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트립 Apr 15. 2022

한달살기여행와서 '여행'은 안 하고 '살기'만 하는 중

거제에서 만난 코로나 격리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제에 내려온 지 두 주가 다 되어간다. 3월 부산 한달살기에 이어 4월의 도시는 거제다. 원래 여수에 갈 계획이었으나 거제 한달살기 공모에 뽑히는(?) 바람에 거제로 여행지를 급선회했다. 숙박비 지원해주는 곳부터 가야지.


이틀은 집 구하기 전이라 호텔방을 전전했고 3일째 되던 날 가까스로 옥포에 한 달 지낼 숙소를 구해 짐을 옮겼다. 숙소에 웬만한 살림살이는 다 있어서 사실 옮길 것이라곤 옷가방밖에 없었다. 마트에서 부식 재료와 과일을 사서 냉장고에 채워둔 게 다였다.

 

한 달간 둥지를 틀게된 거제의 옥포항


그렇게 한달살기 기본 세팅을 하고, 본격 여행에 나서려는 찰나 여행자의 일상을 타격한 불청객이 들이닥쳤으니, '코로나'였다. 7일 격리 통지를 받았다. 여행 왔는데 여행지에서 돌아다니지 말고 숙소에서 꼼짝 말라고 한다. 이런 낭패가... 연이어 남편도 확진이다. 둘이 합쳐 총 10일간 집에 갇혀있어야 한단다.


부랴부랴 열흘 치 식량을 비축했다. 7일 격리에 이어 3일을 추가로 더 조심하라는 보건 당국의 안내를 충실히 따르는 중이다. 코로나 발생 후 2년 4개월 만에 감염된 것이다. 이제껏 감염되지 않으려고 애써왔는데 이젠 감염시키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방법은 한 곳에 가만히 있기.  


살면서 일어나는 일은 여행하면서도 일어나는 법. 예기치 않는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전염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말 안 통하는 외국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 나라 내 땅 대한민국 보건의료시스템 속에서 관리되고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졸지에 타지에 와서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코로나 감염원'이 된 우리는 여행지 지역 주민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로 노력 중이다. 다행히 증상이 심하지는 않아 푹 쉬면서 약 먹고 치료, 회복 중이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자의 일상이 무너진 우리는 열흘 넘게 거제 생활인 체험을 하고 있다. 옥포에 숙소를 구하고 나서 마트에 가서 장본 것. 격리 해제 후 은행과 우체국에 가서 급한 금융업무를 처리한 것과 시장에서 봄나물 사온 것. 이것이 집콕 외 이곳 여행지 거제에 와서 한 전부다. 이렇게 지내니 내가 마치 거제에 이사 와서 사는 주민이 된 기분이다. '한달살기여행'와서 '하라는 여행'은 안하고 '살기'만 한 것이다.


매일매일을 24시간이 부족하게 쏘다니는 나 같은 밖순이에게 집콕은 '형벌'인가 '강제 쉼'인가. 여행을 못하게 하는 벌이었다. 하필 벚꽃 만발하고 나무마다 연둣빛 봄 단풍 찬란한 시기라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한편 3월 한 달 쉼 없이 내달리던 여행을 잠시 멈춰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었다. 여행과 쉼의 균형을 떠올리며 생활을 정돈하는 중이다. 돌이켜보니 여행자한테도 워라벨이 필요했.


거제는 인구 24만의 소도시라 사람이 적다. 이곳 옥포는 제법 큰 동네에 속하는데도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다. 동네 도로의 횡단보도는 신호등 없는 게 대부분일만큼 차량이 적다. 붐비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거주 쾌적성을 높여주고 있다. 한편 교통량은 많지 않지만 운전에는 각별히 주의가 필요했다. 옥포에서 운전자는 도로 바닥을 보고 운전해야 한다. 섬 지형 특성인지 언덕이 많고 길이 좁아 이면도로로 접어들면 일방통행과 진입금지 화살표가 어김없이 있었다.


옥포 시내에서 운전자는 바닥을 보고 운전해야 한다.


매일 해질 무렵이되면 똑같은 회색 회사 점퍼를 입은 근로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삼삼오오 퇴근하는 진풍경을 옥포 집 앞에서 본다. 섬이라 그런지 야채며 과일 등의 장바구니 물가가 싸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 거제에서 지내며 느낀 점이다. 이제 거제는 여행지이기 앞서 생활지다.


해질 무렵 옥포 시내에서 흔히 만나는 풍경 - 대우조선산단에서 옥포 시내로 자전거 퇴근하는 사람들 


자연산 전복, 죽순, 두릅, 엄나무순, 다래순을 구입했던 옥포국제시장


숙소 바로 앞은 옥포 바다다. 비록 대우조선 인근이라 해상 공단 느낌은 있어도 그래도 바다는 바다다. 옥포항의 등대와 해안 둘레길은 여느 바닷길 못지않게 아름답다. 한 달의 절반을 생활인으로 지냈으니 이제 슬슬 여행 시동을 걸어보려고 한다. 가장 먼저 집 앞 옥포항으로 나가서 팔랑포와 덕포까지 해안길을 걸어보고 싶다. 아침 운동 나온 동네 주민들과 나란히, 반쯤은 거제 주민인 채.



 




매거진의 이전글 부산 여행지와 한달살기 비용 정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