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하루 한 번은 꼭 이용하게 되는 것이 호텔이다. 여행자에게 하룻밤 침대 하나를 내어주는 호텔은 세계 어디를 가든 서비스의 내용이나 이용 방법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이나(China)에선 차이(差異) 날까?” 중국 호텔을 이용하면서 놀란 점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첫째, 호텔에 해당하는 중국어 단어가 한둘이 아니다.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표의문자를 쓰는 중국에서는 호텔명에 'HOTEL'이라는 다섯 자의 영어 알파벳을 잘 써놓지 않는다. 호텔을 이용하려면 길거리에서 호텔에 해당하는 중국어 간판을 찾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사천만이 좋아하는 사지선다 퀴즈를 하나 풀어 보자.
[퀴즈] 다음 중 중국에서 호텔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것은?
① 빈관(宾馆) ② 여관(旅馆) ③ 주점(酒店) ④ 반점(饭店)
정답은 뭘까? 애써 답을 고른 이에겐 미안하지만 이 문제는 답이 없다.
한자 간판 빈관과 여관만 호텔인 것은 아니다. 주점과 반점도 다 호텔이다. '한자를 아는 자'의 불행이랄까? 빈관과 여관은 손님과 여행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호텔이라지만 술집으로 읽히는 주점이 호텔이고 밥집의 한자어 반점도 호텔이라니. 심지어 중국의 주점과 반점은 빈관과 여관보다 더 고급 호텔이다. 우리도 옛날에 주막에서 나그네가 술 먹고 밥 먹고 잠도 잤던 것을 떠올리면 납득이 될까? 중국에서 주점은 ‘호텔+주점’, 반점은 ‘호텔+식당’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참고로 가격은 대체로 '대주점 > 주점 >= 반점 > 빈관 > *여관' 순이다.(*여관은 외국인 숙박 안됨. 빈관 중에도 내국인 전용 숙소는 외국인 숙박 불가)
둘째, 호텔 하룻밤 요금의 끝자리 숫자가 수상하다.
이제 호텔을 찾았으니 호텔로 들어가 보자. 호텔 리셉션에서 숙박 요금을 물어보니, 1박에 168위안(元, 1元=한화184원, 2021년 11월 기준), 268위안이란다. 200위안, 300위안이 아닌 건 그렇다 치고 170위안, 270위안도 아닌 이 애매한 숫자로 끝나는 금액은 또 뭔가. 거스름돈 주고받기도 성가시고, 신용카드나 oo페이 결제가 흔한 요즘, 가격 기억하기에도 나쁜데 말이다.
중국인의 '숫자 8 사랑'은 유별나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2008년 8월 8일 8시 8분에 하려다가 8분 당겨 8시에 거행된 건 명백히 실화이고 중국인의 8자 사랑의 끝판왕 사례이다. 숫자 8(八 [bā])의 중국 발음 '빠'가 ‘부자 되다’인 ‘파차이(发财 [fācái])’의 '파(发 [fā])'와 발음이 비슷해서 좋아한다고 한다. 숙소에 가면 와이파이 비번이 8이 8번 ‘88888888’인 경우도 많다. 이렇게 발음이 비슷한 것을 연관시키는 것을 해음 현상이라고 한다.
숫자 6이 8보다는 밀리지만 인기 있는 이유도 해음에 해당한다. 일이 술술 잘 풀리다(순리顺流 [shùnliú])의 ‘리(流 [liú])’와 '숫자 6(六 [liù])'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호텔 요금이 다 이런 식은 아니지만 숫자 8이나 68로 끝나게 책정된 요금은 매우 흔하다.
셋째, 호텔 객실에 들어서면 숙박객을 놀라게 하다 못해 당황시키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욕실문이 투명 유리로 되어 있거나 욕실과 객실간 통창이 있다는 점이다.
침대에서 욕실에 있는 상대방의 실루엣을 투명 또는 반투명 유리로 볼 수 있는 구조다. 로맨틱, 아니 에로틱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 인테리어가 아닐까? 모텔 문화를 일반 호텔까지 가져온 것 같다. 해결 방법은 있다. 욕실 쪽에서 블라인드를 내려 차단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많은 호텔들이 야진(押金 [yājīn])을 요구한다.
야진은 객실 내의 물건 손괴나 도난을 대비해 받는 보증금(디파짓 Deposit)이다. 야진의 금액은 적게는 100위안부터 많게는 하룻밤 숙박비에 달한다. 체크인할 때 숙박비와 야진을 같이 받는 경우가 많고, 영수증을 각각 끊어준다. 체크아웃할 때 야진 영수증을 보여주면 객실 검사를 한 후 이상이 없으면 야진 전액을 돌려준다. 문제는 이 야진을 투숙객이 잘 기억해두었다가 체크아웃할 때 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과 몽고, 러시아의 접경지역인 만주(만저우리(满洲里 [Mǎnzhōulǐ]))를 여행할 때 일이다. 내게 여행 전 만주는 ‘독립투사들이 말 달리던 곳’이었지만 여행 후 만주는 ‘야진 떼인 곳’으로 남았다. 빈관(宾馆)에서 하룻밤 숙박비 400위안 부르는 걸 흥정 끝에 300위안과 야진 100위안을 주고 잤다. 다음날 밤기차로 하얼빈동역으로 이동했고 뒤늦게 만저우리(만주) 숙소에서 야진 안 돌려받은 걸 생각해냈다. 하얼빈에서 만저우리까지 13시간 기찻길을 다시 갈 수도 없고, 100위안 깎느라 실랑이한 걸 생각하니 속이 이만저만 쓰린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숙박비 계산서와 야진 영수증도 안 끊어줬다.
100위안은 액면가로는 한국돈 2만 원 남짓이지만 중국의 가장 큰 화폐 단위로 우리나라 5만 원권이나 미화 100달러 한 장과 동급의 위상을 지닌다. 그래서인지 체감상 10만 원쯤의 손해로 가슴에 꽂혔다. 내가 영수증 못 챙긴 것과 체크아웃할 때 야진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분명 나의 실수였다. 하지만 지금도 궁금하다. 그때 웃는 얼굴로 작별 인사하며 우리 뒷모습을 지켜보던 숙소 주인은 실수였을까 고의였을까?
우리 외국인에게 중국 호텔의 야진(押金 [yājīn])은 매우 불편한 제도이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는 없는 거라 자칫 놓치기 쉽다. 더군다나 숙박요금이 선불이니 체크아웃할 때 짐 신경 쓰다 보면 짐만 달랑 챙겨 "짜이지엔"하기 쉽다. 중국을 여행하는 이들은 명심하고 또 명심하자. “중국 호텔에선 자나 깨나 야진 조심!”
** 이 글은 여행 시기(2009~2017년) 동안의 개인적 경험에 기초하였으며 최근에는 체인형 호텔 등 야진을 받지 않는 곳도 많이 생기는 추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