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몇 호에 사는지는 모른다. 여하튼 9층에 사는 아저씨다.
우린 이른 아침 시간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다.
나는 출근을 하고 9층 아저씨는 농사 지으러 간다.
아저씨 손에는 점심 도시락도 들려있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다른 층 이웃들보다 더 친근해졌다.
덕분에 농사지은 복숭아 2개도 얻어먹었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한 마디씩 주고받은 말들로 아저씨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퇴직 후 놀기 뭐해서 짓는 농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말한다.
'사람은 일 하려고 태어난 것 같아요.'
퇴직 후에도 또 일을 하는 아저씨에게 '일'은 진저머리 나는 단어일 것인데
그 말을 하면서도 얼굴 표정에 일그러짐이 없다. 아니 살짝 미소가 있었다.
9층 아저씨는 일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늘 누군가 나에게 너무 애쓰며 살지 말라고
그러다 건강 해칠까 염려된다고 걱정해 주었다.
그런데 고마워해야 할 염려가 이상하게도 고맙지가 않았다.
애쓰는 게 어땠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오래 전 '일하는 엄마라서 미안해' 하고 어린 아들에게 말했을 때
아들은 어린 아이답지 않게 조금은 어른스럽게 말했다.
'괜찮아 엄마, 엄마가 일하니까 우리 여름에 에어컨 틀 수 있는 거잖아'
난 무더위만 찾아오면 아들의 이 말이 기억난다.
내가 애써서, 열심히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애씀이란 그런 것이다.
9층 아저씨의 애씀으로 다디달았던 복숭아 2개의 맛 같은 것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했고 그로 인해 내가 행복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