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트립 Sep 24. 2022

부산의 로컬푸드, 멸치쌈밥과 비빔당면

부산에서 만난 재미난 먹거리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대표 먹거리는 뭘까? 부산 거리를 다니다 보면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 식당 간판이 있으니 바로 돼지국밥과 밀면이다.


부산 돼지국밥은 국물이 맑으냐 탁하냐에 따라 '합천식'이니 '밀양식'이니 하며 나누기도 하고, 누가 선정했는지는 몰라도 '3대 돼지국밥'이니 하는 표현도 심심찮게 본다. 부산 밀면 또한 돼지국밥에 밀리지 않는다. 칼국수와 짬뽕은 더운 국수 요리니 그렇다 치고 냉면집이나 막국수집 보다 밀면집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쯤 되면 산의 양대 식사 메뉴로, 밥은 돼지국밥, 면은 밀면으로 정리된다.


돼지국밥과 밀면 부산 시내를 혼자 다닐 식당 문턱에서 절대 쫓겨날 리 없는 안전한 인분 요리라 자주 다. 패스프푸드급의 빠른 상차림과 어디를 가든 기본은 보장하는 맛이라 부산 대표 음식으로 인정하는 바다.


돼지국밥과 밀면은 부산이 아니어도 종종 다. 기왕 부산에 왔으니 다른 곳에서는 잘 먹어보기 어려운 메뉴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부산의 진정한 로컬 푸드는 뭘까? 부산을 두 달 가까이 여행하면서 '외지인'으로서 내가 뽑은 부산의 지역 음식 두 가지는 멸치쌈밥과 비빔당면이다.



생선찌개로서의 멸치의 등장


멸치는 기장 대변항에서 봄에 잡히는 계절생선이다. 육수를 내거나 볶아 먹거나 멸치를 주식처럼 소비하다 보니 멸치는 늘 우리네 냉장고 속에 들어있고 그래서 공기와 동급 존재감의 식재료가 된 지 오래다. 생선이란 단어조차 쓰고 보니 생경하다. 


평생 국물용이나 조림용 마른 멸치만 봐왔던 내게 멸치조림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 작은 멸치로 조림이 가당키나 할까.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멸치조림쌈밥이라? 제육볶음쌈밥이라면 또 모를까 생선조림을 쌈에 싸서 먹는다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먹는 방식의 메뉴명을 보고 '요리'로 성립하나 싶고 궁금해서라도 먹어보고 싶었다.


봄 생멸치로 끓이는 멸치찌개만 못하겠지만 부산에선 멸치찌개를 연중 내는 전문 식당도 제법 있다. 어떤 집은 얼갈이배추와 시래기넣고 국물이 잘박하게 조림에 가깝게 끓여 내는가 하면 어떤 집은 무 넣고 찌개나 매운탕처럼 뚝배기로 내온다. 집집마다 조림과 찌개의 범위 안에서 약간의 변주가 있긴 하지만 상추와 깻잎 등의 녹색 쌈채소와 다시마를 곁들임 쌈으로 내는 방식은 공통적이다. 


멸치쌈밥 한 상. 고맙게도 1인분도 팝니다(1인분:1만원).


멸치찌개에는 평소 보던 멸치보다는 훨씬 큰 멸치를 주로 쓰고 머리와 내장만 제거한 채 조리되어 나오는데 생선 멸치의 살이 연하고 담백하다. 기름기가 없고 비린 맛 또한 없다. 조린 멸치 한 마리를 통째로 상추에 올리고 마늘 편과 함께 쌈으로 먹으면 입 안은 곧 멸치가 놀던 바다가 된다. 첫 술에 거슬리던 멸치 꼬리 지느르미의 까슬까슬한 식감도 어느새 재미로 둔갑된다. 



