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스타? 말로만 들었다. 별을 원, 투, 쓰리 3단계로 나누어 식당에 붙여 준다나? 프랑스 타이어 회사인 '미슐랭(Michelin) 타이어'가 타이어 구매 고객에게 나눠주던 자동차 여행 책자의 식당 소개란이 발전해서 오늘날 미식가의 식당 등급인 미슐랭 가이드가 생겨났다고 한다.
미슐랭 가이드 ★ 요리가 훌륭한 곳 ★★ 요리가 훌륭한 곳, 목적지와 다소 떨어져 있더라도 길을 돌아서라도 갈만한 가치가 있는 식당 ★★★ 요리가 매우 훌륭한 곳, 음식 맛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
평생 살면서 미슐랭 별 단 식당을 몇 번이나 가 볼 기회가 있을까? 평소 미슐랭 별 타령은 나와는 별(別) 세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미슐랭에서 별 등급 외에 '빕 구르망(Bib Gourmand)'을 별도로 선정한다고 한다. 빕 구르망은 35유로 이하(서울은 45,000원 이하)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괜찮은 요리의 식당에 부여된다. '2023년 서울의 빕 구르망'으로 57군데 식당이 추천되었다고 한다.
부르고뉴 지역의 중심 도시이자 와인의 관문 도시, 디종
해외여행 중에 빕 구르망 식당을 우연히 만났다면? 프랑스의 디종(Dijon) 시내를 걷다가 빕구르망 로고를 발견했다. 끼니때마다 뭐 먹을지 어느 식당으로 가야 할지 '무한 선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여행자가 더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미슐랭의 본고장에서 미슐랭이 추천하는 퓨전 프랑스 요리라니... 더 놀라운 건 가격이었다. 웬만한 파리 식당의 메인 요리 하나 값인 22유로에 '앙트레(전채 요리)와 플라(Plate : 메인 요리)와 디저트'까지 제공한다고 적혀 있었다.
미슐랭 빕 구르망 로고가 붙은 식당
제시된 메뉴 중에서 앙트레, 플라, 디저트로 뭘 먹을지 고르고 나니 한참만에 식사가 나왔다. 작은 식당의 몇 개 안 되는테이블이 손님들로 꽉 찼고 주방도 웨이터도 분주했다.
사실 앙트레 '잠봉 파슬리(Jambon Persile)'는 어떤 음식인 줄도 모르고 메뉴 옆의 샐러드란 글자만 보고 시킨 것이었다. 음식이 나오고 보니 돼지고기 햄의 변형 요리였다. 플라도 돼지고기를 시켰으니 주문 에러다. 굳이 위안을 하자면 잠봉 파슬리는 차가운 요리요, 메인 요리는 뜨거운 요리라는 점이었다.
내가 주문한 앙트레 잠봉 파슬리(Jambon Persile)와 메인 메뉴 돼지고기 요리
잠봉 파슬리는 햄과 파슬리를 젤라틴으로 굳혀 차갑게 내는 요리였는데 한식의 돼지머리 편육이 연상되었다. 주 재료도 햄이니 편육과 맛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특색 음식이라고 한다. 와인 산지 부르고뉴는 대표 요리도 많다. 프랑스 음식점이면 거의 다 있는, 뵈프 부르고뉴(부르고뉴식 쇠고기 요리)와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가 그 예이다.
와인도 한 잔 주문했겠다 포르마주(Fromage : 치즈) 작은 접시를 따로 시켰더니 치즈 세 조각이 디저트에 앞서 나왔다. 프랑스 사람들은 치즈를 어찌나 즐기는지 채 썰어 야채샐러드에 뿌려 먹거나 덩어리째 넣어 먹고, 앙트레나 메인 요리에 부재료로도 쓴다. 식사 후에는 아예 치즈만 종류대로 한 접시 받아 와인에 곁들여 먹는데 이걸 '포르마주'라고 하고 식사 코스의 하나로 포함된다.
1인분으로 나온 포르마주(왼) & 디저트(오)
친구가 앙트레로 주문했던 오늘의 생선 요리(대구 튀김)(왼)와 메인 메뉴 리소토(오)
역시 미슐랭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동네 밥집에서 내는 요리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음식 하나하나가 고급스러웠고 맛도 멋도 과하지 않았다. 파리와 부르고뉴 지역을 여행한 삼 주를 통틀어 가성비 최고의 식사였다. "그래, 이 맛에 여행하지!"
디종의 특산품 머스터드
디종은 프랑스 중산층 사람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일 뿐 아니라 부르고뉴의 중심 도시답게 미식의 도시라고 한다. 머스터드소스가 특산품이며 머스터드를 이용한 요리도 다양하다.
디종이 맛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맛의 도시라면 디종에서는 동네 식당 어디에 가든 기본 이상의 맛은 하지 않을까. 디종 시내를 걷다가 빕 구르망 식당이 내 발 끝에 차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