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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08. 2021

내 브런치 글의 최애독자

은퇴 후 난생처음, 브런치 글쓰기(4)

브런치에 올 7월부터 글을 썼다. 만 4개월이 지났으나 추석 때부터 한 달 넘게 글 방학을 가졌으니 실제론 만 3개월을 브런치와 함께 했다.


처음엔 글쓰기 고수들만 모인 곳에 합류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다. 고심 고심해서 초고 겨우 하나 써놓고 조물락거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내가 내 글에서 나가떨어질 만큼 지칠 때쯤, 눈 질끈 감고 '아, 이젠 나도 몰라' 심정으로 무시무시한 '발행' 두 글자를 눌렀다. 그러고 나면 어디선지 모르지만 라이킷의 화살들이 날아와 내 심장을 관통했다. 그 화살촉엔 무슨 묘약을 발라놓았는지 라이킷을 맞으면 행복했다. 라이킷 알람이 뜰 때마다 마음이 붕붕붕 구름 타고 하늘을 떠다녔다.


조회수도 괜스레 궁금해져 수시로 통계를 뒤져봤다. 가~끔 아주 가.... 끔 달리는 댓글도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브런치 작가들은 댓글도 어찌나 품격 있게 쓰는지 어떤 날은 댓글 칭찬 한마디에 세상을 얻은 듯 했다.


무엇보다 댓글에서 말끝마다 "작가님 작가님" 불러주니 잠시의 쑥스러움을 넘어 내가 진짜 작가라도 된 양 우쭐함과 설렘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세상에나 내가 작가라니...' 작가는 글로 밥 벌어먹고사는 전업글꾼들에게 붙이는 호칭 아닌가. 한 번도 작가를 지망해본 적도 없고, 작가를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고, 글 짓는 예술가 작가는 나와는 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그런 내가 작가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글의 일 조회수 50이 안 되는 나의 비루한 글에도 쨍하고 볕 든 날이 있었으니, 조회수 소나기를 맞은 것이었다. 무슨 알고리즘인지 몰라도 다음 메인에도 걸리고 브런치 메인에도 걸리더니 어떤 글은 조회수가 9만이 넘고, 어떤 글은 13만이 넘기도 했다. 첨에는 '쓰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썼는데 남이 많이 봐주니 기운이 났다. 세상과 소통하는 정도를 넘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조회수 맛을 보고 나니 언젠가부터 라이킷 수, 댓글 수, 구독자 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브런치 선배들이 그토록 브런치 4대 망령을 조심하라고 했건만 나도 그 늪에 빠지고 말았다. 어떤 글은 라이킷도 빵빵하고 댓글도 주렁주렁 붙는다. 왜 누구는 글은 몇십 개 안되는데 구독자가 1000명, 2000명이 넘는 것일까?


나의 흐르는 시간을 기록하고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니 '내 내면의 목표에 충실하면 되지'라며 마음을 다스려보지만 여전히 남 글의 구독자 수에 곁눈이 간다. 그럴 땐 내 글과 함께 나도 초라해진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인간들은 왜 이리도 많은 걸까?


언젠가 TV에서 여배우 문소리가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배우 문소리가 이창동 감독과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문소리 : 감독님, 저는 여배우하기엔 안 예쁜 게 아닐까요?

이창동 : 너도 배우할 만큼 충분히 예뻐. 다른 예쁜 사람들이 많은 거지.


나도 내게 물었다.

질문하는 나 : 나, 브런치 하기에 너무 글을 못쓰는 게 아닐까?

대답하는 나 : 너도 글 쓸 만큼 충분히 잘 써. 글 잘 쓰는 다른 사람들이 많은 거지.


브런치에는 글 잘 쓰는 사람과 더 잘 쓰는 사람이 있다. 또 이런 글 쓰는 사람과 저런 글 쓰는 사람이 있다.

작가군이 수직으로도 층층이, 수평으로도 다양하게 존재할 터, 그 수직 수평의 어느 자락쯤 나도 한자리 얻어 있다는 게 감사하지 않은가. 나는 그냥 내 자리에서 그냥 내 글을 쓰면 안 될까? 


글 하나하나마다 읽고 또 읽고 수십 번 읽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를 한 편씩 발행할 때마다 나 자신을 칭찬하자. 남이 좀 덜 읽어주면 어떤가. 내 글엔 가장 든든한 최애독자 내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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