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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Mar 26. 2022

전철 타고 바다 가자

동해에서 남해까지, 내 취향 바다 찾기 / 부산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혼여행으로 오로라를 보러 간다는 직장 후배가 있었다. 대구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을 날아 올라, 유럽 어느 도시를 경유하고 오슬로를 거쳐 다시 노르웨이 북단 트롬쇠로 이동하는 먼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큰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할 '오로라'로 새기고 싶었으리라. 나도 일생에 한 번쯤 오로라를 보고 싶다.


나와 동 시간을 살고 있는 지구 상의 누구는 일생에 한번 바다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슬로바키아 사람이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바다를 가려면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의 두 나라의 국경을 넘어야 한다.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어느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바다를 보기 위해 25시간을 줄곧 운전만 해야 한다. 사실상 나라의 모든 면이 바다와 접한 섬나라나 다름없는 분단국 우리나라에선 내륙 골짜기 어느 지점에서라도 반나절이면 바다에 닿으니 바다의 가치를 잊고 지내는 것도 당연하다.   


 먹고 두시간 달려야 바다를 볼 수 있는 내륙도시 대구 사람이 부산에 여행을 왔다. 매일 부산 시내를 오가는 길에 바다를 본다. 해변을 가는 날이 아니라도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빌딩 사이사이 바다 한켠을 보기도 하고 항만의 켜켜이 쌓인 컨테이너를 스쳐 지나가며 그 너머 바다를 인지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버스 창으로 바람에 묻어오는 바다 냄새를 맡기도 한다. 일상에서 숨 쉬듯 바다를 느끼는 것, 이런 게 바로 '바다 도시 부산 여행의 맛'이렷다.


부산은 동해와 남해를 동시에 끼고 있는 유일한 도시다. 같은 태평양 바닷물로 원래 경계가 따로 있을 리 없지만 인위적으로 나누고 이름 붙여 놓고 구별 지어본다. 동해는 깊고 푸르고 위엄 있는 바다다. 반면 남해는 동해 바다에 흰 물감을 한 방울 떨어트린 듯 파스텔톤 바다 빛깔만큼이나 따뜻하고 포근하다. 이런 두 바다의 모습을 다 가진 부산에 왔으니 바다는 실컷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광역도시 부산에 왔으니 대도시의 인프라 맘껏 누려야지. 전철 타고 바다 가자. 준비물은 단돈 1300원.

부산이 끼고 있는 해변한두 개가 아니지만, 해수욕장을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소개해본다.


지도 출처 : daum.net
(1) 임랑해수욕장 - 동해선 월내역 1.7km (도보 25분)
(2) 일광해수욕장 - 동해선 일광역 961m (도보 14분)
(3) 송정해수욕장 - 동해선 송정역 1.3km (도보 20분)
(4) 해운대해수욕장 - 2호선 해운대역 748m (도보 12분)
(5) 광안리해수욕장 - 2호선 광안역(또는 금련산역) 956m (도보 15분)
(6) 송도해수욕장 -1호선 자갈치역 2.9km (도보 45분)
(7) 다대포해수욕장 - 1호선 다대포해수욕장역 560m (도보 8분)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바다, 임랑해수욕장 & 일광해수욕장

일광해수욕장에서 임랑해수욕장까지 가는 해변 도로는 고급 카페의 경연장이다. '나만의 기장 3대 카페'를 꼽아보자. 일광해수욕장에 간다면 데크 산책로를 걸어 학리항까지 가보길 권한다. 일광해변은 파란색 그라데이션의 물빛이, 임랑해변은 지치지 않고 바위를 때리는 파도가 관전 포인트다. '물멍'과 '파도멍'에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일광해변의 학리항 쪽으로 난 해변 산책로


로맨틱 송정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에서는 폐철길 따라 송정해변로를 걸어보자. 이름도 예쁜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가 여행자를 반겨줄 것이다. 게다가 송정에서 미포까지 오가는 블루라인 관광열차 사진도 건질 수 있다. 단둘이서,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가르며 가는 캡슐 열차의 추억을 쌓고 싶다면 단 두 가지, '다소 비싼 탈 비용과 기꺼이 매달릴 용기'만 지불하면 된다. 

송정해수욕장을 즐기는 선택지는 무려 세 가지. 걷는다, 관광열차를 탄다(왼), 캡슐 열차를 탄다(오)


부산 관광을 이끄는 쌍두마차, 해운대&광안리

해운대와 광안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급 해변이니 굳이 더 보탤 필요가 있을까만은 그래도 한마디 덧붙이자면 동백섬을 돌아 해운대로 진입하면 해운대의 옆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해운대보다 덜 위압적이어서 편안한 광안리는 언제나 정겹다. 해변에서 한 블록만 안으로 들어서면 오밀조밀 광안리 사람들의 낮은 주택들이 있어 더 현지인 바다 느낌이 난다. 그런 광안리에 '카페 유동커피'마저 있으니 어찌 광안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안녕과 광안리란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광안대교와 바다


100살을 훌쩍 넘긴 노장의 위엄, 송도해수욕장

1913년에 개장한 우리나라 공설해수욕장 제1호 송도해수욕장은 요즘 바쁘다. 해상 구름산책로에 사람들 불러들이랴 암남공원까지 연결된 해상 케이블카에 사람들 실어날으랴. 전철로 한 번에 가기에 가장 불리한 해변 송도남항대교와 영도 전망할 수 있는 광장과 암남의 두도 전망대길을 다듬어 놓고 옛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듯하다.


송도해변에서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바다 위를 걸을 것인가, 구름과 친구해서 두도전망대까지 오를 것인가.


바다 사막을 가진 다대포 주민이 부러워, 다대포해수욕장

전철 타고 바다 가기의 결정판은 다대포해수욕장이다. 지하철역명이 해수욕장인 곳이 우리나라에 또 있으랴.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지하철 출구가 바로 해변 모래사장이다. 솔숲과 갈대밭과 모래사장의 세 박자를 다 갖춘 해변이다. 솔밭과 해수욕장이 같이 있는 곳은 흔하다. 그러나 순천만 습지의 축소판같은 갈대밭과 해수욕장 모래사장의 공존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 그 여느 해변이 흉내 내지 못할 풍광을 지닌 다대포해변





다대포해변의 모래는 일반 해수욕장의 모래와 질적으로 다르다. 낙동강 하구라 그런지 입자 굵은 모래가 아니라 진흙에 가까운 고운 모래가 굳어 낮은 언덕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난 이걸 '바다 사막'으로 부르고 싶다. 관찰자의 시선을 조금만 낮추면 전형적인 내륙사막의 사구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해안이 도로에 접하다 보니 여느 해수욕장처럼 인공 건물 하나 없는 '자연 그대로의 해변'이다. 잔잔한 파도의 바닷물과 모래사장이 적절한 선에서 대치하며 공존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해불진 사불퇴(海不進 沙不退)', 바다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모래는 더 이상 밀리지 않는다.

 



솔숲 그네 의자에 앉아 흔들리는 그네에서 핸드폰 삼매경에 빠진 아저씨, 마실 친구들과 갈대밭을 오손도손 걷는 중년 아주머니들, 이어폰을 낀 채 해변 모래길을 맨발로 걷는 청년... 다대포 풍경의 완성은 다대포 현지인들이다. 영도에 갔을 때 이다음에 영도에 와서 일년살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대포에 오니 라이벌이 생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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