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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Dec 23. 2022

귀인을 만나려거든 여행을 떠나라

인천 여행에서 만난 귀인 셋

인천 여행에서 만난 첫 번째 귀인


한달살기 도시 인천에 왔다. 언제나처럼 낯선 도시 첫 입성은 잠시 설레고 바로 서글퍼졌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찬 바람이 불어대는 한겨울 인천 시내 한복판에 서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집도 절도 없는 여행자에게 낭만이 끼어들 틈이 없다. 집 없는 생활인 모드로 돌아오니 당장 바람 피할 한 뼘 공간이 없다는 사실에 현타가 왔다.

 

부평역 앞 호텔에 하루 숙소를 정한 다음 한 달짜리 집을 구하기 위해 백운역으로 갔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 인천의 동쪽 끝이라 서울로의 접근성이 좋고, 국철 1호선으로 인천항 부근의 관광지를 오가기도 괜찮아 보여 찜해둔 주거 후보지였다. 그런데 부동산 중개소마다 방이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던 중 성부동산에서 자기들 동네는 방이 아예 없다고 하며 백운역보다 간석오거리 쪽이 오피스텔이 많아 상대적으로 방을 구할 확률이 높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탁상 정보가 아닌 실질 정보 한 가닥을 타고 간석오거리로 달려갔다.


간석오거리에서도 연이어 퇴짜를 당하다가 연번 일곱 번째, 대운부동산에서 잠시 기다려보라는 대답을 들었다. 집주인에게 전화로 확인하더니 즉시 입주 가능한 복층형 원룸 오피스텔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12월 한 달 머물 숙소를 구했다. 중개료도 합리적이어서 한 푼도 깎지 않고 전액을 기분 좋게 드렸다. 인천에 한달살기 여행을 왔다고 하니 중개소장님이 인천 여행지와 동네 맛집도 알려주었다. 도시가스 연결까지 대행해주는가 하면 냄비와 식기가 있냐며 빌려주겠다고 하는 등 순식간에 우리 여행의 열렬한 후원자 자처했다.


인천 땅을 밟은 지 세 시간도 안되어 한 달 숙소를 구한 것은 전적으로 친절한 두 분 중개소장님 덕분이다. 마치 작전이라도 하듯 백운역 소장님이 넘긴 고객을 간석오거리 소장님이 받아 골인을 시킨 것이다. 비즈니스이긴 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성심성의껏 서비스하는 이런 분들, 훌륭하다. 인천 여행에서 만난 첫 귀인들이다. 인천 여행, 시작이 좋다!



인천 여행에서 만난 두 번째 귀인


남편의 옛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를 통해 우리가 인천에 여행 와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자신도 우리가 있는 부평에 산다며 만나자고 했다. 여행지 인천에 아는 현지인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본인의 사업장 구경을 시켜주었고, 내 돈 주고는 못갈 고급 식당에서 저녁도 후하게 대접받았다.


한 달씩 생활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남편 친구의 부인이 김치가 있냐고 물었다. 여행자에게 김장이 가당키나 한가. 올해는 김장 생략이다. 여행지에서 아쉬운 대로 무김치라도 담가 먹으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김치 담글 큰 용기도 없고 보관도 마땅찮다. 김장김치가 많다며 싸주는 대로 받아왔더니 졸지에 김치 부자가 됐다.




한국인에게 김치는 사랑이다. 본인이 직접 담근 게 아니라 친구들이 담가준 김치라는데 그것의 일부를 다시 얻은 것이다. 나눔은 나눔을 부른다. 맛있게 익은 김장김치를 보니 서울 자취생 아들이 생각났다. 엄마 아빠가 한달살기 여행하며 전국으로 떠도는 통에 올해 김치 구경 못한 아들에게 한 통 덜어 줘야겠다. 여행자에게 마트에서 파는 김치가 아닌 집에서 담근 김치만도 과분한데 '최상의 재료로 정성껏 담는 김장 김치'라니... 김장 김치 나눠 주신 분, 인천에서 만난 두 번째 귀인으로 인증합니다!


 

인천 여행에서 만난 세 번째 귀인


전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산다더니 수도권에 오니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오는 것으로 보아 진짜 그런가 싶다. 이번에도 남편 친구다. 여행자 신세니 가는 곳마다 손님이 된다. 저녁을 함께 먹고 친구 집에 가서 차를 마셨다. 그 집 욕실에서 쓰다만 자투리 비누 조각들을 한 통에 모아놓은 걸 보는 순간 우리 여행살림 중 다 써가는 비누 조각이 떠올랐다. 손빨래하고 욕실 청소 몇 번 했더니 여행 끝나기도 전에 비누가 먼저 닳아 없어질 처지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두 귀인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게 욕실에 있는 비누 조각을 하나만 주면 인천 여행의 세 번째 귀인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쓰다만 비누가 웬 말이냐며 새 비누를 하나 꺼내주었다. 보는 순간 광고 노래가 절로 입에 붙는 '살구맛사지 비누~' 잘 물러지지 않고 향이 강하지 않아 애용하는 비누라는 비누 평도 따라 왔다. 내게는 쓰다만 조각 비누 하나면 충분한데 새것을 받았으니 과분하다. 귀인은 만나기도 하지만 만드는 법도 있다. ㅎㅎ 세 번째 귀인이다.





여행을 오니 평소에 당연한 것들과 흔하고 넘치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따뜻한 잠자리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애써 찾아야 하고 그 과정에 도움 준 이들이 있었다. 김치 냉장고 한가득 넣어두고 부족함 없이 먹었던 집 김치 한 조각도 어찌나 귀한지, 집에 박스 째 사재고 썼던 비누도 마찬가지다. 집 구하기든 김치든 비누든 여행자의 필요에 따라 도와주고 나눠주는 이들이 귀한 분들이 아니고 누구랴.


지인은 물론 낯선 이들의 크고 작은 도움으로 우리의 여행도 이어지고 있다. 인천 여행에서 세 차례 귀인도 만났겠다. 12월도 씩씩하게 살아 보자!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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