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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09. 2021

백두산 가다 말고, 강건너 북한

나는 매번 섬나라 남한에서 중국을 간다. 누구는 섬나라 남한이란 말에 동의가 안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마음속의 한반도는 두 동가리가 아니니까. 가까운 외국이라도 가려 치면, 일본은 원래 섬나라니 비행기나 배로만 갈 수 있다. 중국을 가기 위해 유라시아 동북쪽 끄트머리 한반도의 남쪽반틈 어디쯤에서 출발한다고 해보자. 분명히 중국과는 한덩어리로 연결되어있는데도 육로로는 갈 수가 없다. 북한과 우리가 단절되어 있는 한, 남한은 지형학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이동(移動)학상으로는 섬나라나 다름없다.

     

백두산 위치 개념도(지도 출처 baidu)


섬나라 남한은 백두산 갈 때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어릴 때부터 마르고 닳도록 불러온 우리에게 누가 뭐라 하든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절대적으로’ 우리 땅이다. 이런 우리 땅 백두산을 가겠다는데 중국 비자를 받아 중국으로 가서 중국 땅만 밟아야 겨우 백두산에 오를 수 있다.

     

백두산을 가기 위해 청주에서 션양(심양) 가는 비행기를 탔다. 심양에서 밤기차로 12시간을 가서 다음날 새벽 6시 반에 백두산 서쪽 아래 마을 송지앙허(송강하 松江河 [sōngjiānghé])에 도착했다.

      

백두산에 오르는 코스는 북쪽과 서쪽, 남쪽 3가지이다. 이것을 각각 ‘북파(北坡), 서파(西坡), 남파(南坡)’라고 한다. 가장 많이 가는 코스가 북파, 두 번째가 서파이다. 남파는 중국에서 출발하되 북한 땅을 경유하는 길이라 상황에 따라 닫히기도 한다. 북파는 이도백하에서, 서파는 송강하에서 각각 출발하고 남파는 송강하를 거쳐 장백현에 가서 진입해야 한다.

    

여행길만 나서면 욕심이 앞서는 나는 2박 3일간 세 코스를 다 올라 백두산 천지를 세 번 보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첫날 송강하에 숙소를 정하고 장백에 가서 남파 오르기, 둘째 날 오전에 송강하에서 서파를 오른 후 서파 중턱에서 북파로 넘어가 오후에 북파 쪽 백두산을 관광하고 이도백하로 내려오기. 사전 정보대로 차편만 맞아떨어진다면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백두산 여행의 서쪽 베이스캠프격인 송강하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정한 후 남파를 가기 위해 장백행 버스를 탔다. 도중에 남파 산문 부근에서 내리는 사람은 남편과 나 두 사람밖에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파가 닫혀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내렸던 버스에 다시 올라 장백현까지 갔다.


송강하에서 장백현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조선족자치주라 한글 이정표가 반갑다. ⓒ위트립


장백에 11시쯤 도착하자마자 돌아갈 대책부터 찾았다. 송강하 가는 차는 이미 표가 동났고 장춘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리면 된다고 해서 장춘행 2시 반 표를 예매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보이는 '자유여행자'는 알고 보면 낯선 여행지에서 "버스가 다 왔다"는 말이 가장 두렵고, 어딜 가든 목적지에 가자마자 돌아갈 교통편을 걱정하는 신세란 걸 남들은 알까?

     

그리하여 불발된 백두산 관광 대신 장백현 관광을 하게 되었다. 버스터미널에서 5분 정도 걸으니 강이 넓게 펼쳐졌다. 폭은 넓었지만 수심 얕은 강에 강둑이 수직 성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난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중국의 한 조선족 마을에 서 있는 줄만 알았다. 그 강이 바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인 압록강이요, 철벽처럼 쌓아 올린 강둑은 도강해 오는 탈북자가 오르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국경 장벽 시설이란 것을 한참만에 알아차렸다.

     

강의 오른쪽이 북한의 혜산시, 강둑 쪽이 중국의 장백현이다. ⓒ위트립


강둑으로 난 길로 걸으면서 북한 혜산 쪽을 볼 수 있고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다. ⓒ위트립


강 건너 보이는 곳은 북한의 량강도(양강도) 혜산시였다. 백두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압록강이 흐르는 곳이다. 예전엔 다리가 있었는지 끊어진 다리도 보였다. 버스 차창 너머로 많이 보이길래 무슨 가축 축사이겠거니 짐작했던 곳들은  민간인 집이었다. 판자를 얼기설기 덧대놓은 곳들이 사람 사는 집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거의 판자촌 수준이었다.


건물 벽에 무슨 붉은 글씨들의 구호도 적혀 있었다. 강 건너 북한은 보기 불편할 정도로 남루했다. 간간이 보이는 콘크리트 저층 아파트들은 최고급 시설에 속했다.


장백현에서 바라본 북한의 혜산시 ⓒ위트립


혜산시의 압록강변에 접한 마을 ⓒ위트립



구호가 보여서 당겨보았다. "수령, 태양, 장군", "장군님 따라 천만리" ⓒ위트립


북한 측 강변엔 석재 채취가 한창이었다.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이 강바닥에 내려와 작업 중이었다. 강물에 오토바이를 씻는 남자도 빨래를 하는 여자도 보였고 놀이에 열중인 아이들도 있었다. 북한 측 강둑에 초소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경계 중인 군인도 보였다. 강에서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철책 사이로 난 쪽문을 이용하고 있었다.


압록강변에서 석재 채취에 한창인 북한 주민들 ⓒ위트립
북한 주민들이 강물에 오토바이도 씻고 빨래도 한다. 아이들은 놀이에 열중이다. ⓒ위트립


아마도 강가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겠거니. 초소 옆 철책 쪽문을 이용한다.  ⓒ위트립


북한 땅과 북한 민간인을 지척에서 보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북한에서 이 강을 건너 오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여기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탈북 코스라고 한다. 자기네 같은 사회주의 형제국끼리도 맘놓고 못 오가는 '강건너 저쪽'이 바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진짜 섬나라구나.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북한을, 비행기 타고 멀리 중국 끝자락까지 와서 처연히 바라보고 있는 우리 남한 사람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압록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다리가 끊어지면서 살벌한 죽음의 경계가 되었다. ⓒ위트립


남파가 열려있었다면 백두산으로 바로 올라갔을 테니 장백현까지 안 왔을 테고 ‘북한 관광’은 놓쳤겠지. ‘시간 내고 돈들이면 갈 수 있는 곳 백두산’ vs ‘시간 내고 돈 내도 갈 수 없는 곳 북한’, 이쯤 되면 백두산 관광보다 더 귀한 북한 관광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더 귀한 것부터 먼저 보게 되었다. 백두산은 내일 가면 된다.




<< 백두산 여행 팁 >>

- 한국에서 가기 : *연길, 장춘, 심양 공항 이용
 (* 북파를 많이 이용하다보니 연길이 가장 편리한 공항이고, 직항 편도 많음.)
- 추천 시기: 7~8월. 춥지 않고 야생화가 만발함.(9월만 되어도 춥다고 함.)
- 아래 코스 참고(2015년 기준, 서파 코스는 직접 다녀와 검증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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