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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05. 2021

칭따오에선 칭따오지

중국 칭따오(靑島) 여행

칭따오(靑島Qingdao)에서는 단연 칭따오(靑島Tsingtao)가 주인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칭따오는 중국의 도시명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맥주 이름이다. 도시 칭따오는 몰라도 맥주 칭따오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자기가 태어난 도시보다 더 유명해진 맥주 칭따오라니. 다만 맥주 칭따오는 태생이 외래에 의한 것임을 부정할 순 없는지 프랑스 극동학원(EFEO)식 표기법에 따라 애초에 명명된 상품명으로 공식 병음 Qingdao 대신 Tsingtao를 쓴다.

     

청나라 때 서강 열강들이 중국 땅을 나눠먹기 하던 조계지(租界地) 시절, 독일은 칭따오가 위치한 자오저우만(胶州湾 [Jiāozhōu Wān] 교주만)에 키아우초우 해군기지를 건설하게 된다. 이곳에서 질 좋은 지하수를 발견한 독일이 영국과 합작으로 1903년 칭따오에 맥주 공장을 세워 독일의 생산 설비와 원재료를 도입해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니 칭따오 맥주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칭따오는 생산 3년 만에 독일 뮌헨 국제박람회 금상 수상에, 세계 10대 맥주에 포함됨은 물론, 최근 몇 년 매출액 기준 세계 2위에 랭크하는 맥주가 되었다. 칭오맥주는 이제 맥주박물관과 맥주 거리, 맥주축제로 자기가 태어난 도시에 자기 이야기로 스토리를 입혀 자기 도시를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보다 맥주를 못 만드는 나라'라니, 맥주 맛없기로 소문난 나라의 여행자는 부럽기만 하다.

     

칭따오에 갔을 때 일부러 맞춘 건 아닌데 여행일이 여름 맥주 축제 기간과 겹쳤다. 첨엔 웬  행운인가 했는데 내국인도 함께 칭따오로 몰려드는 시즌이다 보니 숙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가까스로 정한 숙소가 칭따오의 명물 골목 피차위엔 부근이라 숙소를 들락날락거리는 여행 기간 내내 갖가지 먹거리와 맥주를 둘러싼 관광객들의 흥청임 속에 덩달아 취해 지냈다.

       

칭따오에서는 노산, 신호산공원, 잔교와 서양식 건물과 천주교당, 5.4광장 등을 둘러보며 이국적이고 세련된 칭따오의 면면에 혹했다. 한편 바다와 산을 낀 수려한 해안도시 칭따오는 청정하고 아름다웠다. 어쩌면 내가 가본 중국 도시 중 샤먼과 함께 가장 *중국스럽지 않은 도시 중 하나가 아닐까?(*중국스럽지 않게 세련되고 깨끗한(?)...) 이런 칭따오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건 칭따오였다. 이름하여 칭따오 봉지 맥주.  

   

칭따오 일반 가게에서 봉지에 담아 파는 칭따오 생맥주 ⓒ위트립


칭따오 시내에서는 길가 가게 앞에 대형 보냉병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칭따오 시내에서만 유통된다는, 만든 지 24시간 내만 맛볼 수 있다는 칭따오 원장(原浆, 위앤장), 즉 칭따오 생맥주였다. 유리잔도 없이 휴대용 간이 컵도 없이 비닐봉지에 담아 판다. 비닐에 담아 빨대를 꽂아 마신다.

     


500mL에 한국돈 500원이 안 되는 칭따오생맥주 ⓒ위트립


불행히도 비닐 봉지 속의 누르스름한 액체의 색깔은 우리 모두가 상상하는 바로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500mL에 2~2.5위안(元)쯤하니 한국돈 500원이 안되고 현지 슈퍼마켓 생수값보다 싸다. 비주얼은 좀 거시기하지만 빨대로 한 모금 빨아올리는 순간 쌉싸름하고 달큼한 듯 시원하게 맛있다. 반전이다. 그러니 물 대신 칭따오 원장 생맥이 인기일 수밖에. 폼 좀 안나도 맛있고 싸면 다 용서된다. 나도 모르게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중국식 실용주의가 되어 버렸다.

     

맥주 한 봉지로 차린 술상, 칭따오와 양꼬치의 환상 콜라보 ⓒ위트립


칭따오맥주는 부드럽고 목 넘김이 편하다. 청량감이 좋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물, 맥아, 호프 외에 부가물로 쌀을 넣어 칭따오만의 맛을 낸다고 한다. 거품은 많지 않지만 탄산도 어느 정도 들어있어 기름기 많은 음식과 잘 어울린다. 대표적 단짝 안주가 양꼬치다. 그러니 칭따오 여행에선 그 누구도 ‘1일 1봉지맥, 1일 1양꼬치’를 피해 갈 수 없다.

     

올여름 가족 휴가로 간 경주에서 우리 네 식구는 첨성대 저녁 산책을 마치고 편의점에 들러 각자 마실 맥주를 골랐다. ‘세계 맥주 4캔에 1만 원’ 상품은 우리 가족의 인당 주량과 총주량을 귀신같이 맞춘 구성이다. 다들 맥주 한 캔이 주량인 ‘알콜과 안 친한 사람' 넷이 각자 손에 맥주 하나씩 들고 '우리 집에서 내가 주량이 제일 세네' 허세를 부리며 ‘맥주 딱 한잔’하기에 딱이다. 이럴 때 내가 픽(Pick)하는 맥주는 언제나 변함없다. 칭따오 여행에서 주야장천 마셨던 칭따오 봉지맥의 추억을 칭따오 캔맥으로 길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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