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절경의 1/3은 중국에 있다는 말에 혹해 중국 여행을 시작했다. ‘가까운 중국부터 가서 중국의 절경을 다 보면 2/3가 남을 거야. 나머지 2/3는 은퇴 후에 보러 가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의 절경만도 평생 봐도 다보지 못할 거란 걸 중국을 다니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츠쉐이(적수)의 위치
그렇게 시작된 중국의 자연 여행은 윈난(운남)과 쓰촨(사천)에 이어 구이저우(贵州귀주)성까지 계속되었고 이름도 생소한 츠쉐이(赤水적수)까지 가게 되었다. 츠쉐이는 붉은 바위가 유명한 지역이라는데 동네 이름이 붉은 바위 ‘적암(赤岩)’이 아니라 왜 붉은 물 ‘적수(赤水)’일까?
중국 전역에 붉은색 사암이 침식되어 기괴한 경치를 만든 곳이 여러 군데이고 이를 한 지질학자가 ‘붉은 노을’이란 뜻의 ‘단하’란 이름을 붙여 ‘단하지모(丹霞地貌)’라고 통칭했다. 우리말로 풀면 ‘붉은 노을 지형’ 쯤 되겠다. 유네스코에 등재(2010년)된 7군데의 중국 단하지모 중 가장 유명한 곳이 장예의 칠채산이고 츠쉐이의 붉은 괴석이 지질사적으로 가장 젊다고 한다.
츠쉐이에 가니 가볼만한 곳으로 폭포 계곡 사동구(四洞沟)와 전통 마을 병안고진(丙安古镇)이 있어 여행지로 추가했다. 먼저 단하지모의 붉은 바위를 보기 위해 홍석야곡(红石野谷)으로 갔다. 츠쉐이 시내에서 바오위엔(보원)행 버스를 타고 30분쯤 갔다. 입구부터 관광지로 단장은 잘 되어 있었으나 겨울이라 사람이 없었다. 막상 붉은 절벽 아래에 서고 보니 사진에 찍혀줘야 할 사람 모델이 드물어 사진이 썰렁했다.
홍석야곡을 빠져나와 택시를 흥정해 타고 사동구로 갔다. 사동구 안에 들어가니 천지사방이 물소리였다. 탐방로를 따라가면서 폭포가 이어졌고 어떤 것은 폭포 뒤로 난 동굴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의 하얀 포말이 물보라 커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천연 폭포 쇼였다. 특이한 폭포 체험 때문인지 안순의 황궈수 폭포보다 더 기억에 남았다.
폭포수 뒤로 들어갈 수 있는 수렴동 폭포
사동구 안은 대나무 숲 외에도 쥐라기 공원 영화에서나 볼법한 사람 허리 높이의 양치식물, 일명 고사리 나무(사라나무)가 이색적이었다. 붉은 괴석과 바위 동굴, 단하 협곡과 희귀 식물 숲이 한데 어우러져 옛 중생대 숲을 재연해 놓은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공룡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곳에 공룡 한 마리도 떡하니 서있었다.
공룡 오른쪽 뒤 나무가 '쒀러(桫椤)'라는 일명 고사리 나무. 1억8000만년전 번성했다는 현존하는 희귀 양치식물
사동구까지 보고 나니 츠쉐이(적수)란 도시 이름의 의문이 풀렸다. 츠쉐이는 붉은 바위뿐 아니라 물이 많은 동네였다. 그렇다. 붉은 바위를 타고 물이 흐르는 곳, 흐르는 물도 고인 물도 붉은 바위 때문에 붉게 보이는 곳이었다. 역시 적암보다 적수가 한 차원 높은 명명법이다.
‘사도적수(四渡赤水)’란 말이 있다. 공산혁명 과정에서 국민당군과 싸우던 홍군이 츠쉐이(적수)를 네 차례 건너갔다는 혁명사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장강의 지류인 츠쉐이에 놓인 다리에 홍군 주력부대인 1방면군이 도강한 위치를 표시해 놓았다.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면 오래된 마을 병안고진으로 이어진다.
중국은 대장정을 포함해 혁명 과정에서 의미 있는 장소를 유적지로 개발하고 있는데 이를 따라다니는 여행을 홍색관광이라고 한다. 병안고진도 원래 있던 오래된 전통마을이었지만 홍군이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보태져 홍색이 덧입혀졌다. 소박하지만 홍군 기념관도 하나 있었다.
병안고진은 강변 절벽에 그림처럼 매달린 전통 마을이다. 마을은 언덕 벼랑 끝에 집들이 붙어 있는 형색이었고 비탈진 좁은 골목 사이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집 난간엔 훈제 돼지고기가, 채반엔 무말랭이가 하루하루 시간의 맛을 더해가는 중이었다. 병안고진을 돌아 나오니 적수를 두 번 건넌 셈이 되었다. ‘사도적수(四渡赤水)’로 유명한 지점에서 나도 ‘이도적수(二渡赤水)’는 했다.
땅콩과 손수 만든 모자를 팔고 있는 할머니. 서서 모자 뜨게질을 하고 있다.
숙소 앞 식당에서 저녁 찬으로 두부를 시켰다. 츠쉐이는 두부가 유명한지 가게 앞에 가마솥을 내놓고 두부를 끓이는 식당이 많았다. 간이 하나도 안된 하얀 두부가 간장과 함께 나왔다. 두부 상태가 우리네 모두부와 순두부의 중간쯤이다. 두부에 간장을 통째로 끼얹으려는 찰나 옆자리 손님들이 갑자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안돼요. 안돼!” 놀라서 쳐다보니 두부 먹는 법을 시범을 보여준다. 아하! 젓가락으로 두부를 조심스레 집어 간장에 찍어 먹어야 한단다. 츠쉐이 여행 팁 방출! “츠쉐이에선 두부, 부먹 안돼요. 반드시 찍먹하세요.”
여행지에 막상 가면 어떤 곳은 기대 미달이기도 하고 어떤 곳은 기대 이상이기도 하다. 원래 목적으로 삼았던 단하지모는 사실 별로였다. 오히려 현지에서 덤으로 얻은 관광지 쥐라기숲 사동구와 강둑마을 병안고진이 여행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런데 뜻밖의 관광지보다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하는 건 역시 '사람'이다. 츠쉐이의 두부는 옆테이블 두부 먹는 방법까지 간섭해준 현지인이 있어 더 고소하고 진한 맛으로 기억되었다. 츠쉐이 두부, 찍먹하러 언제 또 가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