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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11. 2021

백두산 천지에 올라

백두산 가기 첫 번째 코스인 남파를 통해 천지에 오르기는 실패했다. 남파 산문이 닫혀있다니 방법이 없었다. 현지 송강하 버스터미널 앞의 택시기사들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인가? 그보다는 현지 정보도 틀릴 만큼 남파쪽 길이 수시로 열렸다 닫혔다 하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생각지 않게 장백에서 북한의 혜산시를 본 것은 백두산 오른 것 이상으로 보상이 되었다.

    

백두산 위치(지도 출처 Baidu)




송강하에서 자고 둘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진짜 백두산으로 가야지. 정보에 의하면 숙소 앞에서 1번 버스를 타고 20여분 가면 서파 산문 매표소가 나온다. 버스를 타고 30분도 넘게 갔는데도 백두산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버스 1번을 탄 게 아니라 2번을 탔단다. 중국어 숫자 발음은 우리나라 발음과 비슷한 게 많은데 우리나라 발음과 반대로 읽혀 헷갈리는 숫자 1과 2이다. 1번 버스를 무의식 중에 2번 버스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1  2  3  4  5    6    7  8      9     10
중국어발음  이 얼 싼 쓰 우 리우 치 빠 지오우 셔으
한국어발음  일 이 삼 사 오  륙   칠 팔    구     십

 

버스를 잘못 탔다는 걸 알고 내렸다. 고맙게도 같은 버스에서 내린 아주머니가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고 하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길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마을 사이사이로 30분 넘게 가서야 서파 입구에 도착했다. 여행하면서 느낀 거지만, 중국에서 길 가르쳐줄 때 ‘조금만 가면 된다’, ‘안 멀다’란 말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중국 사람들 먼 것과 우리나라 사람들 먼 것은 차원이 다르다.

    

백두산(장백산, 창바이산) 서파 매표소(왼)와 완다그룹의 리조트 단지(오) ⓒ위트립


백두산 자락에 스키장을 개발하는지 매표소 인근에 완다그룹의 어마어마하게 큰 리조트 단지가 보였다. 입구에서 입장료와 백두산 안에서의 교통편을 같이 끊고 셔틀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백두산을 올랐다. 가다가 내려주는 곳에서 걸어가야 한다. 국가에서 지정한 AAAA급 이상 관광지는 거의 다 이런 식인데 하물며 백두산은 최고 경관에 속하는 AAAAA급이다. 내가 트래킹하고 싶다고 걸어서 갈 수 없다. 중국에서는 시키는 대로만 정해진 탐방로로만 관광해야 한다.

      

백두산을 오르는 셔틀버스 ⓒ위트립


탐방로는 이곳 뿐. 정해진 방식으로만 관광하므로 중국에서는관광지에 가기만 하면 준패키지 관광이 된다.


셔틀버스 주차장에서 천지까지는 900미터이다. 버스에서 내려 천지까지 1442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안내판에는 해발 2000m 구역이니 힘을 잘 조절해서 오르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


계단을 오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백두산은 역시 화산이라 여느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산세가 여행자의 시선을 제압했다. 흘러내리던 용암 덩어리는 근육질 남성의 팔뚝처럼 불룩불룩 솟은 윤곽으로 굳었고 지금도 그 아래 에너지를 압축하고 있는 듯 힘이 느껴졌다. 초록 능선에 그림처럼 펼쳐진 고산화원(高山花園)의 갖가지 키 작은 야생화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셔틀 주차장에서 시선이 가는 대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가며 40분쯤 걸어 오르니 천지에 도착했다.


백두산이 화산임을 인증하는 지형들 ⓒ위트립


중국 관광지의 합법적 교통수단인 가마꾼. 보통 고령의 어르신을 태우고 가족들이 뒤를 따르며 관광한다. ⓒ위트립


내 눈앞에 펼쳐진 이게 정녕 백두산 천지란 말인가! 수십 년 동안 달력 사진에서, 건물 현관의 대형 액자에서 봤던 천지 모습을 ‘그대로 떠서' 옮겨 놓은 듯, 호수 천지가 내 앞에 있었다. 뭉클했다. 순간 감정선을 조금만 더 따라 들어가면 눈물이라도 떨어질 기세였다. 백두산 가이드들의 표현대로라면 ‘천지는 번 올라가서  번 볼까 말까’해서 백두산이라는데 2%의 확률이 단번에 100%의 마법을 부렸나? 하물며 그 마법의 수혜자가 ‘나’라니, 여하튼 맑은 날씨 아래 백두산 천지의 맑디 맑은 검푸른 물빛을 보고야 말았다.

     

구름이 수시로 드리웠다 걷혔다를 반복하는 백두산 천지 ⓒ위트립


백두산(해발 2750m) 천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천지는 화산 폭발 후 화구가 메워지면서 주변 지형이 같이 함몰되어 움푹 패인 지형을 만들고 거기에 물이 고여 생긴 호수로서 칼데라 호수로 분류된다.


