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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Apr 08. 2022

부산 영도, 걸어서 카페 속으로

영도 카페 나들이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산 한달여행에서 얻은 '여행 보물'은 두 가지다. 첫째는 산복마을이요, 둘째는 영도다. 도시와 바다가 공존하는 부산에는 산도 많아 해안 쪽 산자락엔 어딜 올라가도 바다가 보였다. 부산의 압축판인 영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영도는 더했다. 섬 영도는 영도 둘레를 걷는 이에게 시시각각 모든 방위로부터 바다 뷰를 날라다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영도 바다는 카페를 하나둘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바다는 커피를 부르고 커피는 바다를 부른다. 바다와 커피가 얼마나 단짝인지 궁금하다면 영도에 가보라. 카페 투어를 해보라. 천천히 걸어서 가도 좋고 버스나 자차를 이용해도 좋겠다. 단연 전자를 추천한다. 영도를 천천히 걸어보지 않은 자는 영도 커피에 얹은 '영도 감성의 맛'까지 찾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걸어서 영도 카페 속으로'의 시작은 영도대교다.


나는 커피 마니아도 아니거니와 평소 카페와 그리 친한 편은 아니지만 걷기 여행자에게 '1일 1카페'는 피하기 어려운 법. 또 영도에 워낙 이색 카페가 많다 하여 몇몇 카페는 꼭 가보리라 작정했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영도를 쏘다니며 하루 두세 번 카페를 이용하는 식이었다. 영도 카페 순례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영도, 걸어서 카페 속으로' 여행법]

1) 원하는 카페와 하루 동안 방문할 카페 수를 정한다.

2) 방문하고자 하는 카페 간 동선을 짜고 이동 소요 시간을 확인한다.

3) 카페의 개성과 커피 맛을 비교하면서 인생 카페를 고른다.

지도 출처 : 영도구청 
지도출처 : 영도구청


 

커피섬 영도의 맏이, 신기산업


언제부터 영도가 커피의 성지가 되었을까? 영도 이색 카페의 리더는 신기산업이다. 이름조차 전혀 카페스럽지 않은 '신기산업'은 2016년 사옥에 카페를 넣으면서 생겼다. 방울 등 철제 제품을 만드는 신기산업을 알리기 위한 브랜드 스토어답게 옛 회사 간판과 구조물을 일부 남겨 회사의 스토리조차 카페에 덧입혔고 북항과 부산항대교 전망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청학동 가파른 언덕배기에 날씬하게 지어 올린 신기산업. 건물 전체가 조망창이다.


카페 신기산업의 모태인 회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장치들.


'부산에서 부산보기' 명소. 지금도 외진 청학동 꼭대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신기산업의 루프탑 전망


신기산업은 청학동 꼭대기에 있다. 영도대교에서 신기산업까지 걸어서 가는 길은 진짜 '등산'이다. 봉래산 중턱까지 산복마을을 만들어 살아낸 영도인의 강인함을 느끼다가 숨이 차면 뒤돌아보라. 바다와 바다 건너 부산 전망에 탄성을 지를 것이다. 언덕배기를 힘겹게 오른 후에 즐기는 바다 바람과 바다 뷰는 커피 맛을 무한대로 끌어올릴지도 모른다. '5등 뽑기 상품을 받아가라'는 신기잡화점에서 속는 셈 치고 선물도 골라보자. 귀여운 상술에는 좀 넘어가 줘야지. 신기산업은 이곳 외에도 영도에 '신기여울'과 '신기숲'이란 카페를 운영한다.



수영장 풀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궁금하다면? 젬스톤


영도에 들어가 지도 앱을 켜놓고 열심히 걸었건만 자칫하면 놓칠뻔했다. 외관이 너무 심심해서.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들어서는 순간 알록달록 원색 타일의 조합이 재미와 발랄함을 불러일으켰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수영장 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명 '옷 입고 수영장 풀 들어가기.' 수영장과 카페의 이질적인 조합이 궁금하신 분, 옷 입고 수영장 속에 앉아 마시는 커피 맛이 궁금하신 분에게 권한다. 영도 젬스톤~   


커피 한 잔? 옷 입고 풀 속으로?
수영장 선배드도 커피 테이블과 의자로(왼) & 작업공간과 모임공간도 준비된 젬스톤 이층(오)


바리스타가 나랑 눈 맞춰 가며 커피 내려주는 곳, 모모스 커피 로스터리 & 커피바 


카페 격전지 영도에 가장 늦게 들어왔지만 '스페셜 커피'라는 원래의 내공으로 가장 강력한 카페로 떠오르는 곳, 모모스에 갔다. 은행 창구처럼 자기 순번이 호명되면 바리스타 앞에 가서 마주 보고 서서 일대일로 커피 서비스를 받는 곳이다. 커피에 관한 뭐든지 물어볼 수 있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커피는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지식 음료라는 걸 알리겠다는 건가?


