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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에서 조심해야 할 것 두 가지

by 위트립

파리에서 교외 기차를 타고 샤르트르 성당에 다녀왔다. 숙소로 가는 지하철 13호선을 타기 위해 몽파르나스역에서 지하철 개찰구를 막 통과했을 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남녀 검표원 한 쌍이 다가와 지하철 표 검사를 했다.


우리가 누구인가. 준법정신 투철한 한국인 아니던가. 어찌 요금을 안 내고 지하철을 탄단 말인가. 두 사람은 티켓 검사를 통과했고 한 친구의 표가 문제가 되었다. 친구는 모바일앱으로 7일 무제한 사용권을 구입했는데 표 검사용 리더기 감지가 안되었다. 사실 지하철 탈 때도 인식이 안되어 역무원에게 구두로 허락받고 개찰구를 통과한 터였다.


검표원은 험악한 얼굴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무려 60유로란다. 지하철 요금 일회권 2.1유로(한화 3,000원)의 약 30배(한화 85,000원)다. 우리는 친구 폰의 앱에 표시된 나비고(Navigo 파리교통카드) 7일짜리 30유로 탑재권과 이메일 영수증을 보여주면서 항의했다. 지하철 탈 때 역무원한테 개찰구 인식이 안된다고 했더니 그냥 들여보내줬다는 말도 보탰다. 표 검사원은 '구입만 하고 유효화(Validation) 안 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라고 하면서 막무가내로 벌금을 요구했다.


사람 많은 곳에서 계속 실랑이를 할 수도 없어 일단 60유로를 물고 영수증을 받았다. 다음날 나비고 사무실에 가서 따져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하필 다음날 아침 일찍 디종(Dijon)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다. 결국 나비고 사무실에 갈 시간이 나지 않았고 60유로 벌금을 날렸다.


표 사고 벌금까지 냈으니 억울했다. 디지털 에러도 속상했고 처음에 인식 안 된다고 했을 때 해결책을 알려주지 않은 지하철 역무원도 원망스러웠다. 돈도 돈이지만 멀리 파리까지 와서 '무임승차자' 취급받은 모욕감은 쉽게 극복이 되지 않았다.


지하철 검표원은 표 끊은 영수증을 보여줘도 말이 안 통하니 그렇게 무섭다는 파리 소매치기보다 더했다. 내 손으로 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게 만들고 영수증까지 당당히 끊어주니.


2.1유로 파리 지하철 표 한 장에 60유로를 물다니 ㅠㅠ...


파리에 오기 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영상을 숱하게 봤다. 한 때는 에펠탑 직원들이 에펠탑 근처에서 활동하는 소매치기를 단속해 달라는 요구로 파업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파리에 오기 전, 다양한 피해 사례도 숙지했고 소매치기 예방 방법도 줄줄 외다시피 했다. '가방은 앞으로 메라, 지하철에 타면 문 입구에 서 있지 마라, 떼 지어 다니는 10대 소녀를 조심하라, 특히 그들의 설문조사에 응하지 마라, 등등. '


무시무시한 검표원에게 생으로 벌금을 뜯긴 며칠 후 파리 시내 콩코드광장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지하철을 막 타자마자 어떤 소녀가 지하철에 오르면서 '00 기차역에 가는 게 맞냐'라고 프랑스어로 물었다. 내가 한 번만에 못 알아듣자 반복해서 물었고 '나는 잘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 여자애의 발과 손이 지하철 문에 끼었다. 나는 놀라서 지하철 문 개폐 버튼을 급히 눌렀고 그 아이에게 '괜찮냐'라고 물었다.


그 아이는 괜찮다면서 '지금 몇 시냐'라고 이번엔 영어로 물어왔다. 내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알려주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마담!'이라고 하길래 돌아보았다. 어떤 프랑스 중년 여자가 나를 불렀고 자신의 양쪽 윗옷 주머니를 만지는 시늉을 했다. 아, 그제야 알았다. 그 여자아이가 내게 작업을 걸고 있다는 걸.


나는 그때까지 내내 지하철 문 입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뒤늦게 알아차린 내가 지하철 안쪽 자리로 옮겨가자 지하철 문 입구에 있던 그 소녀는 다음역에서 바로 내렸다. 내릴 때 보니 여자아이는 혼자가 아니었고 더 어린 여자아이 3명이 일제히 같이 내렸다. 순간 간담이 서늘했다. 그들은, 말로만 듣던, 파리에서 조직적으로, 아니 비즈니스급으로 소매치기한다는 '4인조 소녀 소매치기단'이었다.


나는 그들의 타깃이었고 아무 의심 없이 작전에 말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을 알려주려고 핸드폰을 올려 든 순간 그 아이들 중 하나가 재빠르게 낚아채 지하철에서 내려버리면 '게임 끝' 아닌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갑과 핸드폰이 이상 없는지 확인했다. 내게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무 손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소매치기들의 활동 무대, 파리 지하철의 주요역에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한국어 안내 방송도 나온다.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그들이 내게 건 수법은 '지하철에서 행선지를 물으며 접근하기, 시간 묻기 등으로 작전 시간 벌기, 지하철 문에 자신의 손과 발을 일부러 끼게 하는 자해 행동으로 상대방의 주의를 흩트리면서 작업 타이밍 노리기'였다.


막상 당하고 보니 소매치기도 검표원만큼이나 무서웠다. 아니 검표원보다 수법이 더 다양해서 더 무섭다. 검표원은 수법이 한 가지라 예방법이 정해져 있다. 어쨌든 파리 여행, 조심! 검표원도 소매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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