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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20. 2021

여행은 그 나라의 향에 적응하는 거야

황산 여행에서 놀란 것 세 가지와 깨달음 하나

우여곡절 끝에 황산역에 도착하니 아침이다. 황산역 앞에서 일명 *빵차(面包车 [ miànbāochē ])를 타고 1시간쯤 가니 황산 입구였다. 나의 황산 여행 계획은 후산 코스로 올라가 관광 후 황산 정상에서 1박을 한 후 전산 코스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빵차(面包车 [ miànbāochē ]):미니버스, 봉고. 미엔빠오가 중국어로 빵이어서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 빵차로 불리는 듯. 그러고 보니 봉고차가 식빵처럼 생겼다.)


황산 입구에서 매표소를 찾아 길을 묻다가 20대쯤으로 보이는 중국인 남녀 커플을 만났다. 난징(南京, 남경)에서 왔다고 했다. 여자는 직장인이고 남자는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했다. 


매표하니 입장료가 230위엔(당시 환율 190원이었으니 한화 43,000원)이었다. 이거 실화? 상하이 엑스포 기간이라 50% 할인한단다. 50% 할인가도 속 떨리네. 눈치를 보니 중국애들도 나랑 같은 요금을 낸다. 비싸긴 하지만 외국인 차별은 아니니 덜 억울해해야 하나?


반액 할인받아도 2만 원이 넘는 입장료라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액 입장료의 세계이다. 중국 내국인 여행자들은 다 갑부들인가? 이후 중국 여행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지만 중국 관광지에서 돈 뜯기는 건 어마 무시한 비싼 입장료가 다가 아니었다. 중국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AAAAA급 혹은 그 이하의 관광지에서도 3단계로 돈을 뜯길 준비를 해야 한다. '(1) 입장료+(2) 매표소에서 관광지까지 걷기 애매한 거리까지 전동차 요금+(3) 케이블카 또는 엘리베이터 요금' (1)은 필수이고 (2)와 (3)은 옵션이다. 그러나 실제로 관광을 해보면 (2)와 (3)도 무조건 선택해야 관광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상술이 곳곳에 숨어있다. 자본주의 나라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다.


만약 할인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입장료는 390위엔이다(230위엔+왕복 케이블카 160위엔=390위엔(당시 환율로 한화 74,000원)). 단일 관광지인 황산 관광 비용이 7만 원이 넘다니 상상초월의 입장료가 황산에 와서 놀란 점 첫 번째였다. 이게 '인민을 위한 보편 복지'를 지향해야 할 사회주의 국가의 관광정책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비싼 입장료에 놀란 가슴을 쓸어안고 황산 관광을 나섰다. 황산에 오를수록 황산 절경에 놀라 감탄사를 쏟아냈다. 두 번째 놀라움이다. 점입가경이 이를 두고 한 말일까? 과연 황산은 산수화의 표본이었다. 깎아지른 화강암 암반이 세월에 풍화되어 갖가지 모양을 보여주었고 바위 틈새에 꽈리를 튼 소나무들이 고고함을 뽐내고 있었다. 화강암 바위와 소나무에 더해 황산의 절경을 완성하는 것이 있었으니 운무였다. 뭐든 한꺼번에 다 펼쳐 보여주는 것은 신비감이 없다. 내가 황산을 오르던 그날도 비가 오락가락 안개가 드리웠다 걷어졌다 하며 관광객의 애를 태웠고 덕분에 황산의 비경이 더 돋보였다. 


