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 창간호 기획위원>
니체에게 ‘인정투쟁’은 권력의지의 한 표현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욕망을 지닌다. 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인정욕구가 ‘노예 도덕’으로 타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진정한 삶이란 타인의 인정 자체를 초월하는 ‘초인’의 삶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전철 안, 경쾌한 음악과 함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이 열차는 동인천 급행입니다.”
남자는 용산에서 부평으로 향하는 전철에 올라 주변을 둘러본다. 앞좌석 일곱 자리에 앉은 승객들은 각자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로에게 무관심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일에 열중해 있다.
창밖으로는 구름이 내려앉은 원미산이 스쳐 지나가고, 빗물에 젖은 담장과 기찻길 옆 가로수들이 빠르게 흘러간다.
그 풍경처럼, 남자의 머릿속 생각들도 빠르게 지나간다.
어제 있었던 <현대소설> 창간호 기획위원회를 마치고, 위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자리. 그때 나눈 한 위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전자에서 37년 근무하다 정년퇴직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시스템을 도입할 때, T/F팀 5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지요.”
K 위원은 한국 IT 산업의 1세대다.
“그런데 어떻게 문학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셨습니까?” 누군가 물었다.
“수학 전공은 아버지의 뜻이었고, 전자회사 생활은 먹고살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씨에도 정장 위에 레인코트를 단정히 걸친 K 위원의 모습에서,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한 이의 절제된 품격이 느껴졌다.
“그래요. 결국 중요한 건,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겁니다.”
편집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남자는 돌아오는 길, 그 대화를 곱씹었다.
‘우리는 종종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과,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럴수록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나는 다짐했다.’
<현대소설> 기획위원으로 함께한 분들은, 인생의 후반부에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 일인지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남의 인정을 얻기 위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지혜로운 이들이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창간호 기획위원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자랑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