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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19. 2022

해파랑길 51코스 앞까지 걸어보았다

해파랑길 51코스를 걷는 그날이 오길 / 고성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땅끝마을, 고성


국토대장정이란게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걸어서 한반도를 종단하는 것으로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혹은 인천에해남까지 400~600km를 2~3주간 걷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대학생이나 청년들이 자기 성찰이나 심기일전 또는 자기 도전 등 저마다의 이유로 참가하는 것 같았다. 해남은 누구나 아는 한반도의 남쪽 땅끝이다.


그렇다면 북쪽 땅끝은 어디일까? 국토가 반동강 난 지금의 한반도에서 위도상의 북쪽 땅끝은 행정지 고성군에 속한다. 통일을 바라는 우리 마음의 땅끝은 북 땅끝이되 현실의 땅끝은 고성 민통선 안의 통일전망대다.


부산에서 동해를 따라 나있는 걷기길인 해파랑길 50개 코스의 끝도 고성이다. 지난 3월 부산의 해파랑길의 시작점 1코스에서 바다를 따라 3코스까지 걸었는데 석 달 만에 다시 찾은 동해변 해파랑길 종점이다. 해파랑길 갓 입문한 입학생이 어느새 월반해 졸업반에 와 있는 기분이다.



해파랑길 49코스에서 종점 50코스까지


이틀간 해파랑길의 막바지 구간인 49코스와 50코스를 걸었다. 알고 보니 고성 한달살기 우리 집 뒷길이 해파랑길 49코스의 기점이었다. 집 뒤 언덕의 성황당 앞에 해파랑길 리본이 펄럭인다. 거진항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풍어와 동네의 안녕을 잠시 빌어본다.


해파랑길 49코스 초입의 거진 성황당에서 내려다본 거진항


해파랑길이나 남파랑길, 제주올레길을 걸어보니 숲과 바다, 경치 좋은 곳만 연결된 게 아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지역 문화를 만나도록 도시의 대표적인 원도심을 적절히 엮어놓았다. 부산의 좌천동 산복마을을 올라갔다 나와야 하는 남파랑1코스와 제주시의 원도심을 통과하는 올레 17코스가 그 예이다. 그래서 길만 충실히 따라 걸어도 그 도시 이해의 기초가 저절로 잡힌다.

 

해파랑길 49코스 초입에서 거진항 마을을 보고 지나가게 되어 있다. 한 때 우리나라 최대 명태항으로 이름을 날렸던 거진항이라더니 항구 규모가 예사롭지 않다. 수온이 높아져 이제 더 이상 명태가 찾아오지 않는 항구에 드나드는 배도 사람 수도 옛 명성에 못 미칠 뿐이다. 관광항으로 거듭나려는 듯 마을 안 길은 타일 벽화길로 꾸며놓다. 해안의 백섬에 조성한 해상전망대도 지나가는 차들을 연거푸 멈춰 서게 만든다.


거진항 마을의 타일 벽화길


거진항의 백섬 해상전망대


산등성이를 따라 바다가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길을 두 시간쯤 걸었더니 김일성별장이 있는 화진포에 도착했다. 김일성별장은 '김일성' 이름 석자만으로도 사람을 유인하기에 충분하다. 일제 때 원산항의 선교사들의 휴양타운을 화진포 해변으로 옮기게 되면서 선교사 셔우드 홀이 지은 바닷가 주택인데 1948년 이곳이 북한령일 때 김일성 가족이 여름 휴양지로 이용했다고 한다. 집 자체는 소박한 돌담집이지만 화진포 해변이 조망되는 절묘한 위치에 올라앉았다. 전시관 내부에 걸린 어린 시절의 김정일 사진이 김일성별장이란 별칭을 뒷받침했다.


호수와 바다가 한 컷에. 응봉에서 내려다본 화진포호와 화진포해변


김일성 별장(화진포의 성)


화진포를 지나면 초도해변을 거쳐 대진항을 만난다. 대진항은 우리나라 최북단 항구다. 대진항은 북방조업한계선인 인근의 저도에서 잡아온 문어로 유명하다. 점심으로 대진항에서 문어물회를 먹었다. 피문어라고 해서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가장 북쪽에서 잡아온 문어니 어쩌면 북한 바다 출신일지도 모르는 문어다.


테트라포드가 조형물로 탄생한 대진항


저도에서 잡은 피문어로 만든 물회국수


마차진해변을 지나면 49코스가 끝난다. 여기에서 걷기는 '자동 종료'되었다.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50코스는 안보상의 이유로 도보는 불가하고 차로만 가도록 되어 있었다. 다음날 통일안보공원에 들러 신청서를 쓰고 안보 교육을 받은 후 개인 승용차로 통일전망대로 들어고 오가는 길에 검문을 거쳤다.


사실상 걸어서 갈 수 있는 동해의 마지막 해변, 마차진해변(금강산 콘도 앞바다)


군사분계선인 38선에서 3.8km 떨어진 통일전망대(민통선 안)



해파랑길 51코스 앞에 서서


통일전망대에 서니 인위적인 선(線) 너머의 세상이 펼쳐졌다. 초등학교 때 2인용 책상(요즘은 다 1인 1책상이지만) 한가운데에 선 그어 짝꿍이랑 '내 구역, 너 구역'하던 그런 선이다. 지구 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오가기 힘든 나라. 아이러니하게도 물리적으로 벽을 맞대고 있는, 같은 말을 하는 우리에겐 '출입이 원천 금지된 땅'이 눈앞에 보였다.


해파랑길 51코스를 눈앞에 두고


금강산 자락도 보인다. 20여 년 전 금강산 육로 관광이 허락될 때 나도 갈 걸 그랬다. 그때만 해도 나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된 길이 이렇게 오랫동안 막히고 또 앞으로 언제까지 멈춰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금강산으로 난 육로 도로와 북한과 연결된 철길이 뚜렷하게 보였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사연 있는 길이고 그래서 슬픈 길이다. 저 길을 따라 해파랑길은 계속 이어져야 하리니. 여기에서 다시 발걸음을 떼 해파랑길 51코스를 걸어가는 그날을 상상해본다.



※통일전망대

통일안보공원(통일전망대 출입신고서)에서 신고서 작성(신분증 지참), 승용차 단위로 통일전망대를 관람할 수 있음.(예약불필요, 시기별 관람 시간 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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