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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16. 2021

중국의 침대 기차는 아래층을 끊어라

침대 기차 타고 나 홀로 황산 다녀오기

한국 사람에게 가장 인기 있는 중국 4대 여행지는 어디일까? 중국 단체 여행 상품 베스트셀러가 그 답이다. 황산, 장가계(장자지에), 계림(구이린), 구채구(지우 자이 고우)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백두산이 영산(靈山)이듯이 황산이 중국사람에게 그러한 것 같다. 아마 중국인들 평생의 소원이 황산에 가보는 게 아닐까?


언젠가부터 나도 중국사람에게 빙의되었는지 황산이 그렇게 가보고 싶었다. 따져보니 4일만 있으면 황산을 다녀올 수 있다.


첫날은 상하이에 도착해 황산행 밤기차를 탄다(제1박:기차).
둘째 날과 셋째 날은 황산 관광(제2박:황산 정상 숙박)
 셋째 날 저녁에 황산에서 상하이행 밤기차(제3박:기차)를 탄다.
 넷째 날은 상하이에서 귀국행 비행기를 탄다.


실행에 옮겼다. 진짜로 내게 허락된 시간은 얄짤없는 4일이다. 다음날은 세상없어도 출근해야 했다.


황산 가는 날, 새벽에 집을 나서 공항 리무진을 타려고 배낭 하나 메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흘낏 보더니 "산에 가시나 보죠?"라고 물었다. "아, 예." "어느 산에 가세요?" "황산요." 기사가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며 되물었다. "예? 중국 황산요? 혼자서요?" "아, 예" "아니, 여행사에서 같이 가는 게 아니고요?" "예 저 혼자 갑니다." 중년 아줌마 혼자서 중국 황산을 가기를 동네 뒷산 가듯 대답하니 놀랄 만도 했다. 이렇게 새벽부터 택시기사를 놀라게 하고는 나 홀로 황산행에 올랐다.                                                                                                                                             

                          

여행은 곧 '탈것들과의 한판 승부'다. 내가 집을 떠나 황산을 가려면, 총 6개의 교통수단을 갈아타야 한다.

(1) 집에서 공항리무진 타는 버스터미널까지 '택시'-(2) 우리 도시에서 인천공항까지 '공항리무진'-(3) 인천공항에서 상하이까지 '비행기'-(4) 상하이 푸동공항에서 상하이 기차역까지 '지하철'-(5) 상하이 기차역에서 황산역까지 '기차'-(6) 황산역에서 황산 대문까지 '승합차'


이 여섯 번의 미션이 아무 일 없이 착착 맞아떨어졌을까? "그럴 리가요. 그러면 거긴 중국이 아니지요."

여기에서 5번째 미션, '상하이역에서 황산역까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기차표를 준비하면서 보니, 상하이에서 황산까지 가는 기차는 무려 15시간이 걸렸다(17:49 상하이 출발, 09:07 황산 도착). 5시간이면 전 국토 어디나 다 갈 수 있는 대한민국 출신인 나는 15시간을 기차에 갇혀있는 걸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하이에서 2시간 반짜리 기차를 타고 난징(남경 南京)에 갔다가 거기에서 7시간 걸려 황산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를 갈아타는 대신 소요 시간이 9시간 반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황산 도착 시간도 4시간이나 빨라져 일정에 여유가 더 생기게 되었다. "아! 나는 여행 천재인가 봐." 자화자찬하며 혼자 시시덕거릴 때가 좋았다.

 

 - 상하이에서 난징 가기: 기차(D5448) 19:08(루안쭈어 93원) 약 2시간 30분 소요
 - 난징에서 황산 가는 기차 갈아타기: 기차 22:10(잉워 아래칸, 102원) 약 7시간 소요(익일 05:07 도착 예정)  


밤 9시 조금 넘어 난징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은 북새통이었고 덥고 습하고 불쾌한 냄새로 가득했다. 1시간 후 황산행 기차를 타려고 하니 대합실이 술렁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다급히 왔다 갔다 하며 여기저기서 "퇴이피아오(退票)!"를 외쳤다. 이때만 해도 중국어 일자무식인 나는 '퇴이피아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뒤늦게 우왕좌왕하는 내게 누군가가 영어로 알려주었다. 폭우로 난징에서 황산 가는 기차가 폭우로 취소되었다고. 환불을 받으란다. 또 어찌어찌하여 그날 밤 황산행 01:15발 기차표를 새로 끊었고 황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중국의 4대 찜통*으로 악명 놓은 난징에서, 흔한 선풍기 하나 돌아가지 않는, 사람 많은 대합실에서 푹푹 찌는 '찜'을 당하며 4시간을 기다린 끝이었다.


