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한달반째 친구 둘이 파리로 와서 나와 합류했다. 이제부터 일행은 중년 아줌마 셋. 디종(Dijon)을 가기 위해 몽파르나스 기차역에 갔다.
기차에 올라타기 직전 친구 둘이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화장실 표식을 따라가 버렸다. "애들아 여기 기차역 화장실, 돈 내고 가야 해!" 요금은 1인당 1유로.화장실로 씩씩하게 향하는 친구들 등 뒤로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화장실은 기차 타고 가면 되는데...'
떼제베(TGV)로 1시간 반을 달려 디종에 도착했다.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몸이 자동으로 화장실을 향하는 나의 두 친구. 또 1유로씩화장실비를 냈다. 쓰린 속을 쓰다듬으며 또 혼잣말을 한다. '화장실은 기차 내리기 전에 가면 되는데...'
집 떠나면 고생이다. 매일 저녁마다 숙소 찾아 들어가는 것, 매 끼니 밥 사 먹는 것과 낯선 교통체계까지, 여행지에서는 매 순간순간이 미션의 연속이다. 유럽여행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과업이 추가되었다. '화장실 이용'이다.
독일 베를린의 작센하우젠수용소를 다녀오는 길에 시내 지하철에서 화장실 안내판을 보고 너무 반가워 따라갔더니 유료화장실이었다. '뭐? 지하철 화장실에 돈을 내라고?' '차라리 볼 일을 안 보고 말지(결국 숙소까지 꾹 참고 옴).' 지하철엔 아예 화장실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기차역 화장실도 거의 유료였다. 사정은 런던도 더블린도 프라하도 파리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 한 번 쓸 때마다 생돈 1유로(한화 약 1,500원)씩 뜯겼다. 프랑크푸르트의 백화점에서는 0.5유로짜리 화장실도 있었다.
독일 베를린 지하철 화장실 표시에 속지 말자.
동전도 카드도 다 됨. 베를린 지하철 내 유료화장실
반값화장실도 달갑지 않다. 난 공짜화장실이 빵빵한 나라에서 왔으니까. 지하철이나 백화점, 동네 공원, 공영주차장... 사람이 모일만한 곳이면 홍반장처럼 든든하게 나타나주는 공공화장실, 무료인 데다가 깨끗하기까지! 유럽에 비하면 한국은 '화장실 천국'이다.
사실 돈도 돈이지만 그들의 '유료 화장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보다 복지가 앞서 있다는 선진국들 아닌가. 화장실은 복지이기 이전에 기본권이다. 무료 공공 화장실이 마약과 범죄의 온상이고 노숙자들로 인해 관리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기차역 화장실에서는 왜 1유로를 내야 하는지에 대해 '안전, 편안함, 청결'의 비용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정한 화장실 표시를 따라 가면 만나는 화장실비 징수기(왼) & 화장실 요금 1유로 영수증(오)
유럽인들에게 화장실은 돈 주고 사야 하는 서비스요, 하나의 상품이다. 1유로면 파리에서 한 끼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 팔뚝 바게트 1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보니 일부 현지인들은 지하철 후미진 곳, 가로수변이나 건물 뒤에서 노상방뇨를 한다. 파리 지하철은 물론 시내 곳곳에서 악취가 났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 세계 제일의 관광도시 파리의 민낯이 당황스러웠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니 유럽에서는 유료화장실 논리를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화장실 갈 때마다 돈을 쓸 순 없다. 나같이 화장실비가 아까운 후배 여행자를 위해 그동안 터득한 화장실 이용법을 풀어보고자 한다.
[유럽 여행할 때 화장실 이용 요령]
* 숙소에서 나가기 직전 반드시 화장실을 이용한다.
*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 때 화장실을 이용한다.
* 식당에서는 식사 후 반드시 화장실을 다녀온다.
* 대학 구내나 대학 도서관, 법원 등 공공시설에는 무료화장실이 있다.
*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카페를 이용한다. 2유로 정도면 커피도 마시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다.
필요는 앱(APP)을 낳는다. 무료화장실을 찾아 주는 앱(Where is Public Toilet)을 폰에 깔고 동선에 맞는 공공화장실을 찾아가는 신박한 방법도 있다.
무료화장실을 찾아주는 앱(Where is Public Toilet)을 파리 에펠탑 근처에서 구동시켰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심해야 할 화장실 이용의 대원칙은 '화장실은 가고 싶을 때 가는 곳이 아니라, 화장실이 있을 때 가는 곳'이란 사실이다. 여행 동선을 짤 때 화장실 사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몸의 자율신경계가 내 맘대로 조절이 될까? 만약을 위해 1유로 동전을 주머니에 휴대하는 게 좋겠다. 동전 대신 비접촉 신용카드로 터치하고 들어가도 된다. 유럽 화장실 TMI를 더 보태자면,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지 않고 남녀가 한 줄로 섰다가 한 화장실을 순서대로 이용한 경우도 꽤 있었다.
주한 외국 대사 부인들이 자국으로 돌아갈 때 갖고 가고 싶은 것 1위로 한국의 의료보험카드를 꼽았다고 한다. 유럽여행 갈 때 내가 한국에서 갖고 가고 싶은 것 1위는 공공화장실이다.
내년에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한다. 그때까지 공공화장실을 더 확충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나 고급 주택단지일수록 공공화장실 설치에 대해 반대가 심하다고 한다. 장소 확보와 시설도 문제지만 공공화장실을 혐오시설로 취급하는 근본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유럽의 화장실 문제는 당분간 답이 없을 것 같다. 유럽을 간다면 무료화장실 찾기 앱은 무조건 깔고 가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