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 와서 보니 유달산은 차로 갈 곳이 아니었다. 시가지에 바로 붙은 데다가 최고봉이 200미터에 불과해 원도심의 어느 지점에서라도 유달산의 노적봉까지 10여 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다.
그런데 동네 뒷산쯤의 나지막한 산이 어찌나 옹골차게 솟았는지 월출산 못지않은 기개를 자랑한다. 북쪽부터 삼등바위, 이등바위, 일등바위와 마지막 봉우리 노적봉까지 마치 바디 볼딩 선수가 몸매를 자랑하듯 근육질 암석이 불끈불끈 치솟았다.
가을 유달산
게다가 유달산의 막내봉 노적봉은 '고작 65m 고도의 노적봉'이 아니다. 평지에서 걸어올라 숨도 채 가빠지기 전에 만나는, 해발고도 65미터에서 보는 경치는 실로 과분했다. 내 맘대로 노적봉 3경을 붙여 봤다. 북쪽으로 보여주는 빼곡한 목포 시내 조망이 그 첫 번째요, 남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한 시선 아래로 펼쳐지는 구 일본영사관과 근대 거리와 항구 전망이 두 번째 볼거리다. 또한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목포대교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바다 일몰이 장관이다.
유달산에서 본 목포 시가지
유달산에서 본 목포 앞바다
목포대교로 떨어지는 낙조
이 범상치 않은 유달산의 기운과 유달산을 사랑하는 목포인들의 마음을 시샘했을까?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거주지에서 조선인 마을로 넘어가는 도로를 유달산을 가로질러 내는 바람에 유달산에서 노적봉이 잘려나가 버렸다. 마치 일제가 서울의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도로를 내며 조선 왕실의 상징성을 훼손한 것과 같다. 유달산의 막내 봉우리 노적봉을 섬처럼 툭 끊어 놓은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유달산의 정기를 끊어버리고 싶었을까.
뿐만 아니었다. 유달산에 자신들의 국가 종교인 신사(神社)를 세웠으며 일본 불교까지 가세해 일본인들이 숭상하던 홍법대사(弘法大師)와 그 수호자인 부동명왕(不動明王)을 유달산 바위에 새겼다. 그 둘의 마애상이 유달산에 남아있다고 해서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일등봉 손가락바위의 수직면에서 양각 조각된 부동명왕상(不動明王像)은 쉽게 찾았다. 우리나라는 부처와 협시불을 자연 바위에 새기는데 반해 우리가 절 입구에서 보는 사천왕상 비슷한 것을 새겨놓았는데 인상이 첫눈에도 낯설었다. 홍법대사와 부동명왕은 내게는 현장법사와 손오공의 관계처럼 이해되었다. 홍법대사는 일본 불교 진언종을 처음 연 승려로서 그의 당나라 유학 후 돌아오는 뱃길을 부동명왕이 지켰다고 하여 홍법대사상 옆에 부동명왕상을 같이 만든다고 한다.
부동명왕상(왼) & '유달산신사' 글자 중 사(社)가 지워진 흔적, '유달산신'만 남아있음(오)
그러나 정작 주인공에 해당하는 홍법대사상은 보이지 않았다. 부동명왕상에서 오른쪽으로 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는 안내판 설명이 무색하게 아무리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며칠 후 근대거리의 여행자 쉼터 근무자에게 물어보았다. 홍법대사상이 수풀에 가려 안 보이는 것일 거라면서 부동명왕보다 키가 낮은 바위에 있다고 알려주셨다. 다시 홍법대사의 마애 흔적을 찾으러 유달산 일등바위에 갔다.
일등바위에서 이등바위로 가는 길목 왼쪽으로 낙엽으로 유실되다시피 한 오솔길이 하나 있었고 몇 걸음 안 들어가니 뭔가가 새겨진 바위면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홍법대사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역시 부동명왕을 기준으로 오른쪽편 멀지 않은 곳이었다.
홍법대사상
유달산은 목포 앞바다와 목포 시내가 동시에 내려다보여 위치조차 상징스럽고, 하늘을 향해 기개 있게 솟은 바위조차 영험스러워 보이는 곳이다. 이런 유달산의 최고봉에 1930년에 조성한 일본 불교의 승려상과 그 수호상이 현재까지 남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뿐만 아니라 유달산 곳곳에 *88개의 불상도 있었고 '유달산팔십팔소영장(儒達山八十八所靈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은 홍법대사가 일본의 시코쿠 지역을 순례하며 세운 88개의 사찰을 유달산에 축소 재현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일본 승려들은 시코쿠의 88개의 절을 차례대로 도는 성지 순례를 한다고 한다.
유달산 88개의 불상 중 일부. 17번(十七番)이라는 번호가 선명하다(왼쪽) (사진 출처 : 목포 역사와 이야기 100선(p.111-112))
유달산에 오르지 않고서 목포 여행을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 유달산에서 고하도까지 케이블카가 생긴 이래 유달산은 목포 여행의 정석이 되었다. 기왕 케이블카를 탄다면 고하도에 다녀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하차해서 일등바위까지 가보라. 그곳에서 유달산 전망과 함께 유달산에 남은 일제 잔재도 찾아보면 좋겠다.
기암 품고 단풍 고운 유달산이 일본인들의 번영과 안위를 기도한 기복처이자 일본 불교의 성지였다라는 사실이 놀랍고도 슬픈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여행자의 심난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달산은 오늘도 충만한 바다 낙조를 선물하고 쉴 새 없이 케이블카를 실어 나르고 있다.
*불상을 안치했던 흔적터가 남아있고 불상에는 받침대에 일련번호와 시주자의 일본 이름과 일본 출신지까지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일본인들은 유달산의 88개의 불상을 순례하고 맨 마지막에 홍법대사상 앞에서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