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연구자>
남자는 국립중앙도서관 연구자로 선발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거나 학술논문과 학술단행본을 집필한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정보서비스’ 지원 사업이다.
그가 제공받는 서비스는 국가장서 및 온라인 자료 이용, 외국도서 원문 지원 등이 있으며, 특히 연구공간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 본관 3층 연구정보실에는 1인 지정 연구석(독립공간)과 개방형 연구석(1인석, 다인석)이 마련되어 있다.
도서관 1인 지정 연구석은 반 평 남짓한 공간에 열람탁자와 의자가 갖추어져 있으며, 투명 유리문과 칸막이로 분리되어 독립된 연구 환경을 제공한다. 연구정보실 내부는 고요하다. 16개의 지정석과 10여 개의 개방형 다인석이 있지만, 간간히 들리는 뚜벅이는 발소리나 소지품이 탁자에 닿는 소리 외에는 정적이 감돈다. 일반 열람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남자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은 짜거나 맵지 않은, 담백한 맛이었지만, 오랜 직장 생활 동안 익숙해진 바로 그 맛이었다. 그는 퇴직한 이후 처음으로 8년 만에 식판을 다시 사용했다. 물론 아내가 차려주는 집밥이 최고지만, 이제는 하루 한 끼쯤은 밖에서 해결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또한 잘된 일이다.
식사 후 그는 도서관 앞 광장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5월의 맑은 하늘 아래 비둘기 떼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벤치 앞까지 모여들었다. 길 건너 서울성모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눈앞에 병실이 보이는구나.”
8년 전, 그는 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며 글을 썼다. ‘살아만 준다면 남은 순간을 마지막인 듯 살겠다’는 다짐을 했고, 이후 소설가의 꿈을 품고 창작을 시작하며 박사 학위 연구에도 착수했다.
“저 병실에서 여기 도서관까지 오는 데 8년이 걸렸구나.”
남자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마치 효창운동장 반공 궐기대회장에서 풀려난 비둘기 떼가 폭죽 소리에 놀라 서울 하늘을 맴돌다가 다시 둥지로 돌아오듯, 병실에서 퇴원한 자신도 여기저기 떠돌다가 결국 도서관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남자에게는 아직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다.
“살만하다며? 놀러도 다니고, 재밌게 살아야지.”
친구는 비아냥거리듯 말한다.
남자는 퇴직 후에도 이곳저곳에서 강의를 하고,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창작 이론까지 공부하게 된다.
“돈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읽어주는 것도 아닌 글을 쓰는 건 그냥 뻘짓 아니냐?”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읽고, 쓰고, 쓰다가 궁금한 것을 다시 읽는다. 그렇게 몰입하는 과정이 곧 행복이라고 그는 믿는다.
“쓸데없는 잡념에서 벗어나는 데는 독서가 최고지.”
그는 근심과 걱정 속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바로 그런 몰입에 있다고 여긴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오히려 취미라는 이름으로 용돈을 써가며 작가로 살아가는 삶은 인생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연구자로 선발되었다.
“이거 참, 영광이지.”
그는 초록색 끈에 매달린 ‘연구정보서비스’ 출입증을 목에 걸고 열람실과 편의시설을 이용한다. 특별한 대접을 받는 기분에 내심 우쭐해진다.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이 출입증을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한 무슨 훈장처럼 여긴다.
어쨌든 축하할 일이다. 동네 독서실에서 밤을 새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그였고, 교직에 있을 때는 교내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한 교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에게 도서관은 언제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