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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눈 뜨고 코 베였어요

by 위트립

유럽과 미국을 거쳐 세 번째 여행 카테고리 멕시코로 왔다. 매번 새로운 여행지에 갈 때면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 이번엔 걱정도 된다. 멕시코 돈도 유심도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 없다'라고 마음을 다잡지만 '내 앞에 펼쳐진 불확실한 상황' 앞에 신경이 곤두섰다. 사소한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가 금세 기분이 나빠지는, 일희일비(一喜一悲)가 반복되고 있다.

어젯밤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과달라하라로 넘어왔다. 런던에서 구입한 유심 카드가 미국에서도 잘 터져서 충전해서 썼다. 그러나 멕시코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먹통이 된다. 늦은 시각이라 대중교통도 없고 숙소까지 어떻게 가나 막막했다. 다행히 공항 와이파이로 디디(DiDi 차량공유서비스)를 불러 숙소까지 도착했다.


집 떠난 지 넉 달째, 새로운 나라로 건너가면 정착을 위한 세팅 작업이 루틴처럼 반복된다. 현금 준비, 유심 구입, 대중교통 파악. 여기에, 멕시코에서의 둘째날인 오늘은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과나후아토로 가는 버스를 예매해야 한다.


1) 대중교통 파악

숙소 주인에게 물어 시내버스 타는 법을 알아냈다. 교통카드 없이 현금 10페소(한화 750원)를 내고 타면 된다고 했다. 과달라하라에는 3일만 있을 거라 이 정도 정보면 충분하다. 좋은 일 하나!


2) 시외버스표 예매

이틀 후에 과나후아토로 떠날 예정이라 시외버스를 예매해야 한다. 한참 검색 끝에 예매 사이트를 찾았는데 결제에서 에러가 났다. 신용카드도 페이팔도 안된다. 표 한 장에 655페소(한화 49,000원), 온라인으로 사면 10%가 더 싸다는데 아무리 해도 안된다. 오전 반나절을 날리고 결국 터미널에 가서 구입하기로 했다.


38도를 오르내리는 공기를 뚫고 에어컨도 안 되는 버스를 타고 터미널 사포판(Zapopan)까지 갔다. 과나후아토 가는 버스가 서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당연히 버스 회사 박스 오피스도 없었다. 표를 못 사고 허탕을 쳤다. 더위를 먹었는지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다. 나쁜 일 하나!


3) 유심 구입

어젯밤 숙소 앞 편의점 옥소(OXXO)에서 산 유심은 데이터 신호는 뜨는데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예전 여행지에서 썼던 스페인 유심과 영국 유심 둘 다 폰에 끼우기만 하면 바로 됐는데 아무리 해봐도 안된다.


영수증을 보니 유심 값이 28페소. 4.5기가. 한국돈으로 2천 원이다. 아무리 멕시코 물가가 싸다고 해도 2천 원에 유심과 4.5G 데이터를 같이 줄 리가... 유심 카드 포장지의 안내글을 번역기로 돌려 보았다. 내가 산 유심은 최소 4.5G를 구입해야 되는 카드란다. 편의점에 가서 50페소만큼 데이터를 충전하니 그제야 인터넷이 작동한다. 인터넷은 천군만마다. 좋은 일 하나 추가다!


4) 현금 인출

시내에서 숙소로 걸어오다가 은행 로고를 보고 ATM기를 찾아 들어갔다. 공항에서 조금 바꾼 현금이 바닥이 났다. 최대 금액을 인출할 생각이었는데 얼마가 최대인지 못찾았다. 이리저리 해보다가 단위가 달러로 표시되길래 400달러를 입력했다. 미 달러로 생각하고 50만 원 정도가 멕시코 화폐로 나올 거라 예상하고 눌렀다.


돈이 나왔다. 400달러어치가 아니라 달랑 400페소(한화 3만원)가 나왔다. 멕시코 페소를 멕시코 달러로 부른다는 걸 몰랐다. 수수료는 무~려 174페소. 두 사람 한 끼 식사값이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난 고작 3만 원 인출하자고 수수료 13,000원을 문 호갱 중 호갱이 되어버렸다.


평소 한국에서도 수수료라면 질색을 하고 은행 수수료 300원도 아까워 돈을 이리저리 옮겨 처리하는 내가 태평양 건너 멕시코 땅에서 무지막지한 수수료를 뜯기다니!!! 나쁜 일 정도가 아니라 크게 한 방 먹었다!


BBVA_수정_자르기1280_편집.jpg 3만원인출에 수수료 13,000원??? 왜 단위는 헷갈리에 '멕시코페소(MXN)'이라고 안 쓰고 $로 쓰는지... 난 현금 인출을 한 게 아니라 현금 대출 서비스를 받은 것인가?




오늘 시내버스는 잘 이용하고 다녔고 유심도 잘 된다. 두 가지는 잘 풀렸다. 버스표는 출발 당일 터미널에서 사야 하니 불확실성 추가에 돈도 더 물어야 한다. 그래도 이건 시스템 문제니 억울하지는 않다. 말도 안 되는 현금인출 사건은 날 넉다운시켰다. 두 가지 실패다. 그래도 비겼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성공은 원래 당연한 거고 실패는 훨씬 확대되어 감정을 지배하는 법이다.


현금인출 수수료가 워낙 타격이 커서 멘탈 회복이 되지 않았다. 내 배낭 여행사(史)에 길이남을 흑역사 한 페이지다. "나 멕시코 좋아하는데... 멕시코에서 오래 여행할 건데... 멕시코가 나한테 왜 이래. ㅠㅠ"


더위에 몸도 녹초가 되었고 기분도 엉망이다. 배도 고프다. 나가서 타코나 사 먹어야겠다. '과거의 나쁜 기억은은 미래의 좋은 기억으로 덮어야 한다'라고 한다. 오늘의 두 번의 패배를 단번에 묻어버릴 수 있을 만큼 맛있는 타코를 찾을 수 있을까?




P.S. 두 번은 당하지 않으리!

다음날 멕시코 산탄데르(Santander) 은행에서 11,000페소(82만원) 뽑는데 수수료 34.8페소(2,600원)이 빠져나갔다. 이건 정상이다! 은행마다 이렇게 인출 수수료 차가 크다는 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Santander_수정_자르기1280_편집.jpg 산탄데르 은행의 ATM기 82만원 인출에 수수료 2,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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