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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Apr 22. 2023

베를린을 빠져나가기 전, 단 하나의 음식을 고르라면

세계여행 식탁일기(3)

독일 철도국에서 파업을 한다고 메일이 왔다. 파업 시작일이 하필 내가 베를린에서 드레스덴 가는 기차 타는 날이다. 철도와 전철, 버스가 전국적으로 파업을 하고 공항도 지장이 있을 거라고 한다. 온 나라가 일제히 멈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가늠이 되지 않는다. 파업이 하룻만에 끝나지 않으 그날 드레스덴물론 다음날 프라하 가는 기차도 문제가 생긴다. 프라하에 가야 더블린으로 넘어가는 항공편에 지장이 없다. 일정이 물고 물려있다.


잘못하다가는 베를린에서 발이 묶일 수도 있다. 드레스덴은 포기하고 프라하로 곧장 가되, 파업 하루 전날 아예 베를린을 빠져나가기로 했. 베를린역에 다. 폰의 앱 기차표를 보여주니 직원이 종이 티켓 출력 '스트라이크(STREIK 독일어로 '파업')'라고 사유를 적고 도장을 찍어줬다. 기차 편은 해결되었다. 대신 베를린드레스덴의 호텔비를 날고 프라하에서 이틀 치 숙박을 새로 구해 다.


베를린 기차역. 역사 안으로 전철이 다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역무원이 수기로 작성하고 스탬프를 찍어준 기차표. 'STREIK(독일어로 파업을 뜻함)'가 선명하다.


이제 베를린이 내게 허락한 날은 단 하루. 단 한 끼의 식사만이 남았다. 뭘 먹어야 할까? 베를린은 영국군이 전해줬다는 노란 카레 가루를 소시지 위에 뿌려 먹는 커리부어스트(Currywurst)가 유명하다. 우리나라 떡볶이처럼 길거리에서 흔히 팔고 맥주 안주로고 빵에 끼워 간식으로 다.


그런데 베를린 원조 먹거리 카레부어스트를 능가하는 길거리 음식이 있다고 한다. 인기 정도가 아니라 베를리너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니 금하다. 되네르케밥(Doner Kebab, Döner kebab)이다. 파업 때문에 하루 일찍 베를린을 뜨게 된 이 마당에 베를린은 나한테 맛있는 케밥 하나 하지 않을까?


유명하다는 케밥집은 앉을자리도 없는 노점이었다. 평소 웨이팅이라면 질색을 하는데 타국에서 일부러 찾아 게 억울해서 줄 섰다. 한국 기준으로 30분면 쳐낼 것 같은 손님처럼 줄이 줄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 앞보다 내 뒤에 늘어선 줄이 더 길다. 이젠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심리가 지루한 웨이팅을 가능하게 하나 보다.

                                                                           

케밥 한 개를 위해 기다리는 다국적 사람들


꼬박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케밥 하나를 받아 들었다. 한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야전의 전리품이다. 이걸 들고 어딜 갈 수도 없고 길거리에서 그냥 먹어야 했다. 케밥집 앞은 케밥 기다리는 줄케밥을 들고 먹는 줄이 병렬이 되었. 이 자체가 베를린 명물 볼거리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받아 든 "오 마이 케밥!"


케밥은 명성답게 맛도 좋고 양도 푸짐했다. 가격이 7.1유로니 우리 돈 만원이다. 물가 비싼 독일에서 사랑받을 만하다. 간편하고 빠르다. 싸고 맛있다. 길거리 음식의 덕목을 다 갖추었다.

 

케밥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양념한 닭고기를 원통형으로 쌓은 회전기구(로티세리 Rotisseri) 가 천천히 돌면서 고기를 익힌다. 바싹하게 익은 바깥쪽 고기를 칼로 잘게 저며 두툼한 빵 사이에 넣는다. 그런 다음 기름에 튀긴 감자, 호박, 가지와 생야채 양파, 당근, 고수를 넣고 소스를 뿌린다. 마지막으로 올린 흰색의 리코타치즈가 신의 한 수였다. 상큼하고 촉촉뿐 아니라 색감을 극대화시켜 품위 있는 케밥완성되었다.


볼 때마다 신기한 케밥집의 회전고기판


이민자 많은 독일에서 최고의 이민자 비율을 자랑하는 나라가 튀르키예이고 그들의 식문화 역시 따라 들어와 독일 사회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독일 대도시마다 동네 케밥집이 코너만 돌면 존재하는 이유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갔던 케밥집은 시간대 불문하고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현지 무슬림들의 사랑방이었다. 독일에서 물보다 더 많이 마신다는 '흔한 맥주' 한 잔 없이 그렇게 유쾌할 수 있다니 그들의 문화가 놀라웠다. 그곳에서 맛본 아다나(Adana)케밥 때문이라도 케밥 원조국 튀르키예에 가보고 싶어졌다. 커민(cumin, 쯔란) 가루와 환상의 단짝이었던 양꼬치의 불맛은 잊을 수가 없다.


양고기로 만든 떡갈비 꼬치구이라고나 할까, 아다나(Adana)케밥


베를린을 여행한다면 튀르키예식 얇은 또띠야에 말은 케밥이 아닌 독일식 두툼한 빵과 소스로 독일 현지화를 거친 베를린케밥을 맛보기를 권한다.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된 우리나라 자장면처럼 말이다. 튀르키예인에게 척박한 타국살이를 살아내게 한 케밥 한 개는, 매 끼니마다 뭘 찾아 먹을지 서바이벌하는 여행자에게도 여행을 이어가게 하는 응원이 되어줄 것이다.




10개월의 일정으로 떠납니다. 유럽-미국-중미-남미 순으로. 생활여행자의 시선으로 여행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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