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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an 25. 2022

지구인의 버킷리스트 1위는 만리장성

베이징에서 만리장성 가기

어느 나라에서 발표하든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버킷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万里长城)이다. 여태껏 살면서 만리장성 사진 한 장 못 본 사람은 없으리라. ‘만리장성이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란 말은 누가 최초로 만들어냈는지 모르지만 그 ‘과장’만으로도 만리장성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스케일이란 말이 나왔으니 진짜 스케일 한번 따져보자. 장성(長城)이 만리(萬里)라...

우리나라에서, 10리=4km

중국에서, 10리=5km

만리 10,000리=5,000km

최근 깐쑤성에서 발견된 것까지 합치면 7,000km에 이른다고 한다. “앗, 중국 사람들의 허풍 작법도 못 따라간 구조물이 만리장성이군. 아니, 조만간 이름이 바뀔지도 몰라. 10만리장성으로.” 사실 이런 말장난도 의미가 없다. 만리장성의 대외 공식명은 장성(长城)이고 중국 내에서도 장성으로 불린다. 어찌하여 우리나라에서 만리장성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만리장성을 한 줄로 늘어 세우면 지구 반지름 6,400km보다 더 길고 지구 둘레의 1/6을 넘는다. 그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직접 가봐야 장대한 스케일의 일부라도 몸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만리장성의 위치. 원 지도 출처 : chinalights.com


만리장성 어디를 갈까? 알고 보니 만리장성이 한두 군데가 아니네. 베이징에서 출발해서 갈 수 있는 만리장성만도 5군데였다. 네 개의 선택지로 압축해 보았다.    

 

 베이징에서 갈 수 있는 만리장성
 (1) 가장 많이 간다는, 가장 유명하다는, 만리장성 보러 갔다가 사람장성 보고 온다는 팔달령장성
 (2) 장성 출입문격인 관성(關城)을 끼고 있는 거용관장성
 (3)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는 모전욕장성
 (4) 두 군데 연계해서 트래킹이 가능하다는 금산령장성과 사마대장성  


이 중 팔달령과 거용관은 베이징 시내에서 가까운 대신 붐빈다고 한다. 특히 팔달령은 장성 보러 갔다가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오는 곳으로 악명 높다. 워낙 베이징에서 사람에 치인 터라 나도 사람 없는 곳에서 힐링이 필요했다. 금산령과 사마대는 대중교통편이 자신이 없었고 한여름 땡볕에 트래킹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버스 한번 타면 바로 간다는 모전욕장성으로 최종 정했다.   

   

지하철 동직문역을 빠져나와 867번 시외버스를 탔다. 베이징 시내 곳곳을 따박따박 세워가는 완행이라 2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대신 모전욕장성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니 한방에 산등성이 장성 초입까지 날아오른다.  

   

모전욕장성 입구에서 개념도를 한번 살피고. ⓒ위트립


위로 올려다 본 만리장성 ⓒ위트립


순식간에 탁 트인 능선 자락에 올라섰다. 초록 숲 사이사이 굽이치는 장성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치 몸길이의 끝을 모르는 긴 용 한 마리가 몸부림치며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는 것 같았다. 내 몸하나 걸어 오르기도 어려운 이 험한 지형에 벽돌을 하나하나 얹어 성벽을 쌓는 게 가능이나한가. 도대체 인간의 공력(力)은 어디까지인가.




마오쩌뚱은 만리장성에 올라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长城非好汉).”라고 했다. 과연 만리장성을 오르지 않으면 멋쟁이가 아니다. 만리장성을 보지 않으면 중국에 갔다고 할 수 없다.  

   

장성은 방어선이고 요새였지만 그 자체가 길이기도 했다. 전시에 이 길로 말을 달려 통신을 주고받는 게 더 빨랐다고 한다.


지구 상에 현존하는 가장 스펙터클한 건축물인 만리장성은 누가 언제 세웠을까? 춘추전국시대부터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여러 나라들이 성벽을 세웠고 기원전 220년경 진나라 진시황 때 이들을 연결하여 완성한 것이 만리장성의 원형(源形)이다. 이후 장성의 수리와 확장이 계속되었으며 명나라 때까지 증개축된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명나라 때는 5리마다 봉화를 피우는 봉수대, 10리마다 보초를 서는 돈대, 30리마다 요새인 보루, 100리마다 거용관과 같은 관성(關城)이 있었다고 한다.


만리장성 위 캔맥장성


만리장성은 어느 왕조, 어느 민족 하나의 산물이 아니다. 천년 넘는 시간 동안 지난하게 이어진 중원을 뺏고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의 결과물이고 그 속에서 살다 간 숱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품은 곳이다. 흙을 구하고, 벽돌을 굽고, 벽돌을 이고 지고 쌓아 올린 민초들의 피와 땀과 생명이 묻힌 곳이다.    

  

얼마나 많은 산과 바다를 통해

높은 흉벽과 긴 벽이 굽이치고 굽이쳤는가?

우리의 눈이 비탈을 좇고 나서 알게 된다.

어떻게 이것이

우리 조상의 용의 심장을 먹어치웠는지

그리고 결국 누구를 위해 지어졌는지.

*만리장성, 납란성덕(納蘭性德, 청나라 시인, 1655-1658)

*《CHINA, 세상에서 가장 큰 중국책(김영사)》에서 재인용

   

만리장성이란 건축물이 주는 감동의 원천은 무엇일까? 초록숲과 대비되게 길게 뻗은 회색 성벽은 멋있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만리장성은 곧 장성에서 죽어간 수많은 병사와 죄수와 백성들이 용으로 환생해 끝내 승천하지 못하고 굳어버린 것이 아닐까?




※ 저도 A형이라 헌혈하려고 헌혈의 집에 예약 전화를 했더니 임신력과 출산력이 있어 혈소판 성분 헌혈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마음을 모아주실 분을 기다립니다. 환자의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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