운무 속의 황산


원숭이가 바다를 내려다본다는 뜻의 봉우리, 후자 관해(좌), 덩샤오핑이 감탄해서 개발을 지시했다는 황산 명소 중 하이라이트 서해 대협곡의 보선교(우)



황산에서 세 번째로 놀란 것은 깎아지른 절벽에 만든 잔도(棧道, 바위에 구멍을 내어 지지대를 놓아 만든 길)와 돌계단이었다. 도저히 길을 낼 수 없을 것 같은 수직 낭떠러지에조차 바위를 뚫어 길을 만들어놓았다. 1979년 당시 76세였던 덩샤오핑이 다녀간 후 '아름다운 황산을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라'는 지시로 20여 년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걸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고 여기에 들어간 인민들의 노동이 놀랍다. 현대판 만리장성이다. 없는 게 없는 나라, 안 되는 게 없는 나라의 유네스코 등재급 조형물이다.


황산에 조성된 아찔한 절벽 잔도


황산을 오르다 보니 매표소에서 만난 중국 20대 커플이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속 마주쳤다. 알고 보니 숙소도 같은 곳 서해 반점이었다. 인연이 되어 황산 관광 내내 1박 2일을 동행하게 되었다. 중국어 능통 가이드를 둘이나 거저 얻었다. 깃발부대를 만나면 가는 길을 물어 내게 다시 안내해주었다. 나는 쉬다가 그 친구들이 "조우바(走吧, 갑시다)"하면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올라가면서 넘어져 다친 무릎 때문에 황산에서 고생을 좀 했다. 중국 친구들이 자기들 지팡이도 빌려주고, 많이 쉬면서 기다려줘서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신세 진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매고 온 가방에는 먹을 것이 끝도 없이 나왔다. 빵과 과자, 설탕에 절인 말린 과일, 육포...  나는 간식을 제대로 준비해 가지 못했는데 사 먹을 곳도 마땅찮았다. 그 바람에 1박 2일을 줄곧 얻어먹고 다녔다. 그들이 건네준 간식은 다 맛있었다. 딱 하나만 빼고. 간식용 소시지는 특유의 향 때문에 한입 베어 물자 말자 거부감이 들었다.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얼른 봉해서 내 배낭에 넣었다.


황산에서 내려와 그들에게 저녁식사라도 대접하려고 하니 한사코 거부했다. 고맙다는 인사만 연거푸하고 황산역으로 가서 상하이행 침대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음날 아침 열차칸에서 아침을 먹으려다가 내 배낭에서 먹다만 소시지를 발견했다. 애초에 버리려던 거였다. 그래도 음식인데 버리려니 찜찜해서 조심스레 한입 먹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 소시지가 맛있는 거다. 중국 특유의 향 때문에 역해서 한입 베어 물다가 도로 싸 넣었던, 먹다만 그 소시지가 말이다. "그새 내가 중국의 향에 적응을 했구나." "그래, 여행은 그 나라의 향에 적응하는 거야."




< 황산 여행 정보(2010. 6월) >

(1) 황산 산행 개요:1박 2일, 후산 코스로 올라가 전산 코스로 하산, 황산 정상 숙박

(2) 제1일 차:후산 코스(북해 풍경구) 

  1) 1차 산행:황산역(09:40)-(봉고, 1시간)-황산 대문-(셔틀버스, 20분)-운곡사-(케이블카, 15분)-백아령(12:00)-시신봉-청량대-사자봉-서해 반점(14:00)

*황산역이 있는 곳은 황산시의 둔계(屯溪[túnxī]툰시), 황산은 둔계에서 1시간 거리인 탕구(汤口[tāngkŏu]탕코우)에 위치함.

   2) 2차 산행(숙소에서 중식 및 휴식 후):서해 반점(16:00)-배운루 빈관-비래석-광명정-서해 반점(19:00)

(2) 제2일 차:서해 대협곡 및 전산 코스(옥병 풍경구) 

  1) 1차 산행:단 하봉에서 일출 조망(04:30 숙소에서 출발)

  2) 2차 산행:서해 반점(07:45)-배 운정-서해 대협곡 북쪽 입구-서해 대협곡 남쪽 입구(보선가요, 11:30)-천해-일선천-연화봉-옥병루(영객송, 15:00)-(케이블카, 10분)-자광각-(버스, 20분)-황산 대문-(봉고, 1시간)-황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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