(*중국의 4대 화로 또는 찜통도시 : 습도와 온도가 높은 4대 도시, 충칭(중경), 난창(남창), 난징(남경), 우한(무한). 치앙 지앙(장강) 유역에 있어 기본적으로 습도가 70%가 넘고 6월만 해도 기온이 35도까지 오른다.)


기차표 2장. 상하이에서 난징행, 난징에서 황산행  ⓒ위트립



나를 황산까지 데려다 줄 기차. 난징에서 탔지만 상하이에서 출발한 기차였다. ⓒ위트립

                                       

이렇게 황산 가는 길에 중국 여행에서 난생처음 침대 기차를 타게 되었다. 황산까지 가는 기차는 거리도 거리지만 중간중간에 정차를 많이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국의 기차 자리는 4종류로 나뉜다. 루안워, 잉워, 루안쭈어, 잉워의 4가지이다. 이건 무슨 암호? 풀이하면, 루안워(부드러운 침대, 연와(软卧)), 잉워(딱딱한 침대, 경와(硬卧)), 루안쭈어(부드러운 좌석, 연좌(软座)), 잉쭈어(딱딱한 좌석, 경좌(硬座)).


중국 기차는 여러 량의 열차 객실 중 몇 개가 침대석으로 된 침대칸이고 나머지는 모두 앉아 가는 자리이다.

루안워는 한 개의 캐빈에 4개의 침대가 있고, 잉워는 같은 크기의 캐빈에 양쪽 각 3층씩 6개의 침대가 매달려있다. 잉워의 경우 열차 한 객실에 9개의 캐빈이 있고, 캐빈당 6명이 잘 수 있으니 기차 한 객실에 총 54명을 수용할 수 있다. 사람 많은 중국에서 적은 공간에 최대한 사람을 채워 넣는 방법도 가히 대륙적이다.


루안워가 잉워보다 더 고급이고 더 비싸지만 더 빨리 팔린다. 당연히 루안워가 훨씬 쾌적하고 또 인간적이다. 잉워는 '그냥 누워 실려가는' 개념이다. 그렇다고 못 잘 정도는 아니다. 침구도 깨끗하고 충분히 잘만하다. 장시간 이동인 경우 루안워든 잉워든 침대석을 타면 숙박과 이동을 겸하기 때문에 그만큼 숙박비와 이동 시간이 세이브된다. 그래서 땅덩어리 넓은 중국 여행에서 침대 기차 이용은 필수다.                                          


                                                                                          

침대 기차 중 잉워 객실 모습. 침대 객실의 통로는 성인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수 있을만큼 좁다. ⓒ위트립


1개의 캐빈에 6명이 누워 자야 한다. 남녀 혼숙은 기본이다. 내 침대는 불행히도 3층에 당첨. ⓒ위트립


여기에서 중국 침대 기차 이용 팁을 몇개 전수하자면, 나는 여자 혼자 여행엔 루안워보다 잉워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루안워는 캐빈에 문이 달려있어 마치 4명이 한 개의 방에서 자는 것과 같다. 동행 여행자 없이, 여자 혼자, 매너 안 좋은 남자 또는 남자들과 맞침대에서 혹은 아래층 위층에 같이 누워 잔다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반면에 잉워는 문이 아예 없는 개방형이라 기차 승무원이나 승객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날 확률이 낮다.


* 참고 : 4인실 침대 기차인 루안워의 객실 안(왼쪽)과 통로(오른쪽) ⓒ위트립 


침대 기차는 아래칸이 상석이다. 아래칸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있지만 위칸은 앉는 게 불가능하다. 아무리 밤기차라 하더라도 15시간을 누워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초저녁이나 아침에는 맨 아래칸에 일렬로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거나 각자 시간을 보내며 간다.


그리고 중국 침대 기차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세계 유일(? 검증한 바는 없음)의 놀라운 서비스가 있다. 내릴 곳이 다가오면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승무원이 와서 깨워준다.


이것보다 더 맛있는 서비스가 있으니,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이 24시간 제공된다는 것. 애당초 뜨거운 차를 위한 서비스였겠지만 '기차에서 먹는 컵라면'을 빼놓고선 중국 기차여행을 말할 수가 없다.


3층 침대 거나 말거나 황산까지 태워준다니 고맙고 누워 자면서 갈 수 있다니 더더욱 고맙다. '난징역에서의 지옥 같은 4시간'은, 다음날 아침 기차가 황산역에 정차하는 순간 '나 홀로 기차 여행의 추억'으로 둔갑해 있었다.

                                                                                                                                                                                   



%% 자고 나면 밤사이에 고속철이 새로 깔리는 나라가 중국이다. 상하이에서 황산까지 15시간씩 걸려 갔다는 2010년 여행기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오늘 바이두 지도에서 찾아보니 상하이에서 황산까지 기차로 3시간이면 돌파한다. 도대체 중국의 교통 굴기는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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