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강을 건너는 자리

by 소설가 서기주

『정보의 강을 건너는 자리』

(1)

전면 유리창 너머, 차들은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반포대교 쪽은 마치 저녁 물결에 갇힌 배들처럼 한 줄로 서 있었고, 서초동 언덕길은 매끄러운 활강로가 되어 차량들을 빠르게 밀어 올리고 있었다. 오르막이 힘겹고 내리막이 편하다는 예전의 상식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운전자는 그저 엑셀 페달 하나로 세상의 경사도를 지우고, 속도의 비탈을 타고 날아간다.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열람실 78번 좌석에 앉은 남자의 눈앞에도 그 장면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유리 수족관 너머 바깥 세계가 거대한 시네마 스크린처럼 펼쳐져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시각의 향연 속에서도, 귓가를 때리는 건 기계의 거친 숨소리였다. 에스컬레이터의 모터 소음은 지하철역에서 들리던 익숙한 소음과는 달랐다. 이곳에서는 금속이 갈라지고 녹슬며 터지는 듯한 소리가, 조용한 장서의 성소를 어지럽혔다.


(2)

그는 생각했다. 같은 기계라도 놓이는 장소에 따라 존재의 온도는 달라진다고.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가 분주한 흐름의 일부라면, 도서관의 그것은 침묵을 깨는 돌출음이었다.


남자는 은퇴 후의 삶에서 공간이 사람의 쓰임을 바꾼다는 사실을 익히 체득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는 ‘어디에 있는가’보다 ‘어떻게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노트북 앞에 앉은 그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여기가 좋다. 이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기르자.”


그는 체리 적축 키보드를 떠올렸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을 통해 언어의 흐름을 형성하는 장치. 오타 없는 문장을 위해, 그는 손에 익은 도구를 마련했다. 두 벌의 키보드를 사고, 대형 화면의 최신 노트북을 장만했다. 글쓰기를 위한 무기가 차려졌다. 이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문장으로 세계를 조직하기 위한 그의 갑옷이었다.


(3)

그는 문장이라는 전쟁에 임하는 기술자였다. 과거의 전쟁이 창과 칼의 시대에서 총과 미사일의 시대로 넘어갔듯, 글쓰기도 변화하고 있었다. 조선의 구식 군대가 신식 군대에 무릎 꿇었듯, 이제는 붓 대신 키보드가 주전장에 섰다.


전자문서. 그것은 기억을 저장하고, 문장을 손질하며, 때로는 세상과 빠르게 연결되는 통로였다. 그 관문 앞에서 그는 생각했다.

“이제, 내 언어는 키보드에서 태어난다.”


(4)

그리고 지금, 지식은 질문에서 피어난다. 과거의 검색은 정답을 찾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함께 답을 만들어가는 여정이 되었다. 문학관에서의 봉사도, 법정교육의 교수활동도 결국은 하나의 물음으로 수렴된다.


그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답을 떠올리며, 묻고 대답하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몰입도 높은 학습이라고 믿는다. 지식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맞부딪치는 순간 피어난다고 생각한다.


(5)

“좋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말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정보연구실의 연구자로 선발되어 전용 사물함을 갖고, 정숙한 공간에서 창작의 줄기를 키워나갈 수 있다니.


지금, 그는 자신에게 가장 편리한 장소를 찾는 중이다. 반복되는 자리에 앉아 익숙한 동작을 되풀이하다 보면, 그것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곧 몸의 언어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몸의 현상학’이었다. 글쓰기는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온몸으로 체화되어야 했다. 그렇게 남자는 또 한 줄의 문장을 천천히 화면 위에 띄운다.


그 문장은, 그의 삶을 향해 조용히 노를 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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