천지는 호수면 고도가 2000m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분화구 호수이고 동시에 수심 또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라고 한다. 천지의 수면 고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화산분출물의 양이 많아 거대하게 쌓인 매머드급 화산이란 증거이다. 또 칼데라호의 수심이 깊다는 말은 화구가 커서 칼데라가 수직으로 깊게 형성되었다는 걸 의미하니 분출 당시 폭발성 또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2010년 유럽 상공을 검은 화산재로 덮어 전 세계 항공대란을 가져왔던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Eyjafjallajokull) 화산의 화산폭발지수(VEI:Volcanic Explosivity Index 0~8 VEI 8이면 슈퍼화산)가 4였다고 한다. 이에 반해 약 1000년 전 분출한 백두산의 VEI는 7로 추정된다니 백두산의 화산학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화산학자들은 백두산이 분출한다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대폭발이 될 거라고 한다. 천지의 20억 톤의 물이 분화 시 폭발력을 더 끌어올릴 거라고 한다.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의 지진 기록과 천지의 수온 조건을 볼 때 백두산 화산 폭발이 멀지 않았다는, 언젠가 TV에서 본 폭발 시뮬레이션 영상이 오버랩되었다. 지금 현재 휴지기로 숨을 고르고 있는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며 '언젠가 지구의 에너지가 터져나올 지점의 최고 정점'에 내가 서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보았다.

     

천지 관광도 잠시, 감개도 무량하게 백두산에서 하산한다. ⓒ위트립


천지의 포토존에는 사람들이 많아 들어가 볼 엄두를 못 내었다. 천지에 15분쯤 있었을까? 천지는 좁아서 뒤에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천지'를 비켜줘야 했다. 셔틀을 타고 내려오면서 제자하(梯子河)에 들렀다. 제자하는 용암이 흘러 굳으면서 위는 좁고 아래로 가면서 폭이 넓어지는 사다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작은 협곡이다. 서파 쪽의 대표적 볼거리인 금강대협곡(金剛大峽谷)도 놓칠 수 없었다. 화산재가 수직으로 굵고 가파르게 굳어 만든 검회색 응회암 병풍이 70km 길이로 이어지고 계곡의 폭은 무려 200m가 넘는다.

     

백두산 서파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제자하 협곡 ⓒ위트립


백두산 서파의 자랑, 서해대협곡 ⓒ위트립


잰걸음으로 금강대협곡을 둘러보고 서파 산문에서 북파 산문으로 바로 넘어가는 버스가 있다는 인터넷 정보 하나만 믿고 내려갔다. 서파를 봤으니 이제 북파로 갈 차례이다. 서파 산문에 가니 북파 산문으로 가는 버스 편이 없단다. 복무원에게 사정 얘기를 하니 택시 기사를 불러 주었다. 북파 산문까지 관람 시간에 댈 수 없다고 택시 기사가 연신 "라이부지이(来不及[lái ‧bu jí] 시간이 맞지 않다)"를 외쳤다. 북파 관광은 결국 포기해야했다. 북파는 못 갔지만 이도백하에서 심양(션양) 가는 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에 서파 산문에서 이도백하까지 260元(한화 5만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택시를 대절해서 갔다.

     

이도백하에서 지연 출발해 저녁 7시 30분경 출발한 기차가 9시 10분이 되니 익숙한 지명 송강하에 닿는다. "앗 이건 뭐야?" 이도백하에서 양 가는 기차가 송강하를 경유해 간다면 난 왜 굳이 서파에서 비싼 택시 타고 이도백하로 갔을까?


오늘 내가 저지른 이동 경로는,

 '송강하 -> (시내버스) -> 서파 -> 백두산 천지 -> 서파 -> (택시) -> 이도백하 -> (기차) -> 송강하 -> 심양'이었다.

계획했던 북파를 못 갈 거면 애당초 서파에서 시내버스로 20분 만에 송강하로 올 수 있는 길을 택시 대절해 이도백하 가서 기차 타고 다시 오늘의 원점 송강하로 되돌아온 꼴이다. 출발역과 도착역만 열심히 조사하고 기차 루트를 살피지 못한 나의 불찰이다. 여행을 가면 바보 같은 짓을 자주 한다. 내 나라 내 사는 곳이라면 전혀 하지 않을 그런 실수를.  


결국 오늘 내간 한 건 '오르지도 못할 북파쪽 이도백하를 돈들이고 시간 들여 사전 답사'한 것? 그래. 사전답사여행이라고 해야 덜 억울할 것 같다. 언젠가 백두산 북파를 오르기 위해서는 베이스캠프 이도백하를 꼭 거쳐 가야 하니까. 백두산은 반드시 또 가야 하니까.




<< 백두산 여행 팁 >>
- 한국에서 가기 : *연길, 장춘, 심양 공항 이용
 (* 북파를 많이 이용하다보니 연길이 가장 편리한 공항이고, 직항 편도 많음.)
- 추천 시기: 7~8월. 춥지 않고 야생화가 만발함.(9월만 되어도 춥다고 함.)
- 아래 코스 참고(2015년 기준, 서파 코스는 직접 다녀와 검증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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