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의 몰입 ― 눈 감고 타자를 치며

by 소설가 서기주

전철 안의 몰입 ― 눈 감고 타자를 치며

서울 독립문역에서 인천 부평역까지,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다. 매주 강의를 위해 이 긴 여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전철 안의 시간을 다르게 쓰기로 했다. 눈을 감고 키보드 타자 연습을 하는 것, 그것이 나만의 집중 훈련이자 일상의 철학이 되었다.


이 단순한 행위는 생각보다 깊은 몰입을 요구한다. 흔들리는 전철 안, 닫힌 시야 속에서 오직 손끝의 기억만으로 자판을 더듬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행위가 내 마음의 잡념을 말끔히 씻어내 준다. 몰입은 그렇게, 걱정과 불안을 잠재우는 은밀한 묘약이 된다.


나는 이 시간을 '관찰의 시간'이라 부른다. 나만의 방식으로 사유와 성찰을 확장해나가는 순간들이다. 먼저 감각을 깨운다. 눈을 감고 있으니 청각, 촉각, 평형감각이 더 또렷해진다. 칸트의 인식론이 떠오른다. 오감과 오성을 통해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 인식의 틀을 갖추는 일이 감각적 몰입으로 이어진다.


곧이어 구조적 사유로 전환된다. 소쉬르의 구조주의를 빌려, 사물과 사물 사이의 차이를 보고,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을 떠올린다. 지금 이 순간과 어제, 그리고 내일의 시간까지 공시성과 통시성의 틀 안에서 조망해본다. 이항 대립의 틀 속에서 내 사고는 더 정교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의식의 영역이 스민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떠오른다. 억눌린 감정과 욕망, 트라우마의 잔상들이 타자 연습 속에 비집고 들어온다. 리비도, 그 생의 에너지는 손끝을 따라 움직이며 나도 모르게 문장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상상력의 가장 깊은 샘, 어둡지만 창조적인 공간이다.


이윽고 언어의 논리로 되돌아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그 틀을 제공한다. 설득의 세 요소―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떠올리며, 문장을 조율하고, 비유와 강조, 전환의 기법을 연습한다. 맥락을 읽고, 의미를 세우며, 나는 또 하나의 사유의 정원을 가꾸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후설의 현상학으로 향한다. 지향성, 에포케, 그리고 살아 있는 몸. 눈을 감고 있지만, 나는 나의 몸을 감각한다. 흔들리는 전철 속에서 무게 중심을 유지하며 앉아 있는 이 몸은, 의식의 바깥에서 무언가를 향하고 있다.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느낌이 문득 든다.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며 나는 생각한다. 이 반복된 전철의 여정은, 그저 이동이 아닌 하나의 수행이다. 다섯 가지 관찰법―감각, 구조, 무의식, 수사, 본질―을 일상의 루틴으로 삼는 동안, 내 안의 생각은 더 정제되고, 마음은 더 평온해진다.


사람들은 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만, 나는 눈을 감고 손끝으로 또 하나의 세계를 펼친다. 그것은 나만의 시간, 나만의 철학, 그리고 나만의 자유이다. 이 여정은 단지 부평까지의 이동이 아니라, 내면을 향한 작은 순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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