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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Aug 18. 2021

차마고도 걷기, 호도협 트레킹

오늘은 나의 윈난 여행의 야심 찬 기대작, 호도협(虎跳峡[hǔtiàoxiá]후탸오샤) 트레킹을 가는 날이다.

      

호도협(후탸오샤) 위치 개념도


호도협은 하바쉐산(山합파설산, 5396m)과 위룽쉐산(옥룡설산 5596m) 사이에 진사강(金沙江[JīnshāJiāng])이 흐르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협곡을 따라 만들어진 좁은 길은 윈난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던 옛 교역로로서 차마고도()로 불리고 실크로드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한다.

     

호도협 트레킹은 하바쉐산 쪽으로 깎아 만든 차마고도의 일부 16km를 걷는 것이다. 호도협이란 이름은 사냥꾼에게 쫓기던 호랑이가 건너갔다는 데서 붙었다. 진사강에는 호랑이가 딛고 건넜다는 바위 호도석()까지 있으니 제법 그럴싸한 스토리 메이킹이다.


      

해발 5500m의 두 산 사이를 흐르는 진사강(金沙江) ⓒ위트립


호도협을 가기 위해 남편과 나는 리장(丽江[Lìjiāngshì])에서 챠오토우(桥头[qiáotóu])로 가는 첫차 7시반차를 탔다. 두 시간 만에 챠오 토우 터미널에서 내린 후 인근의 호도협 매표소에서 출발해 표지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 생에 이렇게 호사스러운 트레킹이 어디 있을까? 바라보고 있는 사람 누구든 착하게 만들어버릴 것 같은 윈난의 파란 하늘을 머리에 얹고 파스텔톤 옥색 물빛의 진사강을 발아래 두고 걸었다. 눈은 위룽쉐산의 은빛 봉우리들에 꽂은 채 걷는다.

   


계단식 논 아래 진사강이 흐른다 ⓒ위트립


위룽쉐산(옥룡설산)의 봉우리들 & 바라보는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운남의 하늘 ⓒ위트립


겨울 비수기라 그런지 호도협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 아슬아슬하게 낸 좁은 외길에서 몇 안 되는 여행자들끼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속 마주쳤다. 대만, 중국 구이린, 허난성에서 왔다는 나 홀로 여행자 셋과 나와 남편, 다섯 명이 서로 찍사와 모델 역할을 교대하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30대 후반쯤의 대만 청년은 중국 본토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했고 구이린과 허난성 청년들은 대학생이라고 했다. 셋이서 처음부터 일행인양 이야기하며 걷는 모습이 다정했다. 부러웠다. 체제와 나라는 달라도 같은 민족끼리 교류하는 모습이. 우리도 남북한끼리 서로 일하러도 오가고 여행도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은 험준한 산자락 한켠에 한 사람이 겨우 걸을수 있을만큼만 길을 허락해주었다. ⓒ위트립


차마고도를 걷는 주체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염소 떼들도 나타났다. 길은 하나뿐이니 염소들도 사람들의 템포에 맞춰 걷는다. 재밌는 건, 사람들이 사진 찍는다고 멈추면 지네들도 서서 기다리는 게 아닌가!

     

길은 공평하다. 사람에게나 염소에게나 ⓒ위트립


나시객잔(纳西客栈)에서 땀을 식히고 가장 힘들다는 코스, 28 밴드에 진입했다. 구비 구비 휘감아 오르는 28개의 고갯길은 ‘왕년에 뒷산 둘레길 좀 걸어본’ 우리 한국사람에겐 소문만큼 힘들지 않았다. 호도협 길 내내 반복하게 되는 동작이 있으니, "걷다가 서기-위를 보고 사진 찍기-걷다가 서기-아래를 보고 사진 찍기"이다. 28 밴드를 통과하는 두 시간 외엔 오르막이 없었다. 차마객잔(茶马客栈)을 다시 출발해 2시간 만에 중도객잔에 도착하니 해거름이었다. 호도협 입구에서 중도객잔(中途客栈)까지 총 7시간 반이 걸렸다.

     

중도객잔 ⓒ위트립



호도협 트레킹 도중 만났던 대만과 중국 청년들도 중도객잔에서 숙박객으로 다시 만났다. 중도객잔의 시설은 듣던 대로 매우 훌륭했다. 이 깊은 협곡에 호텔급 숙소라니. 심지어 이곳 도미토리 객실 화장실에서조차 위룽쉐산 봉우리들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중국인의 풍류 자만감을 감안하더라도 '세계 최고의 화장실 전망'이라할만했다.


