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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Aug 21. 2022

홍어삼합이 가장 순한 맛이라니

난이도별 홍어 요리 도전기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골집에서 살아드립니다' 프로젝트를 할 뻔했다. 나주 출신 지인이 내가 한달살기 여행으로 전국을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전라도에 갈 마음이 있으면 자신의 나주 시골 빈 집을 이용해도 좋다는 제안을 해왔다. 광주 도심에서 차로 40분 거리다. 마침 광주 여행을 계획한 터라 구미가 당겼다.


나주에 가서 뭘 하지? 광주로 원정 관광을 하거나 시골집에서 삼시세끼 해 먹으며 '리틀 포레스트'라도 찍으면 되지 싶었다. 결국 광주에 한 달간 지낼 집을 얻게 되면서 나주살이는 삼일 만에 끝났지만 이렇게 인연을 맺은 나주에서 나는 제대로 한 방 먹었다. 나를 단번에 넉다운시킨 건 다름 아닌 나주홍어였다.


'나주배'와 '나주곰탕'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주는 알고 보니 홍어의 본산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삭힌 홍어의 본고장이었다. 흑산도 홍어가 나주로 실려와서 삭힌 홍어로 가공되어 전라도는 물론 전국으로 판매된다. 한 때 번성했던 증거로 국내 유일의 내륙 등대까지 남아 있는 포구, 나주 영산포에 가면 강변에 홍어 가공장과 판매장, 홍어 식당이 밀집한 곳이 나온다. 600년 홍어 거리다.


나주 영산포의 홍어의 거리


바닷가도 아니고 홍어가 잡히지도 않는 내륙 도시 나주가 어떻게 삭힌 홍어의 집산지가 되었을까? 예부터 흑산도 앞 영산도(榮山島) 바다에서 잡히는 홍어, 참홍어를 최고로 쳤는데 영산도가 행정상 흑산도에 속해 흑산도 홍어로 알려졌다. 고려시대 때 왜구의 출몰로 영산도 사람들을 나주로 이주시켰고 영산포(榮山浦)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홍어가 영산강 300리 뱃길을 따라 실려왔고 도중에 발효 숙성되어 삭힌 홍어가 되었다.


일제 때 나주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한 거점 나주 영산포에 설치한 영산포등대(1915)


삭힌 홍어의 기원은 배로 이동하는 열흘간 자연 발효되어 그렇게 되었다는 설과 차가운 바닷물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숙성시켰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호남의 젖줄 영산강(榮山江)은 이름 또한 영산포 앞을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산강은 홍어를 만든 물길이기도 하고 홍어잡이하고 홍어를 즐겨먹던 사람들 때문에 이름을 얻은 강이니 영산강과 홍어는 이래저래 특별한 짝이다.


이런 영산포에 왔으니 홍어를 먹어야지. 홍어 거리에는 홍어 판매와 식당을 겸하는 곳들이 많았다. 홍어 맛을 전혀 모르는 외지인이라 여러 가지 홍어 요리를 한 번에 낸다는 호기심에 홍어 정식을 시켰다. 생전 처음 보는 홍어 요리가 하나 둘 테이블에 올려지기 시작했다. 나온 순서대로 홍어 요리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홍어 정식 : 홍어애, 홍어무침회, 홍어삼합, 홍어전, 홍어찜, 홍어튀김, 홍어애국


홍어 첫 한 상. 홍어전, 찜, 튀김, 탕이 이어짐


홍어애는 생 홍어간을 소금에 찍어먹는 것이고, 홍어애를 추어탕처럼 끓인 게 홍어애국이다. 아구내장과 맛도 모양도 비슷했다. 물컹거리는 비호감의 식감을 조금 견디니 살짝 구수한 맛이 올라왔다. 무침회는 생홍어를 매콤하게 무쳐낸 것이고 홍어살과 연골의 쫄깃하면서도 오드득거리는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홍어애(왼)와 홍어애국(오)


홍어무침회는 대중적 음식!


