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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버스에서는 노란 줄을 당기세요

by 위트립

샌프란시스코 숙소 앞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주택가 도로변 모퉁이에서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한참을 같은 곳에 서 있길래 누굴 기다리나 했는데 버스 한 대가 오더니 그 여자 앞에 섰고 그녀는 그 버스를 탔다. 버스정류장도 아닌 곳에 버스가 서나?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대중교통이 가장 잘 되어있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시내 관광을 나서려고 모바일 교통앱 뮤니(MUNI)를 깔고 티켓을 구입했다. 버스나 전철 1회권이 3달러인데 하루 무제한 교통권이 5달러다. 현지인들은 우리나라처럼 버스에 타면서 교통카드를 찍고 1일권을 가진 여행자는 앞문으로 타면서 기사에게 폰의 티켓 화면을 보여주면 된다.


롬바드(Lombard) 거리에서 알라모(Alamo) 광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을 찾았다.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 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정류장이 보이지 않았다. 근처를 이리저리 돌다가 한참만에 찾았다. 전봇대에 적힌 버스 번호를. 전봇대에 숫자가 있고 도로 바닥에 버스 스탑이라고 적혀 있었다. 달랑 전봇대 하나가 버스 정류장이라고???


전봇대버스정류장_시내_수정.jpg
버스스탑_도로바닥_수정.jpg
전봇대의 숫자가 버스 번호(7, 33, 37, 43번 버스가 서는 곳)(왼) & 도로 바닥의 버스 서는 곳 표시(오)


버스스탑_18번_앞_수정.jpg
전봇대정류장3_수정.jpg
샌프란시스코 주택가의 버스 정류장


모든 버스정류장이 이런 건 아니었다. 번듯한 정류장도 제법 있었다. 도심이나 혹은 한산한 주택가에 이런 전봇대가 정류장을 대신했다. 지나다니는 현지인도 없으니 물어볼 데도 없고 구글이 아니면 버스는 어떻게 타나.


버스정류장_정상적_수정.jpg 제대로 된 버스정류장도 있음.


샌프란시스코 버스는 배차 간격도 길고 지연도 잦았다. 아마도 개인 승용차나 우버가 주 교통수단이고 대중교통은 부차적인 수단이라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버스가 있는 게 어딘가 싶었고 버스를 타면 원하는 곳으로 잘도 데려다주었다.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여행하다 보니 가는 곳마다 대중교통 용법이 다르다.


베를린은 버스든 전철이든 트램이든 표를 찍지 않는다. 개찰구가 아예 없고 차 안에도 표를 찍는 기계가 없다. 타기 전 종이 티켓을 사거나 모바일로 구입해야 하고 차 안에서 표 검사를 하는 검표원을 만나면 표를 보여주면 된다.


파리와 런던, 더블린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전철은 개찰구에서, 버스와 트램은 차 안에서 리더기에 찍어야 한다. 특히 런던은 별도 표 구입 없이 우리나라에서 발급한 언택트 신용 카드로 찍고 타도 되니 편리했다.


석 달간 유럽 5개국과 미국을 여행하면서 나라별로 버스와 전철은 실컷 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세 가지다.


첫째, 런던과 더블린에서는 이층 버스가 재미있었다. 시내버스 타고 오가는 길 자체가 시티투어였다. 버스만 타면 이층으로 올라가 트인 시야로 도심을 구경하면서 다녔다.


둘째. 뉴욕의 지하철은 상상초월이었다. 파리와 런던, 베를린 등 다들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형편없었지만 뉴욕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어둡고 지저분하고 위험하기 조차한 지하철은 화려하고 세련된 뉴욕의 숨겨진 얼굴이었다. 심지어 뉴욕 지하철에서는 철로를 돌아다니는 쥐도 목격했다.


셋째. 샌프란시스코에서 전봇대 정류장은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나중에는 찾는 재미가 있었다. 그보다 더 신기했던 것은 버스 창문에 달린 노란 줄이었다. 용도가 뭘까 했는데 금세 답이 나왔다. 노란 줄을 살짝 당기면 '땡땡' 하며 청량한 벨 소리가 두 번 나면서 전광판에 '스탑 리퀘스트(STOP REQUEST)'란 글자가 뜨고 버스가 선다. 귀엽고도 아날로그스럽다.


버스노란줄_최종.jpg
스탑리퀘스트_수정.jpg
버스 차창에 매달린 노란줄(왼) & 스탑 리퀘스트(오)


나는 평소 버스야말로 도시의 혁명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람들이 밀집해 모여 살면서 도시가 만들어지고 도시는 진화했다. 그 진화의 결과물 중 하나가 도시의 일정한 코스를 정기적으로 순환하는 버스 시스템이다. 버스 개념은 지하철로 확장되었고 시민들의 이동권은 더욱 강화되었다.


마지막으로, 뭐든 남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한국사람답게, 비교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최근 3개월간 여행한 나라, 독일, 체코,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미국, 우리나라를 통틀어, 대중교통이 가장 잘 되어있는 나라는 어디일까?


교통망이 촘촘하고 시간과 안내가 정확하고 정류장 시설이 훌륭한 나라, 대중교통이 가장 혁명적인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다!


그래도 샌프란시스코 버스의 노란 줄은 부럽다. 낭만적이잖아.




※ 지하철 1회권 가격

베를린 3.4유로 = 한화 4,500원

런던 4.1파운드 = 한화 6,700원

파리 2.1유로 = 한화 3,000원

뉴욕 3.1달러 = 한화 4,000원


% 여행자들은 1일 무제한권이나 7일 무제한 이용권을 구입해서 사용하면 경제적이다.

더블린 7일권 Leap Card 32유로 = 한화 46,000원

런던 7일권 41.1파운드 = 한화 67,000원

파리 7일권 35유로 = 한화 4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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