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트립 Aug 26. 2021

시간이 만들어낸 흙기둥 숲, 위안머우의 토림

윈난에는 3개의 숲이 있다. 운남삼림(云南三林)이라 하여 석림(石林)과 토림(土林), 사림(沙林)을 지칭한다. 짐작처럼 돌의 숲, 흙의 숲, 모래의 숲이다. 석림은 이름만 들어도 돌기둥인 줄 누구나 알 테지만 토림과 사림 또한 막상 가보면 돌기둥이다. 다만 흙이 오랜 시간 굳어 형성된 모래 언덕이 지질학적 시간 동안 풍화되면서 만들어낸 지형이라 석림의 석회암 돌기둥과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이 세 개의 숲 중 석림이 가장 유명하고 교통도 좋아 쿤밍에 가는 여행자라면 꼭 들르게 되어 있다. 사림은 루리앙(陆良육량)에 있고 붉은색을 띠고 있어 채색사림(彩色沙林)이라 불린다. 사림에서는 최근 몇몇 영화를 찍었다고는 하나 지명도는 셋 중 가장 낮다.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곳은 토림이다. 토림의 경관은 석림보다 못하지 않으나 워낙 오지에 있어 평가절하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쿤밍에 간 이상 토림에 꼭 가보리라 맘먹었다. 위안머우(元謀원모)를 기점으로 갈 수 있는 토림은 세 군데가 있다. 우마오투린(无茂土林, 물무토림), 랑파푸투린(浪巴浦土林 랑파포토림), 반궈투린(班果土林 반과토림).

      

위안머우(元謀)의 랑파푸투린(浪巴浦土林 랑파포토림) 위치


우마오투린은 몇년전 다녀온 적이 있어 이번 목적지는 랑파푸투린이었다. 쿤밍에서 위안머우터미널에 도착하니 점심때였다. 위안머우에서 신화(新华)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신화에서 내려  8km 더 가면 된다는 정보가 전부였다. 신화에서 랑파푸투린까지 가는 공식 교통편은 없는 것 같았다. 호텔 직원의 말로는 농가의 경운기를 세워갈 수 있다고 했다. 어쨌든 신화행 버스를 탔다. ‘현장에 가면 무슨 수가 있겠지’ 중국 시골을 다니다 보면 저절로, 아니 어쩔수없이 초긍정 낙관론자가 된다. 여행객은 남편과 나, 그래도 혼자가 아니니 다행이다.

       

위안머우에서 얼마를 갔을까? 갑자기 차장이 내리라는 곳에 쫓기다시피 버스에서 내렸다. 급히 내려주면서 랑파푸 가는 교통편은 어딘가로 전화를 하란다. 아마도 근처 담벼락에 적힌 호출택시나 랑파푸투린의 숙소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하라는 뜻이겠지. 버스에서 내려 차창 밖으로 손짓하는 차장을 올려다보며 난 “휴대폰 없는데요?”라고 소리쳤다. 그때 차장을 포함해 일제히 우리를 내려다보던 버스 승객들의 시선은 ‘뭐 휴대폰이 없다고? 어디서 굴러온 외계인? 아니 미개인?’이라는 표정 그 자체였다. 그렇게 중국 깡촌 사람들한테 미개인 취급을 당했다. 사실 폰이 없었다. 쿤밍에서 유심 하나 사서 끼울 예정이었지만 미처 못 샀기 때문이었다.

     

마침 우리가 내린 곳에 앳된 청년 하나가 캐리어를 끌고 같이 내렸다. 여행자인가 싶어 물어보니 타지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그 학생도 랑파푸투린을 가는데 자기 집이 거기서 민박을 한다고 했다. 아빠가 데리러 나온다고 했다. 아 이게 웬 행운인가. 랑파푸투린까지의 차편과 숙박이 한 번에 다 해결되다니.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난 역시 여행운이 따른단 말이야!’

      

얼마 후에 그 학생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과 아들이 길거리에서 모객한 손님 우리 둘을 태우러 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랑파푸투린 매표소 입구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랑파푸투린 본격 관광에 나섰다.

 

랑파푸토림 ⓒ위트립


랑파푸토림 ⓒ위트립


예전에 본 우마오토림과 비슷한 듯 다르고 석림과는 확연히 다른 경관이었다. 쿤밍의 석림이 정교하게 잘 가꿔진 정원석의 향연이라면 토림은 야생 그대로의 자연이었다. 무너진 옛 성곽이나 폐허로 남은 고대 도시의 발굴 현장을 연상시켰다. 미국 그랜드캐년의 축소판 같기도 하고 터키의 카파도키아의 한 자락 같기도 했다. 투린의 붉은빛 황금빛 흙에 노을빛이 비치니 시시각각으로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우마오토림 ⓒ위트립


우마오토림 ⓒ위트립


우마오토림 ⓒ위트립


우마오토림 ⓒ위트립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지질 지형을 워낙 좋아한다. 비와 바람과 가늠할 수 없는 지질학적 시간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이런 자연 작품들을 대하면 자연에 대한 경이감이 들고 그 경이감은 순간 경외감으로 바뀐다.

     

위안머우에서 170만 년 전 고대 인류의 두개골이 발견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위안머우에서 이런 인류 화석의 발견은 이곳에서 토림이 형성된 것과 별개가 아닌 듯하다. 위안머우만이 갖는 온습도와 바람, 토양 속에서 위안머우토림도 만들어지고 위안머우원인(元謀猿人)도 보존될 수 있었으리라. 인류의 시조라고 하는 베이징원인(北京猿人)보다 시대가 더 앞선다고 하니 위안머우는 인류의 고향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친김에 옥룡설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