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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내 옆 방에는 산타가 잤나?

by 위트립

샌프란시스코 숙소는 바다가 가까운 주택 단지의 1층이었다. 방이 2개 있었고 좁은 주방을 두 팀의 게스트가 공유하는 작은 집이었다. A룸은 현관 옆에 붙은 욕실을 쓴다. 우리가 묵는 B룸은 전용 욕실이 딸린 더블침대가 2개 놓인 큰 방이었다.


샌프란시스코주택가_수정.jpg 샌프란시스코 숙소 근처 주택가


첫 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주방으로 나갔더니 주방 테이블에 어제 못 본 식료품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엔 메모가 있었다.


"Dear visitors of B room~

I left to airport this morning and had some extra some food stuff.

Please help yourself with the prawns or take with you any items on the table. ~~~"


옆 방 숙박객이 공항으로 가면서 음식과 함께 남기고 간 쪽지였고 생새우 한 팩과 즉석 오트밀, 레몬, 맥주, 샐러드 소스와 일본간장이 놓여 있었다.


푸드기부_옆방여행자_수정.jpg 옆 방 숙박객이 남겨주고 간 음식과 메모


간밤에 옆 방에 산타가 자고 갔나 보다. 머리맡에 음식 선물 한 꾸러미를 놓고 갔다. 어제 마트에 갔다가 생새우가 다 팔리고 냉동 새우밖에 없어서 못 사고 그냥 왔는데 내 맘을 어떻게 알았을까?




샌프란시스코 숙소는 욕실이 딸린 방 하나에 주방을 같이 쓰는 구조는 라스베이거스 숙소와 같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집 컨디션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라스베이거스가 은 거실과 주방과 뜰을 갖춘 고급 저택이라면 샌프란시스코는 다세대 주택의 작은 투룸이었다.


숙소_라스베가스거실_수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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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숙소(왼) & 샌프란시스코 숙소(오)


집이 좁은 건 그렇다 치고 체크인했을 때 청소가 안 되어있어 황당했다. 방과 욕실은 괜찮았지만 주방이 엉망이었다. 싱크대가 지저분했고 심지어 쓰레기도 가득이었다. 이렇게 관리가 안된 집에 숙박객을 받다니 에어비앤비 십여 곳 만에 최악의 숙소였다. 4일을 지내야 하는데 난감했다.


하루만 자고 남은 3일을 다른 곳으로 옮길까 생각해 보았지만 번거롭기도 하고 손해도 크다. 대신 주방을 청소하기로 했다. 주방세제가 없어서 마트에서 사 왔다. 남편과 함께 싱크대 개수구를 청소했고 식기를 전부 새로 씻었다. 냉장고 안의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음식물도 다 버렸다. 치우고 나니 그제야 뭘 해 먹을 수 있는 주방이 되었다.


"이 정도면 우린 최고의 게스트 아냐? 집이 손님 잘 만난 줄 알아!"




옆 방 숙박객은 전날 해질 무렵 들어와서 잠시 눈인사만 나눈 중년 백인 남자였다. 국적도 모르고 하룻밤 머문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초면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 더 이야기 못해봤고 아침에는 인기척이 안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방으로 나갔더니 만나지 못했다.


옆 방 게스트의 음식 기부는 형편없는 숙소 때문에 우울했던 기분을 일순간에 씻어주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주방에 앉아 기부받은 에일 맥주를 마시니 홉향이 유난히 진하고 청량했다.


사실, 옆 방 손님이 남겨준 선물은 하나 더 있었다. 자신이 자고 간 A룸에 이후 3일간 손님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 덕분에 우리가 머무는 내내 그 집을 독채로 지낼 수 있었다. 진짜 산타가 아니고서야 어찌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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