어디가 카페이며 어디가 입구란 말인가. 모모스커피 외관. 이젠 입구 찾기 미션이 벌어진다.


모모스커피 내부


내가 주문한 커피는 '엘살바도르 산 안드레스 피카마라 애너로빅 내츄럴'의 필터 커피(7,500원)


모모스 앞은 분주하다. 바다 냄새와 땀냄새가 뒤섞인다. 노동의 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는 누구?  


카페라기보다는 커피 견학장이고 커피 체험장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커피 시음장'이다. 마트의 시식 코너 같은 곳이다. 단지 '한 모금의 공짜 커피'가 아니라 내 돈 내고 '한 잔 잔째로 시음'한다는 차이점이다. 당연히 느긋하게 커피 마실 수 있는 등받이 의자는 없다. 지갑 털리지 않게 조심할 것!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포장 커피를 지르게 된다. 커피 한 잔 마시러 갔다가 몇만 원 긁고 나오는 곳.



크루즈 갑판 위에서 커피 한 잔, 피아크(P.ARK)

 

부산의 유명 카페는 평소 내가 알고 있는 그런 카페가 아니었다. 무슨 대형 박물관이나 공공건축물처럼 생긴 카페가 한 둘이 아니다. 피아크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카페라고 한다. 모던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가볼 만한 카페다. 


이게 카페라굽쇼?


피아크는 카페가 아니라 크루즈다. 외관이 콘크리트로 배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형 크루즈 컨셉이라고 한다. 테라스로 나가니 마치 배의 갑판 위에 서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눈앞에 실물 배들이 정박해있다. 크루즈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싶다면 이곳에 가보라. 아늑함만 포기할 준비가 되었다면 피아크 커피는 세련됨과 고급스러움을 얹어줄 것이다.


초초대형 커피 공간, 피아크


카페 피아크의 위치가 절묘하지 않은가. 바다와 정박한 배를 단번에 차경해버린 꼼수가 얄밉다. 그래도 멋있다.  



영도다움을 커피에 담아 파는 곳, 무명일기


무명일기는 찾기 어렵다. 네비는 멈췄는데 카페는 보이지 않아. 요즘 카페를 찾아가면 종종 겪는 일이다. 아파트 이름을 시어머니 못 찾아오게 어렵게 짓는다더니 요즘 핫한 카페들은 'NO 중년 ZONE' 전략(?)인지 카페 이름을 건물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숨겨놓았다. 알고 가지 않으면 바로 앞을 지나면서도 카페인지 모르고 지나칠 정도다.



폐공장의 골조를 살린 인테리어. 잡화와 소품 코너도 갖춘 무명일기 실내 


무명일기는 봉래동 항만의 영세 공장이 카페로 바뀐 곳이다. 영도 고구마와 영도에서 나는 제철 채소로 만든 주먹밥과 김밥, 샐러드를 정갈히 담아 '영도소반'으로 판매한다. 작은 독립서점과 팬시 및 잡화 코너도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닌 지역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무명일기의 영도소반 메뉴는 사전 예약제다.  15,000원(음료 제외)




위에서 소개한 곳 외에도 영도에는 독특한 개성이거나 탁월한 바다 뷰 등 저마다의 이유로 주목받는 카페가 한두 개가 아니다. 선글라스 브랜드 카린의 쇼룸 카페 '카린 영도 플레이스',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한 'Cafe de 220 VOLT', 통창으로 노을 바다를 볼 수 있는 흰여울마을의 '에테르'...


영도는 이제 '바다에 갔다가 커피 한잔'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러 찾아야 할 섬이 되었다. 2016년 신기산업 이후 속속들이 들어서는 감성 카페로 인해 2019년부터 영도에서는 커피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탁 트인 영도 바다만 카페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영도 항만, 폐선박창고와 폐공장, 폐수영장과 폐목욕탕 등 영도 사람들의 삶의 흔적까지 카페로 재구성되어 들어가고 있다. 영도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영도의 지역성도 함께 음미해보자. "출발, 걸어서 카페 속으로~"


모모스커피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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