는 게 있다. 그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노력하며 살아간다.  

좋은 부모란? 물음에 책에 나온 천편일률의 모성의 잣대를 대어 그 누구도 함부로 지껄일 수 없다.


그러니 이 순간 마음 아파하면서 도서관에 앉아 있을 후배들에게, 공부의 압박보다 더 심한 부모로서 무게를 지니며 공부할 후배들에게,

어떤 이유로든 공부하기로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에 미안해하는 마음은 조금 내려놓고 선택한 공부에 최선을 다하라  말해주고 싶다.


내가 흥청망청 쓴 시간이 아니고, 내가 흥청망청 쓴 경험이 아니라면

최선을 다해 산 것이고 그로서 이미 훌륭한 부모까지는 아니어도 부족한 부모는 아니라고.


때가 되면 도지는 상처처럼 12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픔에...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나와 닮은 마음의 무게를 지닌 이에게. 작은 위로라 되고 싶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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