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트립 Apr 19. 2022

거제에 숨겨둔 심심한 천국, 신선대와 함목몽돌해변

재미있는 지옥러를 피해 갈만한 곳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제도는 제주도와 달랐다. 제주 같은 섬을 상상하면 안 된다. 제주는 경사 완만한 한라산이 중심에 있고 주변으로는 고도가 낮아져 해안에 오면 제법 사람이 살만한 평지가 어느 정도 확보되는 편이다. 거제에 오니 신(神)이 굴곡 많은 산을 통째로 바다에 빠트려 거제도를 만들었는지 평지는 찾아볼 수가 없고 해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는 해안일주도로가 있지만 거제에는 없다. 제주가 여성적인 섬이라면 거제는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 같다.


거제에서는 운전이 쉽지 않았다. 섬 전체가 산지(山地)라 할 만큼 고르지 않은 지형으로 인해 터널과 일방형 고가도로가 많다. 낭만 가득한 해안 드라이브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거제의 해안길은, 콧노래 부르며 곁눈질로 바다 보고 가다가 해수욕장 푯말 보고 핸들만 꺾으면 해변으로 들어서게 되는 제주나 동해안과는 차원이 다르다. 좁은 진입로에 급경사로 바다면까지 수직으로 떨어지다시피 해야 닿는 해변이 많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런 거제 지형의 어려움을 뚫고 가볼 만한 거제의 바다는 어딜까? 거제는 유난히 파도에 강한 돌이 많은지 모래 해변보다 몽돌해변이 발달했다. 구조라, 와현모래숲, 명사 해수욕장 등 모래해변도 없지는 않으나 '까무잡잡하고 동글동글한 자갈'로 된 몽돌해변은 거제 해변의 차별성이요 자랑이다.


거제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몽돌해변은 학동흑진주해변이다. 넓게 펼쳐진, 유난히 검은 몽돌 해변이 장관이고 주변 상권도 충실히 형성되어 있다. 찾는 사람이 많아 관광 분위기도 난다. 요즘 바닷가마다 유행하는 해상 산책로가 세워지려는지 학동몽돌해변도 구조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밋밋한 해안경관에 포인트를 더해 사진빨 잘 받는 몽돌해변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학동흑진주몽돌해변


이 글에서는 누구나 가는 해변은 아니지만 해변미가 탁월한 곳 두 군데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반한 비밀스러운 바다는 신선대몽돌해변과 함목몽돌해변이다. 둘 다 이미 거제 필수 관광지가 된 '바람의 언덕'과 가깝다.

 

바람의 언덕


다들 왜 도장포까지 가서 바람의 언덕만 갔다 가는지 모르겠다. 도장포 초입에서 바람의 핫도그를 하나씩 입에 물고 바람의 언덕에 가서 인증샷을 찍고 돌아간다. 각자 와서 단체여행하는 사람들이다. 똑같은 곳에 가서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사진을 찍으며 '똑같은 여행'을 '복붙'한다.

 

바람의 언덕 주변 해안


여행지에 가서 조금만 세심히 보고 도전하면 여행도 나만의 변주가 가능한 법. 거제를 간다면 신선대몽돌해변과 함목몽돌해변을 꼭 찾아 들러보자.   


먼저 신선대에 올라 걸어보라. 시루떡 쌓은 듯 수억만 겹 쌓인 해안 퇴적층으로 유명한 부안 채석강과 고성 상족암과는 결이 다른 해변지형 명소를 만나게 된다. 신선대는 채석강과 상족암 퇴적층 위를 걸어 다닌다고 상상하면 틀리지 않다. 발밑을 들여다보면 건열이며 연흔이며 지구과학시간에 들어봄직한 지질구조를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디에선가 공룡발자국이라도 튀어나올 포스의 퇴적암층이 신비롭다.


신선대 전경
신선대에 올라 발견한 퇴적구조, 물결무늬가 퇴적층에 남은 연흔(왼) & 건조 기후의 흔적인 건열(오)


신선대 아래 신선이 걷다가 쉬려고 숨겨둔, 그래서인지 사람 하나 없는, '신선 전용 쉼터'가 있다. 몽돌로 된 아담하고 귀여운 해변이다. 별도의 이름은 없는 듯하다. 거제 관광과에 제안한다. 이미 내 마음대로 명명한 '신선대몽돌해변'을 공식명으로 붙여 주시길. 여기에서 보는 신선대와 바다 경치 또한 신선급이다.

 

신선대몽돌해변


함목몽돌해변은 얼핏 보면 쇠락한 해변 같다. 인근의 몇 안 되는 펜션의 연식이 심상찮아 보이고 일부는 새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도로 초입에 차를 세워두고 수직 가파른 길을 걸어 내려가면 채 5분도 안되어 탄성을 지르게 다. 아늑하고 한적한 몽돌해변을 발견했다면 숨은 진주 찾기 성공이다.

 

함목몽돌해변


기왕 공개한 김에 '몽돌해변 즐기법' 보너스 보따리를  풀어보자. 먼저, 닮은 듯 다른 몽돌 중 예쁜 몽돌을 찾아 '개성만점 몽돌 전시회'를 열어보면 어떨까? 몽돌 크기의 천이를 비교해보라. 해변에서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몽돌의 크기와 둥근 정도가 해안선과 나란히 층을 이룬다. 당연하면서도 신기하다. 몽돌해변에서 눈을 감고 기다려보자. 바닷물과 몽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평온과 치유의 음악이다. 마지막으로 신발을 벗고 몽돌 위를 걸어보길 권한다. 발바닥에 고 퍼져 있다는 우리 몸 오장육부의 혈점을 몽돌이 눌러줘 꿀잠을 가져다줄 것이다.  


해안에 가까울수록 몽돌이 더 작고 더 둥글다. 해안과 나란한 몽돌의 층이 재미있지 않은가.


두 해변은 솔직히 나만 알고 나만의 프라이빗 해변으로 남겨두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왜 공개하냐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심한 천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두 해변은 천국같이 아름답지만 한없이 심심하다. 내가 알려준다 해도 내 글의 파급 효과도 전혀 대단하지 않거니와 재미있는 지옥을 더 좋아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학동흑진주해변에서 바글거리고 있을 거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한달살기여행와서 '여행'은 안 하고 '살기'만 하는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