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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Sep 08. 2021

구채구에서 만난 중국 남자 셋

청두에서 출발한 지 8시간 만에 구채구(九寨沟[Jiǔzhàigōu] 지우자이고우)에 도착하니 어두웠다. 한겨울 산악지대라 해가 빨리 졌다. 버스 승객 대부분이 종점인 구채구 터미널에 못 미쳐 숙소 타운에서 내리길래 나도 따라 내렸다. 숙소 타운은 단순히 비수기가 아니라 유령 마을에 가까웠다. 문 닫은 숙소와 식당이 많았고 오가는 사람이 없어 스산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구채구(지우자이고우)의 위치


숙소를 구해야 하니 마음이 급했다. 버스 옆자리 중국 아줌마 셋 일행은 호텔을 예약했다고 했다. 자기들 호텔로 같이 가서 방을 알아보자고 해서 따라갔다. 그 호텔의 방값은 내가 묵기엔 비싸서 돌아 나왔다.      


혼자 숙소를 찾아다닌 끝에 겨우 한 군데를 정하고 저녁을 먹으러 불 켜진 식당에 들어갔다.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식당 안은 온기라곤 없었다. 식당 주인은 난로가 하나밖에 없다며 나를 남자 셋인 테이블에 합석시켰다. 남자들 발아래 놓인 양은 대야에 석탄 몇 개가 타고 있었다. 졸지에 중국 남자 셋에 한국 아줌마 하나 끼어 4인용 식탁이 완성되었다.      


식당 탁자 아래에 놓인 양은 난로(좌)와 내가 주문한 만두국(교자탕)(우) ⓒ위트립


만두국 한 그릇을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중국 남자들이 자기들 요리와 술을 내게 권했다. 광동(广东)에서 온 여행자들이라고 했다. 돈 있어도 뭐가 뭔지 몰라 맨날 일품요리만 시켜먹던 내 앞에 하나 둘 알록달록한 요리들이 펼쳐지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름한 식당에 변변한 도구 하나 없어 보이는 주방에서 웍 하나로 볶아나오는 요리는 반전이었다. 그냥 청경채 볶음, 달걀 대파 볶음일 뿐인데 비주얼도 맛도 일류였다. 반주도 몇 잔 받아 마시며 식사를 마치니 어느새 내 식사값까지 그들이 계산해버렸다.   

   

중국 남자 셋이 주문한 요리 다섯가지. 마지막으로 탕이 나왔다. 지금 보니 요리도 요리지만 접시가 알록달록일세. ⓒ위트립


식당을 나서 숙소로 향했다. 무슨 인연인지 그들도 나와 같은 숙소가 아닌가. 차(茶)를 같이 마시자고 했다. 차 마시는 곳이 숙소 로비쯤인 줄 알았더니 자기들 방으로 오란다. ‘앗 이건 남자 셋 자는 방에 들어가서 차를 같이 마시는 상황?’ 이제 와서 거절하자니 그렇고 적당히 둘러댈 핑계도 떠오르지 않았다. 난 나의 ‘사람 보는 눈’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내 옆방, 침대 셋 놓인 '외간 남자들의 트리플 베드룸'에서 티타임이 벌어졌다. 그들은 다구를 꺼내 차를 우려 주었고 샨토우시(汕头市)에서 일주일간 쓰촨 여행을 왔다고 했다. 셋은 직장 동료 사이로 삼십 대 후반의 직업 군인들이었다. 광조우와 청두를 거쳐 비행기로 이곳 구채구까지 왔고, 러산따포와 어메이산에 들렀다가 돌아갈 거라고 했다.

      

다음날 구채구 관광도 숙소에서 그들과 같이 출발했다. 입구에서 매표를 하고 각자 관광을 위해 헤어졌다. 원시삼림 사이의 호수와 폭포를 구경하는 게 구채구 관광의 핵심이다.


