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기차 타고 국경을 넘어본 건 처음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기차로 4시간을 좀 더 가니 체코 프라하다. 마치 나라 안 도시를 오가듯 나라를 넘나들다니 신기하다. 기차역에서 나오는 순간 오렌지색 지붕과 성당 첨탑으로 덮인 프라하 시가지에 눈이 부셨다. 이 풍경 실화? 내가 요정이 사는 도시에 들어온 건 아닐까?
프라하 중앙역 뒤편에서 바라본 프라하 도심 전경
프라하에서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블타바(Vltava) 강(몰다우강)을 따라 걸어보고 싶었다. 스메타나가 음악으로 묘사해 강 이름만으로도 너무도 유명해진 블타바강이다. 강변을 걷다가 도중에 시위대를 만났다. 요정들도 시위를 하나? 시위대원들이 나눠주는 선전지에는 '정년 연장 반대와 연금 개혁'이 적혀있었다. 걱정 없는 집 없고 고민 없는 나라 없다.
블타바 강변을 걷다가 만난 프라하 시위대
프라하 요정들은 뭘 먹고살까? 일주일쯤 프라하에 머물렀다. 체코 전통 음식을 내는 식당마다 공통적으로 일 순위로 추천하는 음식이 있었는데 꼴레노(Koleno)였다. 추천하는 모습에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읽혔다.
음식을 받고 보니 독일의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와 쏙 빼닮았다. 돼지다리의 정강이 부분을 삶아 오븐에 구워내는 요리로 재료나 조리방법, 심지어 가운데를 나이프로 찔러 내오는 담김새도 비슷했다. 새콤한 양배추절임과 각종 피클, 가늘게 채 썬 호스래디시(horseradish)가 같이 나왔다. 처음 먹어본 호스래디시는 서양의 고추냉이라고 한다는데 우리나라 매운 무 맛이었다.
꼴레노 요리, 우리나라 족발 요리를 연상하게 한다.
체코는 독일을 포함한 여러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음식도 어디가 원조인지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만큼 이웃나라와 뒤섞이는 것 같았다. 헝가리 전통 요리로 알려진 굴라시(Goulash)도 체코에서 여러 번 맛보았다. 우리나라 찌개에 가까운 국물 요리 스튜로 알고 있었는데 프라하에서는 접시에 잘박하게 국물을 돌려 내는 갈비찜스타일로 나왔다.
체코식 굴라시
프라하에서는 체코식 등심 요리인 스비치코바(Svickova)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실 어떤 음식인지도 모르고 '체코 전통 비프(Beef) 요리'라는 이름만 보고 시킨 것이었는데 익숙한 재료인 쇠고기 등심이 상상하지도 못할 비주얼로 나왔다. 소스의 바다에 고기가 섬처럼 떠 있었고 빵 몇 개가 같이 곁들여졌다.
체코식 전통 쇠고기 요리 스비치코바
스비치코바. 생크림 아래에 달콤한 블루베리잼이 숨어있다.
스비치코바의 핵심은 나이프만 닿아도 부서질 정도로 연하게 조리된 등심에 소스, 생크림과 블루베리잼을 얹어 먹는 것이다. 뭔가 낯선 조합이지만 서로 어울린다. 한마디로 촉촉한 스테이크라고나 할까. 함께 먹는 빵은 전형적 서양 빵이 아닌 '크네들리키(Knedliky)'라는 빵이었다. 발효된 반죽을 오븐에 굽지 않고 끓는 물에 데쳐 만드는 체코 전통빵이라고 한다. 발효 반죽을 수증기 올린 찜통에 쪄서 만드는 우리 찐빵과 비슷한 조리법이다. 비주얼은 물론 쫀득하면서도 폭신한 식감 또한 찐빵과 닮았다.
마지막으로 프라하 거리에서 안 마주칠 수 없는 주전부리 하나를 소개하자면 한국인에게 일명 '굴뚝빵'으로 알려진 '뜨르델닉(Trdelnik)'이다. 기다란 나무봉 뜨르들로(Trdlo)에 반죽을 돌돌 말아 구워내는 빵으로 크로와상의 식감과 추로스의 계피향이 어우러진 맛으로 구워내는 과정도 볼거리다.
프라하의 대표적 길거리 음식, 뜨르델릭
뜨르델릭은 기다란 봉에 반죽을 돌돌 말아 돌려가며 굽는다.
독일에 있다가 프라하에 오니 숙박비며 외식비가 독일의 절반이고 체감 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래서 다들 '프라하, 프라하'하는구나.
여행지에서는 고생하고 돈 쓴 것에 비해 구경거리가 별로였어도 '입에 맞는 음식 한 그릇'이면 다 용서된다. 예쁜 볼거리와 맛있는 먹거리로 여행자를 대접하는 프라하는 진짜 착한 요정들이 사는 곳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