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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Aug 14. 2021

나이 들어 절대 그만두면 안되는 것

은퇴 후 난생처음, 라인 댄스

"나이 들어 절대 그만두면 안 되는 게 두 가지야. 바로 댄스와 걷기." 내가 존경하는 퇴직 선배가 내게 한 말이다. 난 이 말을 나의 은퇴 생활의 중심 모토로 삼기로 했다. 


올해 3월 중순부터 라인 댄스를 시작했다. 예전에 동네 복지관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나가다 말고를 반복하면서 살짝 맛보기는 했었다. 이제 퇴직도 했겠다, '라인 댄스를 나의 평생 운동으로 삼겠다'는 야심찬 생애 프로젝트의 하나로 댄스 학원에 등록한 것이었다.


'댄스, 탁구와 걷기 세 가지 중 뇌 활동이 가장 활발한 운동이 댄스, 두 번째가 탁구, 마지막이 걷기'라는 데이터를 본 적이 있다. 음악의 박자에 맞춰 스텝도 밟아야 하고 동작 순서도 외워야 하니 그 어떤 운동보다 뇌를 많이 쓴다는 근거에서였다. 순간 내가 평생 해야 하는 운동이 댄스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게다가 신나는 음악과 함께 땀 흘리니 엔도르핀도 마구 마구 분비될 거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같이 하니 정서적 유대감에 우울증은 들어올 틈이 없으리라. 시간에 맞춰 교습에 가야 하니 강제성이 있다. 직업병의 여파인지 '진도'에 약한 나는 새 안무 진도에 안빠지려고 나가겠지. 그리하여 헬스나 걷기와 같은 나홀로 운동보다 라인 댄스가 내게 훨씬 맞을 거란 결론에 이르렀다.


라인 댄스를 다닌 지 5개월이 지났다. 이제 잘 추냐고요?


어떤 날은 할만하고 어떤 날은 시계만 본다. 오늘이 바로 후자의 날이었다. 자괴감에 라인 댄스 '썰'을 안 풀 수가 없다. 스스로를 판단컨대 나는 완전 몸치는 아닌 것 같다. 몸에 리듬이 흘러내리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반복 학습에 의해 따박따박 동작만 따라 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학습 잠재성만 있는 학습자이다. 아직도 음악 흐름을 못 타서 언제 시작하는 지 몰라 항상 앞사람을 보고 따라 하는 사람이다.


동네에서 라인댄스를 해 본 경험도 있겠다, 따라갈 자신도 있었다. 용감하게 중급반에 들어갔는데 가운데 서서 헛발질만 하면서 빙글빙글 돌다가 한 시간이 끝나버렸다. 말이 한 시간이지 체감시간은 10시간이었다. 이런 날이 일주 이주, 한 달째 이어졌다. 보충하기 위해 1시간 더 일찍 하는 초급반도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차례 댄스학원에 갈 때마다 꼬박 2시간을 했다. 운동 효과로는 1시간에 5,000보쯤 되니 댄스 2시간에 1만보인 7km를 걷는 운동량이다.


단체 댄스 교습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존반에 투입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배워본 적 없는 춤은 좀처럼 따라가기 어렵다. 첫 두 달은 댄스가 아니라 고문이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 짓을 하고 있나. 시간 내고 돈 줘가며 스트레스받고...'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부진아에게 절절이 공감을 보낸다. 


라인 댄스 초보자인 내가 겪은 괴로움을 토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발 동작이 틀리고 스텝이 꼬이면 몸의 무게 중심이 무너져 몸이 휘청 넘어가려 한다.
2) 내 몸만 기우뚱거리는 건 다행이다. 잘못하다간 다른 사람이랑 부딪힐 수도 있다.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고 실수도 그런 실수가 없다.
3) 회전을 엉터리로 해서 앞뒤 옆 사람이랑 정면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민망함과 창피함이 하늘을 찌른다.
4) 라인 댄스는 방향 전환도 어찌나 많은지 빙글빙글 돌다 보면 어지럽기까지 하다.
5) 스텝을 외우려고 과도하게 신경 쓰면서 하다 보니 두뇌 회전이 용량 초과가 되어 두통이 온다.


그러나,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1) 댄스 도중 몸이 휘청거릴지언정 넘어진 적은 없음.
2) 옆사람과 일정 간격을 두고 하므로 댄스 도중 다른 사람과 부딪힌 적도, 남의 발을 밟은 적도 없음.
3) 방향 전환이 많은 라인댄스에서 회전 실수는 고수들도 간혹 함. 민망한 건 순간일 뿐.
4) 댄스를 다 익히지 못해도 회전 포인트만 먼저 찾아내는 연습을 하면 어지러움증은 자연 감소함.
5) 댄스 동작을 완벽하게 따라 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두통은 사라짐.


댄스 5개월째인 오늘따라 내가 안 배운 옛날 곡을 어찌나 많이 틀든지 도무지 따라하지 못한 댄스가 많았다. 자리도 어쩌다 맨 바깥쪽 라인에 서게 되어 처음부터 불안했는데 역시나 댄스 도중 방향이 바뀌어 내가 맨 앞줄이 되자 '보고 따라 할 대상'이 사라져 멘붕이 왔다. 눈치 빠른 선배 교습생이 알아서 자리를 바꿔 주었다. 잘하는 사람이 맨 바깥쪽 줄에 서고 초심자를 가운데로 넣어주는 게 이 바닥의 센스이고 배려이다.


사실 유튜브에 곡명만 치면 레슨이 널리고 널렸다. 나는 집에서 *미국 달라스의 라인 댄스팀의 영상을 보며 나머지 공부를 한다. 한국 댄스팀은 너무 잘해서 따라 하기가 어렵다. 기교가 많고 상체를 맵시 있게 흔들면서 하는 경우가 많아 발동작만 겨우 하는 초보자인 내게는 오히려 학습에 방해가 되었다. 달라스의 라인 댄스팀이 우리 집에 숨겨둔 나의 댄스 우렁각시이다.(*라인 댄스는 곡 하나에 안무가 전 세계적으로 같은 댄스임. 미국 서부에서 카우보이들이 줄 맞춰 춤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함.)


https://youtu.be/Oo-ubb0Pb4M


사실 5개월쯤 되니 댄스를 따라 출 수 있는 음악이 모르는 곡보다 훨씬 많아졌다. 어떨 땐 내가 충분히 할 줄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음악이 나오니 몸이 저절로 알아서 따라가 주는 신기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이때의 짜릿함을 어찌 말로 하리. 다른 사람과 스텝과 회전이 딱딱 맞아떨어지면 그날따라 음악도 더 흥겹고 기분은 하늘을 찌른다.


내가 미국 여행을 가게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달라스에 들러 이 댄스학원을 찾아가볼 생각이다. 얼굴색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댄스에 진심인 그녀들이랑 댄스 한 곡 땡기며 동호인으로서의 연대감을 만끽해보고 싶다. 언젠가 함께 춤출 날을 꿈꾸며, 오늘 밤도 나의 춤선생이랑 스텝을 밟는다.




% 커버 이미지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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