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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내 집은 어디인가

by 위트립

"런던에서, 작은 뜰에 녹색 쓰레기통 2개가 놓인 흰색 울타리 집에 살아요. 배터씨공원(Battersea Park) 옆 빅토리아풍 주택이죠. "



해외에서의 첫 관문은 공항 통과하기다. 라이언에어(Ryanair)를 타고 프라하에서 런던으로 넘어왔다. 우리가 내린 곳은 이름도 생소한 루턴(Luton)공항. 지도를 찾아 보니 숙소까지 무려 60km가 넘는 거리다. 당연히 항공을 예약할 때는 몰랐다. 그냥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클릭했을 뿐이고, 공항 위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숙소 가는 교통편을 찾아보니 '버스-교외선 기차-지하철'편으로 나왔다. 남의 나라 공항은 무조건 긴장된다. 어디에서 차표를 사야할 지 몰랐다. 유니폼 입은 사람이 공항버스를 타고 가라고 알려주고 표 구입도 도와줬다. 얼떨결에 공항버스를 탔지만 사전 시나리오랑 달라져서 여전히 긴장다. 1시간쯤 타고 가니 런던 시내. 무사히 전철을 갈아타고 숙소 근처까지 갔다.


에어비앤비 주소인 오벨스트리트(Orbel Street)까지 왔을 때는 밤 9시. 어두우니 더 위축된다. 그래도 이제 다 왔고 주인이 가르쳐준대로 열쇠함을 찾아 문을 열면 된다. 근데 이게 웬 낭패람? 오벨스트리트는 집이 한 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층짜리 단독주택이 20호는 넘게 있었다. 다 똑같이 생긴 집이다. 이 중에 어떤 게 나의 숙소란 말인가. "오 마이 홈!"


에어비앤비 숙박의 최대 단점은 예약 확정 전까지 집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대략 위치만로 예약하고 나면 주인이 주소를 알려온다. 내가 받은 주소에는 '오벨스트리트(Orbel Street)'란 거리명만 달랑있을 뿐이었다. 처음에 왜 번지 수가 없을까 의문이 들기는 했다. 구글에서 쳐보니 오벨스트리트를 떡하니 표시해주길래 여긴 번지가 따로 없나보다 했다.


한밤중에 부랴부랴 주인에게 메세지를 보내 호수를 물었지만 답이 없다. 집 주인은 스페인 여행가면서 빈 집을 에어비앤비로 내놓는다고 했다. 집과 관련된 유일한 단서는 주인이 보내온 열쇠함 위치 사진이다. 어떻게든 집을 찾아야 했다. 야밤에 런던 주택가를 서성이며 이집 저집 담장을 기웃거리는 상황이라니... 이러다 호텔방 신세를 져야하는 것 아닌가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주인이 보내온 열쇠함 위치를 알려주는 사진


다행히 집은 다 똑같이 생겼는데 울타리와 쓰레기통은 집집마다 달랐다. 사진에는 녹색 동그란 쓰레기통 뒤로 흰색 담장이 보였다. 거리 왼쪽 끝부터 차례대로 한 집씩 탐색했다. 하나씩 체크하다가 마침내 사진 속 쓰레기통을 찾았다. 장에 붙은 열쇠함이 보였다. 주인이 알려준 자물쇠 비번 4자리를 맞추자 '열려라 참깨'처럼 뚜껑이 열리고 열쇠가 내 손에 떨어졌다.


담장 안에 붙은 열쇠함. 번호 자물쇠를 돌리면 함이 열리고 열쇠가 나오는 구조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본 적이 없다. 호텔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에어비앤비는 숙소의 정확한 위치를 예약 시점에 알 수 없으니 숙소가 외지지나 않을지 주변에 밥 사먹을 곳이 있을 지 짐작해보기 어렵다. 대개는 체크인 때 주인에게 직접 열쇠를 받기 위해 만날 약속을 따로 정해야 해서 불편하다.


그런데 이번 한달반의 유럽 여행은 전부 에어비앤비 숙박이다. 호텔비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호텔은 1박에 기본 20만원인데 에어비앤비는 '방과 단독 욕실, 주방 사용' 조건으로 10만원 초반대에 구할 수 있었다. 물가 높은 유럽에서 아침과 저녁을 해먹을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여행 떠나온지 4주째. 한 달만에 여섯번째 이사다. 남의 집 살이 전문가가 다 되었다. 자연스럽게 집 주인과 교류도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펜바흐 숙소에서는 주인 내외와 맥주 한잔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눴고 체크아웃하는 날 주인 아저씨가 출근길에 전철역까지 태워다. 일주일간의 베를리너 체험은 다리가 아팠다. 5층 숙소를 예약했는데 가서보니 엘리베이터 없는 6층이었다. 독일 건물의 지상층이 0층이란 사실을 알지 못해 생긴 '귀여운 참사'였다.


프랑크푸르트 숙소 주인이 차려내온 맥주와 구운 소시지 한 상


한편 프라하에서는 천창이 있는 4층 꼭대기가 숙소였는데 여행 돌아다니기 싫을만큼 숙소가 맘에 들었다. 런가하면 더블린 숙소는 유배지라할 정도로 시외곽에 있었다. 덕분에 이층버스는 실컷 타고 다녔다.


방과 주방 겸 거실, 욕실, 샤워실로 이루어진 프라하 숙소, 천창이 멋졌음.


구구단_수정.jpg 런던 집 주방 식탁 위에 걸려있었던 구구단표. 12단까지 있네.


다음날 날 밝을 때 보니 런던 집 부근은 빅토리아풍 주택이 아담하게 늘어선 평화로운 동네였다. 시내도 멀지 않고 오버그라운드(Over Ground)로 불리는 지상철도 있다. 가까이에 공원도 있다. 주인없는 집에서 일주일짜리 집 주인으로 한번 살아볼까나. 누구 말대로,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니까.


런던의 숙소, 오벨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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