촉촉한 누들요리, 비빔당면


차가운 비빔면 요리로, 냉면, 막국수, 밀면, 비빔잔치국수, 쫄면까지는 먹어봤어도 비빔당면은 부산에서 처음이다. 비빔당면은 분식의 3대장 김·떡·순-김밥, 떡볶이, 순대-과 한가족 음식으로 분류되고 그래서인지 분식점이나 시장 먹거리 코너에서 주로 판다. 


광안리의 민락골목시장에서 비빔당면 주문을 넣자마자 가게 주인이 마른 당면을 한 움큼 뽑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금세 한 그릇 음식으로 내왔다. 겉보기는 비빔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삶은 당면 위로 어묵채, 단무지채, 부추무침, 당근채, 김가루를 돌려놓고 양념간장을 끼얹었다. 진짜 당면을 비벼먹는 거네? 


양념간장과 갖은 나물에 비벼먹는 비빔당면(5,000원)


잡채는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이지만 어디까지나 사이드 메뉴다. 10여 년 전 필리핀의 어느 식당에서 파는 '코리안 누들'이란 메뉴를 본 적이 있는데 한국의 잡채였다.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먹는 볶음국수 판싯(Pancit)과 잡채를 비슷한 요리로 인식한 것이었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단독으로 발전하지 못한 잡채가 필리핀에서 엄연히 '국수 요리'로 대접받고 있었다.


비빔당면은 볶은 야채에 버무린 잡채와 달리, 삶은 당면이 물기를 머금고 있어 먹는 내내 면이 촉촉하다. 느끼하지 않아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다. 당면 또한 고구마나 옥수수 녹말로 뽑은 것이니 밀가루 면을 대체할 수 있는 탄수화물 공급원이다. 중국에 가면 밀가루국수와 쌀국수뿐 아니라 당면국수도 다양하게 취급한다. 이러니 당면을 이용한 한 그릇 음식은 충분히 가능하고 괜찮은 한 끼 식사가 된다. 




부산 사람들은 유난히 쌈을 좋아하는지 멸치조림뿐 아니라 갈치조림과 고등어조림도 쌈과 같이 내는 곳이 있었다. 메뉴명도 갈치쌈밥, 고등어쌈밥이다. 선조림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짝, 상추쌈과 다시마쌈을 융합시켜 새로운 음식을 탄생시키다니 역시 일찍이 개항해서 외래문물의 관문이었고 6·25전쟁 이후 전국으로부터 밀려든 피난민과 뒤섞여 만들어진, 한국 최대의 '멜팅 팟(Melting Pot), 가마솥 도시', 부산(釜山)답다.


바다와 강과 산비탈 사이사이로 복잡하고 개성 있게 들어선 부산 시가지만 다이내믹한 게 아니었다. 사람이 모이고 물산이 모인 곳에 먹거리도 음식 아이디어도 이종 교배해 지역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요리가 만들어졌다. 


한식 요리의 만년 엑스트라인 멸치가 부산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음식 '멸치찌개'가 되었다. 잡채의 재료이거나 각종 전골 요리의 사리쯤으로 취급되는 당면도 부산에서는 메뉴명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넣어 '비빔당면'으로 독립했다. 


혹 이 글을 읽고 멸치쌈밥과 비빔당면이 궁금해진 이가 있다면 당장 10월에 부산으로 오라. 와서, 자신만의 부산 로컬 푸드를 찾는 미션에 도전해 보라. BIFF(부산국제영화제)광장과 부산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덤이다!



※ 멸치쌈밥 전문 식당들은 다들 기본이상은 한다고 봐도 될 듯. 그래도 참고하시려면...

1) 기장멸치쌈밥 : 진시장 부근, 범일동 먹거리 골목

2) 동광동 멸치쌈밥집 : 백산기념관 맞은편(051-245-8330, (구)중앙대구탕)

3) 비빔당면 : 진시장 영일칼국수 

4) 비빔당면 : 민락골목시장 밀양분식


매거진의 이전글 뜨거웠던 8월의 광주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