     


팬더해와 전죽해는 얼어붙어 통제 중이었다. 오화해(五花海)는 물은 적었지만 오묘한 에머랄드 물빛은 살아있었다. 이름도 예쁜 진주탄 폭포는 얼어붙은 대로 장관이었다. 뉘르랑센터 아래쪽의 타르쵸가 나부끼는 장족 마을에서는 작은 스튜파와, 돌리는 경전 마니통도 볼 수 있었다. 오후에는 셔틀버스로 장해까지 이동한 후 오채지(五彩池)를 관람했다. 역시 이름값을 하는 물빛이었고 건기라 수량이 적은 점이 아쉬웠다.

    

 

얼어붙은 뉘르랑 폭포 ⓒ위트립
가장 인기있는 호수, 오채지 ⓒ위트립


구채구는 물로 유명한 곳이지만 산도 깊은 곳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한대의 식생과 웅장한 산세는 서늘한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이 세상 물빛 아닌 구채구의 물빛은 바로 이 태고의 원시 한대 삼림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구채구 주변을 둘러싼 산 ⓒ위트립


중국 남자 셋과는 구채구 관광 도중에 계속 마주치게 되어 나중에는 아예 같이 다녔다. 어쩌다 일본 청년까지 가세해 한중일 5명 한 팀이 되어 간식도 나눠먹고 사진도 찍어주며 돌아다녔다. 관광을 마치고 샨토우 남자 셋과 또 저녁을 같이 먹었다. 이번에는 내가 저녁을 사려했지만 한사코 말려서 또 얻어먹고 말았다. 따지고 보니 어제 저녁 만두국값과 오늘 세끼 식사, 숙소에서 구채구 입구를 오가는 왕복 차량 픽업비를 모두 그들에게 신세졌다.

      

오화해 ⓒ위트립


구채구에는 다들 물을 보러 간다. 구채구의 볼거리인 신기하고 예쁜 물빛은 나의 구채구 여행의 2할을 차지할 뿐이다. 내게 구채구 여행의 8할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샨토우 아저씨들이 내게 베푼 친절은 그야말로 풀코스였다. 구채구 터미널에 일부러 들러 나의 송판 가는 버스표 예매를 도와준 것도 모자라 다음날 송판 가는 새벽 버스를 탈 나를 위해 새벽 5시에 내 방 문을 두들겨 모닝콜까지 해준 것이었다.


자기들보다 열 살쯤 많은 누나뻘인 내가 혼자 중국을 다니니 현지인으로서 마음이 쓰였나 보다. 그들의 따뜻한 배웅에, 길이 얼어 버스가 끊긴 황룡 대신 송판으로 내딛는 발길이 하나도 서글퍼지 않았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샨터우로 내가 한번 가야겠다. 이 고마움을 갚으러.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함께 찍은 사진들과 함께 이메일을 보냈더니 아래와 같이 답장이 왔다. 


你好!韩国好友、大姐、老师!!!      

邮件都收到,照片也收到,谢谢!!!

并祝老师新年快乐!

有机会到中国广东省汕头市玩,我们会热烈欢迎你和您的家人!一切安康!!!!

안녕하세요! 한국의 좋은 친구, 누나, 선생님!!!      

메일도 받고 사진도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회가 되면 중국 광둥성 샨터우시에 놀러 오세요. 우리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열렬히 환영할 것입니다!

건강하세요!!!!




[여행정보(2013년 1월)]-----------------------------------------------------------------------------------------------

- 구채구는 사전 계획을 잘 세워 다녀야 하루 만에 볼 수 있다.

- 구채구는 Y자 길을 따라 일측구, 측사와구, 수정구의 3군데로 나뉘는데 오전에 일측구 관광, 점심을 일측구와 측사와구가 만나는 지점인 뉘르랑센터에서 먹고, 오후에 측사와구와 수정구를 차례로 관람한다.

 (1) 일측구: (버스)입구-원시삼림-백조해-검죽해-팬더해

             (도보)팬더해-오화해-진주탄폭포, 진주탄폭포 보고 경해 근처에서 버스로 뉘르랑센터로 이동

 (2) 측사와구: (버스)뉘르랑센터-장해-(도보)-오채호-(버스)-뉘르랑센터

 (3) 수정구: 시간 가늠해가며 적당히 버스와 도보를 반복하면서 구경하며 내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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