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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Mar 21. 2022

부산에서 부산을 보다

영도에 오니 영도가 좋다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지구를 볼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 있는 황토색 땅과 푸른 바다와 흰 구름이 어우러진 구형(球形)의 지구 사진은 지구 밖 인공위성에서 본 지구의 모습이다. 지구를 보려면 지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부산에서 부산을 볼 수 있을까? 부산을 보려면 부산 밖에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부산 밖으로 나가지 않고 부산을 보았다. 부산에서 부산을 보았다. 행정지로는 명백히 부산이지만 지리적으로 부산과 떨어진, 오로지 다리로만 연결된 섬, 영도에서 부산을 보았다.


영도에서 본 부산


영도에 사는 사람들은 부산사람이냐고 묻는 질문에 영도사람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부산이지만 부산이 아닌 영도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태생이 섬이라 예전엔 부산과 오가기 불편했을 테고 영도 사람들은 은연중에 자신들이 섬사람이란 의식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도에 와보니 부산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뭐든 대상에서 살짝 떨어져야 그 대상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이다. 부산의 항구와 산복마을과 마천루 빌딩들이 부산을 말해주고 있었다.


영도의 청학 배수지 전망대에서 본 '영도와 부산항대교 건너편의 부산'


영도에 오니 영도가 좋다. 굳이 이유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산을 통째로 조망할 수 있다.

영도만큼 가까이에서 매머드급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우리나라 섬이 또 있을까?


둘째, 영도는 섬 통째로 봉래산 산복마을이다.

바닷가 항구의 한 지점에서 해안선과 수직방향으로 봉래산 중턱까지 올라가 보자. 집과 가게, 학교와 목욕탕, 관공서들이 다닥다닥 층층이 자리했다. 영도는 그 자체가 봉래산 산복마을이다. 산복도로와 골목길의 얽히설킴 또한 부산 마찬가지다. 부산의 축소판이다. 영도를 보고 나면 부산이란 도시가 통째로 이해된다.


영도의 언덕 위 마을


셋째, 영도 골목길 끝은 바다다.

영도 언덕진 골목길 중턱 어디라도 멈춰 서서 바다 방향으로 몸을 틀면 내 발끝은 바다다. 바다가 이토록 가까이에 있다니. 항구의 부산함과 생기가 경사진 길을 따라 내게로 전해온다.   


이 골목의 끝은 바다


영도 앞바다에서


넷째, 영도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영도는 덜 번잡스럽다. 조금은 촌스럽다. 그래서인지 영도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 영도에 가면 편안하다. 최근 영도가 부산의 보물섬으로 떠오르고 있다. 저개발의 역설이랄까. 낙후된 영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영도는 섬 전체가 대한민국 해안 둘레길인 남파랑길 2코스다. 영도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도록 설계되어 있다. 남포동에서 부산대교를 건너와 영도를 한 바퀴 돌고 영도대교로 빠져나가는 코스다. 영도를 단 하루 만에 최대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길로 전문가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만든 길이다. 몇몇 길을 걸어본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대한민국의 둘레길, 무조건 믿고 걸으면 된다."


이미 전국구 관광 명소 태종대 한 번쯤 가본 여행자라면 영도대교 초입의 깡깡이 마을에 들러 선박 수리 작업장을 기웃거려보자. 무거운 망치를 들고 낡은 선박에 붙은 녹이나 조개껍데기를 떼어내던 고된 작업(*깡깡이질)을 마다했던 억척스러운 부산아지매들이 오버랩될 것이다.(*녹 제거를 위해 망치로 배를 두들길 때 나는 소리)


영도 깡깡이 마을의 수리조선소


'우리 모두의 어머니' 영도 깡깡이 아지매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벽화(2017년, 헨드릭 바이키르히의 작품)


SNS에 올릴 인생 사진을 건지고 싶다면 요즘 뜨는 곳 절영산책로와 흰여울마을을 찾아도 좋겠다. 절영산책로를 따라 중리 해변까지 걷기를 추천한다. 좁은 흰여울마을길을 마주오는 사람과 어깨 부딪히랴 어깨 돌려가며 살살 걸어보자. 멀리 보이는 송도 해변, 묘박지에 점점이 떠있는 선박, 흰여울마을 축대를 때리는 파도와 하얀 포말, 반짝이는 바다의 윤슬을 보고 넋이 나갈지도 모른다. 블루와 화이트가 만들어내는 영도의 색 보고 파도와 뱃고동의 영도의 소리를 들으며 영도의 공기를 들이켜면 영도가 오감을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온다.


흰여울마을과 절영해안 산책로


배 주차장인 묘박지 풍경. 먼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배 군단이 장관이다.


영도는 이미 커피의 성지다. 카페 성지 순례를 하고 싶다면 젬스톤, 모모스커피, 피아크, 신기산업 같은 재기 발랄한 카페들을 하나씩 정복해봐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영도의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을 좋아하는, 나와 취향 비슷한 여행자를 위해 나만의 숨겨둔 스팟을 하나만 누설하자면, '영도의 청학 배수지 전망대 올라가 보라'. '부산발(發) 부산 전망'은 기본이요, 운동하거나 소일하러 나온 진짜 영도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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