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다시 청와대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마치 닫힌 책이 다시 펼쳐지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남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안으로부터 밀려오는 감정에 이끌리듯 아내와 함께 그곳을 찾았다. 이번이 마지막 관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여느 여름철 바람처럼 거칠면서도 아릿하게 마음을 간질였다.
북악산이 우람하게 솟아 있는 그 아래, 파란 기와 지붕은 여전히 우아하고 고요했다. 넓게 트인 마당은 햇살을 머금은 채 숨을 쉬고 있었고, 정문을 지나 스마트폰을 꺼내 든 사람들은 마치 인기 가수의 콘서트장을 찾은 관객처럼 흥분과 기대가 섞인 표정으로 셔터를 눌러댔다. 남자 역시 그 대열에 섞여 아내와 함께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갔다.
"이번이 마지막 관람 기회야."
아내가 말했다. 그의 옆에 조용히 서 있던 그 목소리는, 오래전 잊고 있던 약속처럼 따뜻하게 다가왔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정작 청와대 구경은 처음이라는 남자를 위해 아내는 관람 신청을 해두었다.
"하여튼, 마감이 되어야 움직이는 게 버릇이야."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가까이에서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멀찌감치 떨어진 인왕산이나 북악산 어디쯤에서, 청와대 지붕의 일부분이라도 사진에 담기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혹여 경찰에게 휴대전화를 빼앗기진 않을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손을 떨곤 했다. 그렇게 담은 한 장의 사진조차 곧 삭제하고 말았던 시절.
남자는 퇴직한 공무원이었다. 그의 이력 대부분은 지방 근무로 채워졌고, 정년을 채운 뒤에야 서울로 돌아왔다. 우연처럼, 혹은 무의식적 선택처럼,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청와대와 멀지 않았다.
‘아직도 권력의 그늘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를 다그치듯 생각했지만, 그저 이곳의 교통과 주변 환경이 좋다며 둘러댔다.
"나무가 커야 그늘도 넓다."
그는 누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큰사람 곁에 있으면 덩달아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조금은 속물적인 위로.
하지만 문득,
'정말 그런 걸까?'
라는 의문이 스며들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 한양도성 안에 둥지를 튼 이곳은 풍수지리에서도 양택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발을 딛는 순간부터 마치 오래된 꿈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푸르른 반송은 그 가지 끝마다 시간을 매달고 있었고, 숲길로 이어진 오솔길은 잊고 있던 청춘의 한 장면처럼 새삼스럽고 낯설게 다가왔다.
남자는 기억의 물줄기를 따라 걸었다. 현직에 있을 때 이곳에 몇 번 출장 온 적이 있었지만, 그날의 그는 오직 임무와 절차만을 좇았다. 반송이 저토록 아름다웠다는 것도, 그늘진 길 아래 새소리가 저리도 청명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처음 깨닫는 듯했다.
아내는 여전히 그의 곁에 조용히 서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손끝으로 전해지는 체온은 긴 세월을 함께 건너온 이정표 같았다.
그날, 그는 알았다.
청와대를 구경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 아래의 자신을, 그리고 아내와 함께 걸어온 삶을 다시 들여다보았다는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