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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May 24. 2022

제주에 왔으니 자리물회를 먹어야지

제주인의 여름나기 음식, 자리물회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난 물회를 좋아한다. 내가 언제부터 물회를 먹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물회란 음식이 대중화된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나의 물회 식도락사(史)도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겠다. 여름엔 몸이 저절로 물회를 찾는다. 


물회는 어부들이 배에서 갓 잡은 생선을 썰어 물 부어 후루룩 먹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물회를 시키면 회와 야채 썬 것에 생수를 따로 주는 식당이 더러 있었다. 요즘은 물회가 맛도 비주얼도 진화해서 내가 사는 내륙도시에서는 대부분의 물회 집이 활어회와 배채와 오이채 등 갖은 야채에 보기만 해도 군침도는 빠알간 살얼음 육수를 부어 내온다. 횟감은 회로 먹는 생선이면 뭐든 가능한 듯하다. 광어, 도다리, 한치, 오징어, 갑오징어... 모듬물회도 있다. 생선도 아닌 주제에 물횟감에 끼면서 더 고급으로 대접받는 전복이나 멍게, 해삼도 있다. 



자리물회 영접기


제주에 오니 식당 메뉴에 육지에서 전혀 보지 못한 물회인 자리물회(자리돔물회)가 많았다. 10년 전 제주 여행에서 처음으로 맛본 자리물회. 그때 숙소 주인이 '제주 사람들은 자리물회로 여름을 난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며 제주를 드나드는 10년 새 여름이면 자리물회 한 그릇은 꼭 먹고 다녔다. 육지물회가 생수 따로의 투박한 물회에서 고추장 베이스의 화려한 살얼음 육수 물회로 변신하는 동안 제주의 자리물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된장 베이스의 야채 냉국 스타일에 뼈째 지느러미째 썰은 자리회를 말아 낸다.


사실 자리물회는 난이도가 좀 있는 음식이다. 조금만 방심해 씹으면 입 안을 마구 찔러대는 가시도 문제이거니와 더 괴로운 것은 지느러미다. 지느러미를 일부러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같이 썰어 물회를 만든다. 먹는 내내 입천장이 까슬까슬하다. 그래도 자리물회 맛을 들이면 고소하기도 하고 가시와 지느러미째 씹는 특이한 식감이 집 나간 여름 입맛을 찾아준다.

 


자리물회 먹으러 2시간 버스 타고 가기


제주에서도 여러 곳에서 수차례 자리물회를 먹었지만 10년 전 금릉포구에서 처음으로 먹었던 물회만 한 곳이 없었다. 이번에 한달살기 하는 참이기도 하고 마침 자리물회 철이라 10년 전 그 식당을 작정하고 다시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메뉴를 팔고 있었고 양푼이에 푸짐하게 담아내는 것도 예전 그대로였다. 변한 게 있다면 제피 잎을 작은 접시에 따로 주지 않고 제피가루를 갖다 주었다. 이파리만 못하지만 제피 향이 나긴 났다. 


자리물회 2인분 올해(왼) & 10년 전 자리물회 사진(오)  


먹고 나오면서 식당 주인에게 옛날처럼 제피 잎을 안 줘서 아쉬웠다고 하니 어머니 살아 계실 때는 그렇게 했는데 심어놓은 제피나무에서 제피 잎을 딸 사람이 없어 가루로 대신한다고 했다. 그래도 오로지 자리물회 한 그릇 먹겠다고 서귀포에서 202번 버스를 타고 정류장 88개를 지나 장장 2시간 걸려 찾아간 게 억울하지 않은 맛이었다. '그래 이게 여름 제주의 맛이지!' 이쯤 되면 이 식당의 자리물회는 나의 소울푸드가 아닌가. 



수제 자리물회로 손님 접대하기


한달살기 제주 집에 포항에서 친구가 놀러 왔다. 제주 별미 자리물회를 만들어 대접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세화오일장에 가서 톳물김치와 자리횟감을 사 왔다. 된장을 풀은 물에 고추장을 약간 더해 맛과 색을 내고 생톳과 양파, 부추를 넣어 만든 톳물김치는 자리회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았다. 파는 분에게 몇 번이나 물어 자리횟감 써는 법도 배워왔다. 자리물회용 자리는 커봐야 가운데 손가락 길이만 한 작은 것들이다. 뼈째 썰면 된다고 한다. 일명 '세꼬시'다.


집에 와서 자리를 뼈째 어슷 썰고 혹 꼬리지느러미가 입안에서 거슬릴까 손님용 절반은 꼬리지느러미도 뗀 채 준비해 두었다. 육수 격인 톳물김치에 자리회를 넣어 섞고 삶은 소면까지 따로 내어 놓으니 '손님맞이 자리물회'가 완성되었다.  


자리물회 만들기 1. 톳물김치 사오기
자리물회 만들기 2. 자리횟감 썰기
자리물회 만들기 3. 톳물김치에 자리회 넣기. 식성에 따라 소면 추가도...


귀한 육지 친구가 제주에 왔으니 제주 대표 메뉴 자리물회로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나의 미션은 성공했을까? 친구는 자리회의 꼬리지느러미가 문제가 아니라 세꼬시회 자체를 못 먹는단다. 이런... 30년 넘게 포항에 살았으니 웬만한  물회는 다 섭렵했으려니 해서 특별식으로 준비했건만 이날 저녁 우리 부부 둘이서 3인분의 자리물회를 먹어치워야 했다.




예전 제주 가족여행 때 식당에서 자리물회를 시키니 우리가 외지인인걸 알아본 주인이 한번 더 확인을 했다. 지느러미째 나와 먹기 어려울텐데 그래도 시키겠느냐고. 이러니 세꼬시 회조차 못 먹는 친구에겐 자리물회는 넘지 못할 벽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겪지 않고서는 제주 사람들이 즐기는 독특한 맛의 세계를 알 수 없으니 '제주에 왔다면 자리물회를 꼭 드셔 보시라.'


이번 여행에서 자리물회를 사 먹고 만들어 먹으면서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내가 이다음에 식당을 차린다면 물회식당을 해야겠다.' 그 이유는 첫째 내가 물회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물회가 대단한 조리법이 필요치 않는 메뉴로 보이기 때문이다. 싱싱한 활어와 비법 육수로 승부하는 요리이고 메뉴의 단일화도 가능하다. 셋째, 물회는 울트라 패스트푸드이다. 가열 없이 원재료를 썰어 육수를 부어내면 되니 그 어떤 요리보다 빨리 서빙할 수 있고 회전율도 빠르다. 마지막으로, 계절 음식이라 일 년에 절반만 장사하면 되지 않을까? 워라벨 차원에서 6개월은 놀아야지.


쓰고 보니 생업으로 물회식당을 하시는 분들께 죄송하다. 이 따위 '탁상망상' 수준으로 절대 성공할 리 없으니 물회식당 사장님들, 그만 노여움을 푸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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