이제부턴 '삭힌 홍어' 시리즈다. 메인 요리는 홍어회인 홍어삼합이었다. 도톰하게 저며진 홍어날개 부위 한 점에 돼지 수육과 묵은지를 얹어 먹어 '삼합'이라는 폼나는 이름이 붙었다지. 꼬들꼬들하게 씹는 느낌에 잠시 방심한 순간 콕 쏘는 맛과 역한 냄새가 올라와 움찔했다. 당황안한 척 억지로 씹으니 돼지고기와 김치가 맛을 조금 진정시켜줬다. 솔직히, 맛있게는 아니고 그냥 참고 먹었다.


홍어삼합 한 접시


삭힌 홍어로 아무렇지도 않게 전유어도 하고 찜도 하고 튀김도 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홍어전과 홍어찜은 쏘는 맛과 암모니아 향이 회보다 더 강렬했다. 남도 사람들은 잔치상에 홍어가 빠지면 아무리 잘 차려도 '먹잘 것 없다'라고 한다는데 난 전라도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접대 음식 홍어만 한 상 받아 놓고도 '손갈 데 없었다'... 이건 경상도 입맛 여행자의 개인 한계인가, 먹고 자란 음식의 문화차(差)가 한반도 동서 좁은 폭 안에서도 이렇게 큰 것인가.


홍어전과 홍어찜


음식이 아니라 식고문이었다. 맛있느냐 맛없느냐가 아니라 먹느냐 못먹느냐의 문제였다. 식고문의 절정판은 홍어튀김이었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 아니라 점입가학(漸入加虐)이다. 난 지금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내 속을 학대하고 테스트하는 중? 홍어튀김에 비하면 차가운 상태로 썰어 나오는 홍어회는 아무것도 아니요, 가장 순한 레벨의 맛이었다. 홍어전과 홍어찜이 그다음이요, 홍어튀김이 가장 센 맛, 아니, 가장 끔찍한 맛이었다.


단호박튀김과 함께 나온 홍어튀김


도대체 이 쏘는 맛과 냄새의 정체는 뭘까? 왜 홍어회보다 홍어튀김에서 더 공격적일까? 연골어류인 홍어는 바닷물의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해 체내에 요소를 많이 품고 있다. 홍어가 죽으면 이 요소가 분해되어 암모니아를 배출하는데 그 과정에서 부패균을 죽이면서 홍어 자체는 부패되지 않고 알칼리성 발효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콕 쏘는 맛과 냄새는 곧 암모니아 때문이고 온도가 높으면 암모니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는 곧 삭힌 홍어를 가열한 요리 중에서도 가장 고온 요리인 홍어튀김이 가장 먹기 어려운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된다.


식사 후 양치질하세요~ 일회용칫솔을 비치한 홍어 식당의 화장실


나는 쌀국수에 면발이 안 보일 정도로 고수(샹차이)를 듬뿍 뿌려 먹는다. 과일의 황제라고 불리지만 정작 특유의 역한 냄새로 호텔 반입이 금지된 두리안은 내 동남아 여행의 기쁨이다. 꼬리꼬리한 냄새가 진동하는 중국의 취두부도 두 번만에 먹게 되었다. 나름 새로운 향신료와 낯선 음식에 잘 적응한다고 자부하는 나는 과연 삭힌 홍어에 적응하게 될까?


누구는 '고수를 먹어야 진정한 미식가'란 소리를 듣고 '쌀국수에 고수 넣어 먹기' 열 번을 도전해서 마침내 고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여수와 목포에서도 한 달씩 더 지내야 하는데 홍어 맛을 알면 전라도 여행이 더 즐겁지 않을까? 그렇게 되려면 지금부터 아홉 번 더 홍어를 먹어야 하나? 난 몇 번만에 홍어와 친해질 수 있을까? 인생이 재미없다고 생각될 때 먹으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은 음식, 홍어는 대답해주기 바란다. 오버!



* 참고 : 정해옥, 하천과 문화 Vol9, 하천지명 유래 이야기5,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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