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한달살기 여행을 왔다. 부산에서 지낸 지 삼 주째인데 아직도 부산의 산자락만 헤집고 다니는 중이다. 내가 살던 대구도 흔히 달동네, 산동네라고 하는 곳이 없지 않지만 극히 일부분이요, 집들만 산동네에 있지 학교나 생활편의시설은 대부분 평지에 있다. 이제 웬만한 산동네 집들은 다 깎여나가고 고층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부산에 와보니 부산은 도시 태생적으로 산과 바다가 뒤엉켜 만들어진데다가 평지 부족한 도심 산자락은 물론 바다 가까운 산자락엔 집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시장과 상점, 학교, 목욕탕, 도서관까지 산비탈에 빼곡히 들어앉았다. 당연히 이들로의 접근을 위해서 산 허리를 감아도는 도로가 있고 등고선과 나란하게 층층이 구비구비 만들어진 산복도로에 비탈진 골목길과 미로 같은 계단길이 모세혈관같이 연결되어 있다.
부산의 항구에 가까운 산복마을은 개항 때부터,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한국 전쟁 시기를 거치며 사람들이 모여 살아 형성된 곳으로 '부산의 근현대사의 기록장'이기도 하다. 동구의 초량동, 범일동, 좌천동 일대와 중구의 영주동, 서구 아미동, 초장동, 남부민동, 사하구의 감천동 등이 그동안 내가 가본 산복동네다.
동구 초량동에서 본 산복마을 전경
부산에 간다면 해운대와 광안리 외에 꼭 산복마을과 산복도로로 가보기를 권한다. 그렇다면 부산의 산복도로 여행, 어떻게 할까? 부산의 산복도로를 즐기는 10가지 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아슬아슬 스릴 만점의 공짜 모노레일 타기
산복마을 공공 운송수단인 모노레일과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보자. 재미는 기본, 속도에 따라 변하는 전망까지 무려 공짜라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
초량동 168계단 모노레일,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 좌천동 경사형 엘리베이터, 남부민동 경사형 엘리베이터(공사 중) 등이 동네 주민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초량동 모노레일(왼) & 영주동 모노레일(오)
(2) 골목 미로 계단길 오르며 마음의 도 닦기 & 하체 근육 키우기
숨이 턱턱 막히는 층층계단을 일상적으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땀과 고단함을 느껴보자. 나도 모르게 하체가 튼튼해지는 건 덤!
초량동 168계단
(3) 산복마을에서 홍반장 만나기
산복마을에서 길을 두리번거리면 어디선가 홍반장이 나타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어데 가실라꼬요?" 동네 어르신들이 다 현지 여행 가이드들이다.
(4) 산복도로에서 보물찾기 - 각양각색의 개성 있는 전망대에서 조망하기
산복도로의 진짜 보물은 전망대다. 비슷한 듯 다른 산복마을 뷰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누리바라기 전망대(남부민동)와 소리나무(풍경이 매달려 있어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나는 조형물)
구름이 쉬어가는 전망대(아미동 비석마을)
(5) 기상천외의 옥상 주차장 찾아보기
"우리 집 옥상이 주차장이야." 주택가 위에 산복도로가 있다. 산복도로에서 개인 가정집 옥상으로 차를 진입시켜 주차하는 '옥상 주차장을 가진 집'을 만날 수 있다. '지붕 위에 실물 승용차를 얹은 집'을 찾아보자.
옥상 주차장(아미동)
(6) '지붕 위에 바다 얹은 집' 사진 찍기
집 지붕이나 옥상 위에 바다를 얹어 사진을 찍어보자. 산복마을에 사는 사람은 자기 집 창문에서 '앞 집 지붕 위에 걸린 바다'를 매일 볼 수 있지 않을까?
(7) 부산의 항구와 바다 위 다리 이름 알아맞히기
전망대에서 4개의 항구(남항외항, 남항, 부산항, 북항)와 4개의 다리(남항대교, 영도대교, 부산대교, 부산항대교) 이름을 맞히게 되면 부산여행 왕초보 딱지를 떼게 될 것이다.
초량동 유치환의 우체통에서 본 부산 전경
(8) 산복도로 뷰 맛집 카페 발굴하기
산복도로 카페 선정에서 커피 맛은 2순위로 밀려난다. 전망이 좋으면 커피는 절로 맛있어진다. 내가 찾은 뷰 맛집 두 군데는 초량동의 '카페 초량 845', '카페 풍천'. 풍천은 '전망 얹은 커피 한 잔'에 단돈 이천 원.
카페 초량845에서
카페 풍천(한마음행복센터 풍천(풍경품은 천마))
(9) 해진 후 산복마을의 야경 감상하기
밤하늘의 별이 산복마을 집집에 내려앉는 광경을 지켜보자. 해진 후 하늘색이 짙어지면서 집집마다 불이 밝혀지면 산복마을의 판타지가 시작된다.
(10) 시내버스 타고 산복도로 종주하기
일명 '시내버스 타고 등산 가기'. 경사지고 좁고 굴곡 심한 산복도로를 누비는 시내버스의 기사님의 운전 신기(神技)에 감탄하고 '도시의 진정한 혁명'인 '공공 버스 시스템'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초량동의 산복도로를 달리는 시내버스
과연 거대도시 부산답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 여타 도시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산복마을의 스케일도 매머드급이다. 산복마을은 부산이란 도시 형성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고 전쟁 피란민의 삶의 애환을 기록하고 있는 집단 주거지이다. 지금도 삶이 계속되고 있어 더 소중한 곳이다. 산복마을과 산복도로, 이쯤 되면 인류의 보편적 문화 가치를 담고 있는 유네스코 유산으로도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산복마을은 늙어가고 있다. 낡고 불편한 집이지만 수십 년을 살아왔기에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만 남았다. 역설적이게도, 쳐다보기만 해도 까마득한 수백 칸의 수직 계단을 노인들만이 숨 가쁘게 오르고 있다. 지금 밖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이 비 그치면 산복마을에도 봄꽃이 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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