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구채구(九寨沟[Jiǔzhàigōu] 지우자이고우) 여행길에 올랐다. 청두(成都 성도)에서 구채구까지 버스로 8시간이 걸린다. 청두의 차디엔즈커윈잔(북부 터미널)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하는 구채구행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을 둘러보니 45인승 버스에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탔다.
구채구(지우자이고우)의 위치, 9개의 장족(티베트족=짱족) 마을이 있는 계곡이란 뜻의 지명이라고 한다.
청두에서 구채구(지우자이고우) 가는 버스. 휴게소에서 세차 서비스를 받는다. ⓒ위트립
내 옆과 앞의 두 아줌마 둘, 세 사람은 일행이었다. 나이는 40대 초중반쯤 되어 보였다. 나도 40대 중반 아줌마이니 남들에겐 아줌마 넷이 한 일행으로 보이겠지. 앞자리 아줌마 둘이 과자와 귤을 뒷자리의 자기 친구에게 넘겨주다가 내게도 인사하며 과자를 건네길래 받아먹었다. "니취지우자이고우마?(구채구 가세요?)" "쓰(예)" "니이거런마(혼자세요?)" "쓰(예)" 두세 시간마다 휴게소에 쉬어 간다. 차도 세차하고 승객들은 점심을 먹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먹은 점심 ⓒ위트립
청두를 출발한 버스가 얼마쯤 달렸을까? 승객으로 보이는 젊은 아줌마 한 명이 버스 안을 돌아다니며 영문모를 부산을 떨었다. 그 아줌마가 승객들에게 돈을 5위안(한화 900원)씩 걷고 있었다. 내 앞과 옆 승객들도 다 5위안을 순순히 냈고 내게도 내라고 했다.
난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버스표를 샀고 버스 오르기 전에 차표 검사까지 다 했는데 돈은 무슨 돈?" 그 사람이 뭐라고 열심히 설명을 해댔지만 난 두 눈만 멀뚱멀뚱 껌뻑였고 한참만에 내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팅부똥(못알아듣겠어요)"이었다. 그 순간, 버스 안의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의 신분이 들통나버렸다.
내가 외국인이란 걸 알고도 그들은 내게 5위안 내기를 계속 종용했다. 아마도 그 돈 5위안은 내가 외국인인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나 보다. 이 차를 타고 있는 사람과 관계된 돈? 그렇다면 뭐지?
돈을 걷는 아줌마는 물론이고 버스 안의 모든 승객들이 내가 자기들 돈을 떼어먹기라도 한 것처럼 흥분해서 일제히 내게 달려들어 소리 지르며 설명해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최선을 다해, 자세히 말하면 할수록 난 못 알아 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음, 나, 대한민국 아줌마야. 버스비 이미 냈고 내가 왜 추가로 5위안을 내야 한단 말인가? 너희들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영문을 모르고 돈을 낼 수는 없지. “
말로 계속 떠들기만 하다가는 내게 돈 받아내기가 글렀다 싶자 중국 아줌마들이 다른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그들 손에 한 대씩 쥐고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어마 무시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한, 이성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었다. 옆자리 아줌마는 자기들 말을 한국말로 바꾸는 구글 번역기를 돌리기 시작했고 앞자리 아줌마는 중국 글자는 알아보느냐고 묻더니 폰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번역기와 필담, 누가 더 빨랐을까?
결국 앞자리 아줌마의 폰 화면에 적힌 중국어 문장을 보자마자 난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5위안을 내는 순간 시끌벅적한 한바탕 소란이 종료되었다. 구채구 가는 버스의 승객들이 공동으로 추렴한 그 5위안의 정체는 바로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이었다. 청두에서 국도를 타면 8시간이 걸리고, 고속도로를 타면 한 시간이 단축된다나. 기사에게 톨게이트 요금을 걷어주며 고속도로로 가자고 한다는 것이었다.
구채구 가는 길 버스 차창 밖 풍경 ⓒ위트립
승객들이 거둔 돈으로 톨비 내며 고속도로를 달렸건만, 오전 9시에 출발한 버스는 8시간 걸려 어두워서야 구채구에 도착했다.
고속도로와 국도 중 애초에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 우리나라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만 타 본 내가 ‘시외버스가 고속도로로 갈 수도 있고 버스 요금 외에 추가로 톨게이트 요금을 공동 납부하는 시스템’을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시외버스도 톨게이트 요금 얹어 주고 고속도로로 달리게 하는 나라, 융통성도 대륙 스타일인가. 그런데 이게 합법인 지 불법인 지 아직도 난 알지 못한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게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