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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May 23. 2022

나의 제주 편식 여행지, 김녕해변

제주 화산 여행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도 몰랐는데 나는 여행지 편식이 심한 사람인가 보다. 제주에 머무는 한 달간 김녕 해변을 다섯 번이나 갔다. 두 번은 잠깐 바다를 보거나 보말을 주우며 일몰을 즐긴 정도지만 세 번은 김녕 바다를 두 시간 가까이 걸으며 관찰하는 밀착 산책을 했다.


제주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뭘까? 바다와 돌담이 아닐까? 환상의 물빛을 자랑하는 제주 바다와 제주 어딜 가나 주치는 검은  그 누구라도 반하게 만들어버리는 절대 마력을 지녔다.


해수 온도가 올라가고 바다 밑 식생이 변했기 때문인지 예전에 제주 바다에서만 보던 물빛이 남해안 바다에서 더러 보인다. 심지어 동해에서도 제주 바다색을 띠는 바다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바다가 아무리 제주스러운 물빛을 가졌다 해도 제주 바다를 흉내 내지 못하는 이유는 '검은 돌'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 바다의 차별성은 돌이다.


집담이나 밭담을 만드는 재료돌인 검은 현무암은 제주 해변에 지천으로 있다. 런 해변 에서도 김녕바다는 유독 검은 돌이 많은 곳이다. 지질학적으로 유의미한 장소인지 제주지질공원으로 정해놓았다. 김녕 지오트레일을 따라 김녕 바다를 걷는다.


김녕 지오트레일
[순환형] 김녕해수욕장(김녕성세기해변) - 원담 - 세기알해변 - 도대불 - 조간대 - 청굴물 - 게웃샘굴 - 김녕밭담길 - 투물러스와 두럭산 - 환해장성 - 파호이호이 용암대지 - 모래사구 - 김녕해수욕장


김녕 지오트레일 안내도


김녕해변에 왔으니 해변의 얼굴마담, 모래사장 낀 김녕해수욕장부터 감상하고 출발한다. 김녕성세기해변, 세기알해변으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외부인들에겐 김녕해수욕장으로 통한다. 나를 김녕앓이로 만든 김녕바다의 매력은 뭘까?


흰 모래가 돋보이는 김녕해수욕장 


용암산책이 가능한 너른 용암대지


현무암 흐드러진 김녕해변은 넓은 흰모래사장과 흑백 대비가 선명하다. 점성이 작아 잘 흐르는 성질을 가진 용암이 만든 평탄한 용암대지가 해변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김녕해변이 만장굴이나 다른 용암굴과 가까운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런 용암동굴을 빠져나온 엄청난 양의 용암이 이곳까지 흘러내려 굳었을 것이다. 이렇게 용암대지를 만드는 점성이 작은 용암을 파호이호이 용암이라고 한다. 김녕해변은 접근성이 나쁜 다른 해변 용암과 달리 용암대지 위를 맘껏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다. 일명 '용암산책'이 가능한 곳이다.

해수면이 낮았던 시기에 점성이 작은 용암이 만든 평탄한 지형, 용암대지


김녕해변에 흐드러지게 돌꽃이 피었다. 내 눈엔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바다 풍경의 완성을 위해 5월엔 파래가 또 한몫을 하네.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에 잠겼다 드러났다를 반복하면서 발달된 조간대



김녕해변은 용암 지형의 교과서


김녕해변의 용암대지를 만든 것은 파호이호이 용암(Pahoehoe lava)인 반면, 점성이 작아 거칠거나 날카로운 용암 표면을 보이는 용암은 *아아 용암(Aa lava)이라고 한다.(*제주공항 근처의 용두암이 대표적인 아아 용암이다.)


용암 위를 걸어 다니다가 육각기둥의 주상절리도 찾았다. 중문의 지삿개주상절리 보다 정교하지도 않고 키도 작지만 내 눈으로 발견하니 반가움에 더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내 발 밑은 다각형들의 향연이다. 육각형과 그 의 형(칠각형) 아우(오각형)가 한자리에 모였다. 유동성 큰 용암지대의 특성인 밧줄 구조(새끼줄 구조)도 흔하다. 꼬인 새끼줄 모양으로 주름져 굳은 것으로서 용암이 흘렀던 방향과 수직으로 동심원상으로 퍼져나간 구조이다.

조간대에서 만난 난장이 주상절리(왼) & 주상절리를 위에서 본 모습(오)


용암대지 위의 밧줄 구조

용암언덕인 투물러스(Tumulus)도 몇 개나 찾았다. 용암이 흐르면서 겉은 굳고 내부는 덜 굳은 상태에서 용암 내부의 가스가 표면 용암을 부풀게 밀어 올려 만든 언덕 모양의 용암을 투물러스라고 한다. 투물러스 중 '두럭산'이란 이름을 얻은 것도 있었고 투물러스 몇 개가 바다 위에 어우러지니 '블랙 다도해'가 펼쳐진다.

김녕해변의 대표 투물러스(용암언덕)인 두럭산
김녕해변의 블랙 다도해


김녕 바다와 사람들


김녕해수욕장을 비껴 돌자마자 바닷가에 돌담을 막아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를 가두어 잡았다는 원담이 보였다. 또 생선 기름으로 불을 밝혀 포구를 알리던 옛날 등대인 도대불이 옛 포구의 자존심을 말하고 있었다. 마을에 인접한 용암대지인 조간대는 썰물 때면 해초나 어패류를 채취하는 작업장이 되기도 하는데, 마침 내가 갈 때마다 조간대 끝자락에서 천초(우뭇가사리)를 걷어 올리는 동네분을 만날 수 있었다.


바닷가 우물인 청굴물도 검은 돌을 쌓아 만든 삶 건축 그 자체로 푸른 바다와 어울려 포토존이 되었다. 제주에서는 빗물이 지하로 흘러들어 화산돌 사이에서 자연정화된 물이 용암 아래의 점토층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지표로 솟아오르게 되는데 이 물을 용천수라고 한다. 용천수를 얻을 수 있는 곳에 마을이 발달했다. 물 귀한 제주 땅에서 생명수 용천수가 솟는 곳 중의 하나가 청굴물이고, 청굴물보다 내륙에 있어 밀물 때도 바닷물에 잠기지 않는 샘물터가 개웃샘굴이다.



원시 어로 방식의 하나인 원담(또는 갯담)(왼) & 옛 민간 등대 도대불(오)
바닷가 용천수 샘터인 청굴물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조간대. 용암대지의 끝자락에서 우뭇가사리를 채취하고 있는 사람들.


그동안 제주를 몇 년에 한 번씩 오던 시절, 명소를 여기저기 찍는 점(点)여행을 했고 작년에 올레길 걷기를 하며 '길 따라, 제주' 선(線)여행을 했다. 지금은 구좌읍에 똬리를 튼 채 한 달짜리 체류 여행 면(面)여행을 하고 있다. 점여행, 선여행에 이어 면여행이니 나의 여행도 진화하고 있는 건가?


한달살기 면(面)여행의 좋은 점은 갔던 곳을 반복해서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곳이라도 쨍한 날과 흐린 날이 다르고, 바람 따라 다르다. 한낮이 다르고 해질녘이 다르다. 여기에 바다 풍경은 물 들어올 때와 물 나갈 때 확연히 달라진다. 그러고 보니 김녕바다의 일몰 사진이 없네. 해지는 김녕바다를 담으러 취재여행을 또 나서야겠다. 제주에서의 남은 여행 동안 친구가 온다면 가장 먼저 김녕해변으로 데리고 가야지. 내가 찾은 난쟁이 주상절리와 육각형도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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