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에서 멕시코 과달라하라를 경유해 멕시코 북부의 작은 도시, 과나후아토(Guanajuato)에 왔다.
집 떠난 지 석 달, 그동안 유럽(독일, 체코,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과 미국(뉴욕, 일리노이, 미네소타,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아리조나, 와이오밍)을 쉼 없이 내달린 우리에게 잠시 멈춤이 필요했다.
여행 후반전은 중남미 대륙이다. 전반전 3개월보다 두 배나 더 길고 난이도도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래서 찾은 곳이 멕시코의 과나후아토이고 한 달간 머물 예정이다.
노란색 햇빛 아래 빨래가 마르는 중
과나후아토는 산악도시이면서 옛 은광도시다. 개구리 등자락 같은 언덕에 빼곡히 매달린 집들이 알록달록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도시다. 그래서 도시 이름도 개구리 언덕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도시라기보다 산동네 마을에 가깝다. 디즈니랜드사의 영화 코코로 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알록달록한 집이 과나후아토의 랜드마크
옛 수로가 변신한 도로
한낮은 30도를 넘나들며 햇빛이 강하지만 아침저녁은 바람이 솔솔 불어와 시원하다. 어찌나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지 길 모퉁이 광장마다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도시의 어느 지점에서출발하든 걸어서 20분이면 도심 웬만한 곳에 다 닿을 수 있는 이 작은 도시에, 미국 사람들은 물론 나처럼 지구반대편 사람들까지 날아드는 이유는 뭘까?
개구리 언덕에 다닥다닥 붙은 집
과나후아토에 와보니 부산의 감천마을이나 통영의 동피랑이 떠올랐다. 차이점이라면 도시재생 마을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사는 현재진행형 마을이라는 점이다. 동네 어귀엔 어김없이 작은 광장과 분수가 있고 그 옆엔 빵집, 식료품점, 생필품 가게들이 붙어 있다.
숙소 근처 엠바하도라스(Embjadoras) 동네 풍경
산자락에 빼곡히 달린 집들은 제각각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채 개성을 뽐낸다. 해가 지고 집집마다 불이 켜지면 언덕은 별이 내려앉은 듯한 전경을 선물한다.
삐삘라(Pipila) 전망대에서
과나후아토의 야경
일 인분의 길
차는 교행할 수 없고 사람은 나란히 걸을 수 없다. 도시의 모든 길은 일 인분의 인도만을 허락한다. 도로는 딱 차 한 대만 지날 수 있다. 사람은 건물에 딱 붙은 한 뼘 보도(步道) 위를 한 줄로 걸어야 한다. 도로변 보행로가 이럴진대 언덕배기 골목길은 더 말해 무엇하랴.
과나후아토에선, 한 줄로 걸어요~
계단길, 언덕길을 수도없이 걷게 된다.
이곳은 평범한 색은 거부한다. 튀고 또 튀는 핫 칼러의 건물은 좁은 길과 잘 어울린다. 도로든 골목이든 카메라만 들이대면 다 작품이 된다.
이런 도시의 특성을 반영한 관광 상품도 있다. 길을 까예(Calle), 더 좁은 골목을을 까예혼(Callejon)이라고 하는데 까예혼을 따라가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마리아치(Mariachi)들의 골목 공연을 까예호네아다(Callejoneada)라고 한다. 관중들은 이들을 따라 골목을 걸으면서 공연을 즐긴다.
지하철은 없어도 지하버스는 있어요
과나후아토는 16세기 은광이 채굴되면서 만들어진 도시, 광부의 도시다. 지상에서 만나는 터널과 지하도, 지하 계단은 지하 세계로 연결된다.
과거 채굴된 은을 실어 나르기 위해 뚫었던 터널과 길이 이제는 차가 다니는 도로가 되었고 강의 물길이 복개되고 더해져 미로 같은 지하 도로망이 만들어졌다. 과나후아토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문자 그대로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를 넘나들게 된다.
지하철이 아닙니다, 지하버스 타려면 이곳으로 내겨간다.
지하버스 정류장에 버스(25~32인승)가 도착했다.
도시가 다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과나후아토 도착 첫날 숙소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골목길을 내려오던 아주머니 한 분이 어디를 찾느냐고 물었다. 주소를 보여주니 이 집 저 집 수소문하며 같이 찾아주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집주인의 이름을 말했더니 대번에 우리를 문 앞으로 데리고 가더니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누른다. 집주인에게 우리를 인계해 준 후에 가던 길을 가셨다.
숙소 근처 골목길
땡볕에, 가던 길 멈추고,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주다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이게 과나후아토의 정(情)인가? 내가 만난 현지인 1호분은 근처에 사신다고 했다. 한 달 살기 첫날, 우리 동네 지인이 생겼다. 내일은 스페인어 학원을 알아보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