중도객잔에서 바라본 위룽쉐산(옥룡설산). 진정 뷰맛집으로 인~정~


중도객잔에 오니 한국인 중년 남녀 단체 여행객 10여 명이 시끌벅적하게 식당을 접수해 있었다. 혜초여행사를 통해 왔다고 했다. 나와 남편 또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차로 티나객잔까지 와서 두 시간 걷고 이곳에 묵은 후 다음날 9시에 내려간다고 한다. 호도협은 맛보기 트레킹만 하는 것이었다.


우리 자유여행객 4팀 5명도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우리는 국적은 한국이지만 오늘만큼은 대만 청년과 중국 대학생들과 같은 정체성 소속이다. 한국 중년팀 10여 명은 식당을 통째로 전세 낸 듯 큰소리로 떠들어댔는데 몹시 불편했고 대만과 중국 여행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중도객잔 식당의 벽과 천장은 한국어로 도배되어 있었고 사방에 한국 ㅇㅇ산악회에서 다녀갔다는 리본과 깃발들이 매달려 있었다. 호도협이 한국인들이 이토록 많이 다녀가고 인증하는 여행지인 줄 처음 알았다.

    

식당에서 급조된 우리 자유여행팀은 각자 반찬 한 가지씩을 시 같이 나눠 먹었다. 허난성 대학생이 식사 내내 아무것도 안 먹고 있어 이유를 물어보니 무슬림이라고 했다. 돼지고기는 물론 돼지기름에 볶은 것 등 일체를 안 먹는다고 했다. 뒤늦게 삶은 달걀 3개가 그 학생의 식사로 나왔다. 무슬림과 같이 밥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종교는 곧 신념이고 곧 몸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구나. 그 청년의 다음날 아침 식사도 달랑 달걀 2개가 다였다.   

   

달걀 3개는 허난성 학생의 저녁 식사.


중도객잔에서 우리가 묵을 방은 *양변기 욕실까지 딸려 있었는데 모처럼 좋은 숙소에 묵는다고 좋아할 새도 없이 정전이라며 방마다 양초 하나씩을 줬다. 어둡고 전기장판도 안되고 춥다. 온수도 안된다. 정전이 자주 있는 일인지 숙소 측에서는 신경도 안 쓴다. 찻물용 온수를 식당에서 받아와 물주머니를 채워 끌어안고, 외투 껴입은 채로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잤다. 추웠지만 잠이 추위를 이겼는지 잘 잤다.(*중국 시골의 숙소는 양변기가 아닌 좌변기 욕실이 많이 있음.)

     

다음날은 전날 저녁을 같이 먹었던 여행자들 3명과 뜰에서 만나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하마터면 '엄마아빠+대학생 아들 둘+삼촌'의 중국인 한가족으로 보일 뻔한 우린, 호도협 길을 같이 걸은 몇 안 되는 길 동지에다가 한 끼 밥을 같이 나눈 먹동지 사이다. 하루 밤새 얼마나 친해졌는지 다음날 중도객잔을 떠나 폭포 구경도 하며 걸어가는 길이 내내 즐거웠다. 오전 11시경 우리 모두의 트레킹 최종 목적지인 티나객잔에 도착했다. 다같이 티나객잔에서 리장으로 곧장 가는 버스를 타고 리장으로 돌아왔다. 리장 터미널에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각자 제 갈길로 헤어졌다.


진사강은 중국대륙을 동서로 관통하는 장강(长江=양쯔강)의상류에 해당한다.ⓒ위트립


차마고도 트레킹, 길도 별로 안 위험했고 평지길이 대부분이라 난이도도 적당했다. 극비수기였는지 너무 호젓한 것이 흠이랄까. 그래서인지 호도협은 눈부신 설산과 천 길 낭떠러지 사이의 옥빛 물길도 좋았지만 트레킹에서 만난 여행 친구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 여행일 2013.1.8-9




[여행정보]

* 호도협 트레킹(1박2일 기준) 코스: 총 도보 시간 9시간(휴식 시간 포함)

* 1박2일 트레킹 일반적 코스: 매표소에서 티나객잔까지, 7월과 8월 우기는 피하는 것이 좋다.

* 리장(첫차7:30)-2시간-챠오토우마을-매표소-2시간-나시객잔(纳西客栈,Naxi G.H.)-3시간-차마객잔(茶马客栈,Tea-Horse G.H. 중식)-2시간-중도객잔(中途客栈, Half Way G.H. 석식 및 숙박)-2시간-티나객잔(Tina客栈,Tina's G.H.)-챠오토우마을-리장 or 샹그릴라

* 오르막은 나시객잔부터 약2시간(28밴드), 그 외엔 평지 길

호도협 1박2일 트레킹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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