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마라탕(麻辣烫[málàtàng])을 사 먹지 않는다. 언젠가 서울에서 한번 먹어본 마라탕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먹는 것은 중국에서, 맛은 쓰촨에서(食在中国, 味在四川)'란 말에서 보듯 요리라면 절대 밀리지 않을 맛의 고장 쓰촨에서 마오차이(冒菜[màocài])를 한번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국에서 마라탕을 먹지 않는 나를 용서하리라.
리장, 따리와 위안머우 여행을 마치고 청두(成都)로 다시 돌아오니 고향인 양 푸근하다. 티엔푸(天府) 광장 근처에서 발길 닫는 대로 활보하며 점심 메뉴를 사냥하러 갔다. 보름간 나와 여행을 같이 다녔던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갔고 앞으로 두 주간 나 혼자 다녀야 한다. 이제부터 여행도 밥도 나 혼자다. 혼자 먹게 된 첫 점심은 그냥 밥이 아니라 혼자 여행의 출정식이다. 뭔가 제대로 된 것으로, '나만의 의례용 식사'를 치르고 싶었던 나의 비장한 눈빛이 꽂힌 곳은 마오차이(冒菜) 간판이었다.
청두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마오차이 식당들 ⓒ위트립
마오차이 식당에 들어서니 빈 양푼이 하나를 내어준다. 눈치를 보니 여기에 원하는 재료를 담으라는 뜻. 각종 식재료가 진열된 곳으로 가니. 야채와 고기, 두부피 등 온갖 재료들이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양푼이에 담은 것은 느타리버섯, 목이버섯, 브로콜리, 숙주, 얇게 썬 감자, 연근, 배추, 다시마, 두부였고 저울에 달아 값을 매겼다. 이렇게 골라 담은 재료는 육수가 펄펄 끓는 큰 솥으로 '그대로 입수‘되고 망으로 건져 올려진 후 양푼이에 다시 담겨졌다. 여기에 육수와 각종 양념이 끼얹어져 나왔다.
마오차이는 내 입에 맞는 재료만 담으면 되니 완성 요리가 맛없기 어렵다. ⓒ위트립
이렇게 마오차이 정식이 완성되었다.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다. "양푼이 훠궈(火锅 [huǒguō])" 가격도 착하디 착한 7위안(밥 포함, 한화 1,300원. 2013.1월). 과연 맛은 어땠을까?
마오차이 한 그릇. 면이나 당면 등을 많이 넣으면 밥없이 면요리로 즐길 수 있다. ⓒ위트립
마(화자오花椒[huājiāo])와 라(라자오辣椒[ làjiāo])가 인정사정없이 내 혓바닥의 통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첫 한 입은 음식이 아니었다. 그냥 벌칙이었다. 혀를 마비시키고 위장을 뒤틀기 위해 고안된 특수 고문 같았다. 몸속에서 열이 확 오르다 못해 오장육부의 모든 세포들이 다 들고일어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역시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던 중학교 생물 시간이 떠올랐다. 그러나 놀랍게도, 연거푸 젓가락이 갔다. 중독을 부르는 맛이었다. 맵게 맛있고 얼얼하게 맛있었다.
훠궈가 여러 사람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즐기는 음식, 우리에게 샤부샤부로 알려진 요리라면 마오차이는 청두에서 ’한 사람이 먹는 훠궈‘로 불린다. 훠궈가 끓는 육수 냄비에 음식을 넣고 익혀 먹는 것이라면 마오차이는 육수에 재료를 익혀 육수를 부어 먹는 훠궈의 일품요리 버전이다.
청두의 마오차이는 충칭에서는 마라탕으로 불린다. 마오차이와 마라탕은 거의 차이가 없다. 한편 식재료를 꼬치에 꿰어 훠궈탕에 데쳐 먹는 한 그릇 훠궈의 또 다른 변형은 촨촨샹(串串香)으로 불리고 다 먹고 난 후 꼬치 수를 헤아려 계산한다. 결국 마오차이, 마라탕, 촨촨샹 모두 '1인용 훠궈' 내지 '간단 훠궈'라고 할 수 있다.
우루무치 식당의 마오차이 ⓒ위트립
한 때 마라탕과 마오차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중국 온라인상에서 논쟁이 붙었다고 한다. 논쟁 과정에서 훠궈 가계도까지 동원되었다니 중국인의 훠궈 사랑은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훠궈 가계도. 출처 : Baidu.com
훠궈(火锅) : 스스로 끓여먹고, 꼬치 수를 세지 않는다.
마오차이(冒菜) : 다른 사람이 요리해주고, 꼬치 수를 세지 않는다.
마라탕(麻辣烫) : 다른 사람이 요리해주고, 재료를 선택할 때 꼬치를 세고 조리 후에는 세지 않는다.
촨촨샹(串串香) : 스스로 끓여먹고, 꼬치 수를 센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위(출처 : Baidu.com)와 같다고 하니, 같은 듯 다른 이들 요리를 구별하기 위해 시작된 논쟁은 결국 이들 네 가지 요리가 '한 뿌리 요리'라는 결론으로 끝난 셈이다.
중국인의 훠궈 사랑은 정말 못말려. 충칭의 길거리 벽화 ⓒ위트립
우리나라에서 요몇년 사이 크게 인기를 끈 마라탕은 꼬치에 꿰지 않으니 더더욱 마오차이에 가까운 요리이다. 청두의 마오차이를 먹어본 이래 마오차이는 나의 최애 중국 음식이 되었다. 우리나라 마라탕의 원조인 '청두의 마오차이'에서 푸짐하면서도 값싸고, 스트레스 확 날려버리고 기분까지 좋아지게 하는, 맵고 얼얼한 그 맛을 이미 알아버렸다. 그러니 어찌 맛의 현지화란 이름으로 변형된, 비싸기만한 한국의 짝퉁 마라탕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